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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독자투고] 캐나다에서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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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제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12 17:39 조회2,4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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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일하는 팀홀튼(Tim Hortons) 매니저로 부터 이번 달 스케줄을 이메일로 받았다.

사실 지난 달 말에 받았어야 되는 데 이메일이 오지를 않아서 혹시 잘린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살짝  했었다. 하지만 이메일을 받아보니 그 걱정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이번 달 스케줄을 보니 'Training'이라고 적혀 있지 않고 'Bakery'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영어 선생님께 보여 주니 트레이닝 기간이 끝나고 이번 달부터 정식으로 채용을 하는 거란다. 만약에 트레이닝 기간을 잘 마치지 못했으면 오늘 나를 불러서 당신은 이 일에 적합하지 않으니 그만 두라고 말했을 거란다. 영어 선생님이 자기 일 같이 기뻐해 주신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말을 하니 아내도 축하한다고 정말 대단하다고 기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ㅎㅎ) 

 영어 선생님 소개로 인터뷰 보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팀홀튼에서 만드는 도너츠 이름을 하나도 몰랐었다. (나는 팀홀튼이라는 곳을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알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종이에다가 도너츠 이름과 만드는 법을 하나씩 적어서 집에 가져가서 숙지하려고 했지만 잘 외워지지가 않아 무척 고생을 했었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도너츠랑 머핀, 베이글 박스를 빠르게 들고 날라야 할 때는 너무 춥고  힘들어 그만 둘 까도 생각한 적이 너무나 많았었다. 

무엇보다도 처음에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나이 어린 나의 선임자가 나를 혼냈을 때였던 거 같다. 22살 밖에 안 된 어린 애(?)가 내가 실수할 때마다 생각 좀 하고 일하라고 호통을 칠 때는 정말 눈물이 나게 서러웠었다. 한 번은 소시지를 집는 집게를 바닥에 떨어뜨려서 바쁜 와중에 무심코 집게를 다시 집어 들고 소시지를 담으니 선임자가 나의 일을 멈추게 하고 너 같으면 그 소시지를 먹을 수 있겠느냐고 엄청 혼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정말 나를 위해서 엄격하게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하나씩 배워 나갈 생각이다. 요즘도 어린 선임자는 내가 틀리면 엄하게 혼낸다. 그러다가도 내가 잘하면 엄지척을 해주고 가끔씩 장난도 친다. 어제는 대청소를 했는데 청소하는 법을 정말 꼼꼼하게 잘 가르쳐 주었다. 청소를 하는 동안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고 내가 오히려 많은 걸 배워 고마운 마음이었다. 내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자 나머지는 자기 혼자 하겠다고 빨리 집에 가란다. 

 요즘 정말 나는 나이 50이 넘어서 여러 가지 신비한 일들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에 지금까지 있었다면 한국에서 과연 내가 이렇게 도너츠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아들뻘 되는 선임자한테 이렇게 호되게 트레이닝을 받고 버틸 수 있었을까?  

아마 한국 커피집이나 빵집에서는 나를 처음부터 고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고 설령 들어가서 일한다고 해도 내가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당당하게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들도 나이 먹은 어른이 자기 밑에 있으면 부담스럽게 느껴져 같이 일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곳 캐나다에 와서 일자리를 구할 때 이민자 센터(diversity) 영어 선생님이 나의 영문 이력서를 고쳐 주셨는데 제일 먼저 지적 받은 게 내 나이를 기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일하는 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직장 동료들도 나이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가서 일 잘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 오래 일할 수 있다고 하셨다. 실제로 지금 일하는 곳에 65세 된 할머니가 있는데 팀홀튼에서만 35년째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어도 어린 동료들과 잘 지내고 무엇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할머니를 보면서 나이가 들었다고 쉽게 자르지 않는 이곳 직장 문화가 부러웠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25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 조정을 당했었다. 나를 해고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아마 나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실직을 당했던 해에 회장 아들이 대표 이사로 새롭게 왔는데 그 대표이사는 내 고등학교 9년 후배였다. 아마 그 후배는 내가 선배라는 점이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회사 문화가 나이를 따지고 있고 자기 보다 어린 후배가 자기 보다 위에 있으면 자의든 타의든 옷을 벗는 시스템에서 벗어 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문화가 오히려 사회 분위기를 경쟁으로 내몰고 경직되고 권위적인 문화로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나는 실직 후에 내가 했던 일을 다른 데서도 해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팀장이 나보다 어려서 일하기 곤란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영업을 하기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이 곳 캐나다에 오게 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

 이번 달 스케줄을 아내에게 보여 주면서 트레이닝 기간을 우여곡절 끝에 넘겼으니 어쨌든 간에 나는 이 곳에서 여건이 되는 한 열심히 일할 거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일하면서 경력도 차츰 쌓아가고 캐나다 사회 경험도 넓혀 가면 어디에서 살게 되든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비록 급여는 많이 받지 못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과 청소하는 법을 배우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이 시간들이 쌓여 나가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고 그렇게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남은 반평생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나는 지금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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