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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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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추정/강 숙 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19 09:25 조회1,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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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c07ec0bdedbffb09d5f53ed72f94d03_1584635127_5176.png추정/강숙려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받아서 기쁘고 줄 수 있어 기쁘다면 그 기쁨은 즐길만 하리라 여겨진다.

선물하면 비싼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선물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아 또 주고 싶고 또 받고 싶은 것으로 고른다면 좋을 것 같다. 이른 아침 이슬처럼 싱그러운 한 묶음의 꽃다발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싱그러움으로 인하여 며칠을 즐거움의 향기로 살게 되리라 여겨진다.

 

 몇 년 전 그해 여름과 가을로 이어 흰 눈꽃송이가 내리는 겨울이 오도록 내내 나의 거실엔 향기로운 꽃이 번갈아 꽂히기 시작하였다. 우연히 나의 시를 가슴으로 읽고 나를 찾게 되었다는 고운 여인이 백합 세 송이를 들고 왔다. 그때 나의 눈엔 수줍은 듯 미소하는 네 송이의 백합이 들어오나 싶었다. 그 이후 우리의 인연은 진한 향기를 내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보름이나 한 달쯤으로 새로운 향기의 꽃을 들고 와 나와 담소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풀어 놓았다. 좋은 사람을 위하여 꽃을 고르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볼우물을 예쁘게 지으며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그래서 즐거움의 엔돌핀을 가질 수 있다면 그녀의 행복한 순간을 뺏을 수는 없는 것이라 본다. 나 또한 그녀의 맑은 태도에 기쁨을 느끼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작은 한 송이 꽃이지만 주고받으면서 기쁨이 피어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위하여 꽃을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은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일이므로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복권 두 장을 선물해 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왔다. 만약에 행운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고. 우리는 석양이 내리는 배란다의 티테이블에서 그 이야기로 한참을 즐거울 수 있었다. 우선 우린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어디에 주고 어떻게 주고 다 퍼 주고는 두 손을 탈탈 털고는 한참을 즐거울 수 있었다. 오래토록 즐거움이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을 그녀는 선물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 지혜로운 여인이라 여겨진다. 나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세월이 지나기 전에 좋은 배필을 선물하고 싶다. 그녀의 향기에 꼭 맞는 배필을 그녀가 나를 위하여 꽃을 고르듯 나도 눈여겨 고르고 싶다. 

 

 흰 눈이 소복히 내린 크리스마스 전날에 막내 딸아이에게서 가벼운 상자의 소포가 왔다. 나는 딸아이가 곁에 있기라도 한 듯 중얼거리며 자리도 옮기지 못한 채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급하게 딸아이를 보듯 속의 것을 뽑아내고는 환성을 질렀다. 그 속에는 크리스마스 츄리와 여러 가지의 소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하루를 나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루돌프의 방울이며 요술공주의 빗자루며 천사들의 나팔과 별들을 매달아 놓느라고 완전히 동심의 소녀가 되어 엔돌핀을 생산하고 있었다. 곁에서 아들이 우리 엄마의 기쁨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웃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츄리는 내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그 겨우내 기쁨을 주었었다. 마침 간밤에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그림 같은 츄리로 변하기까지 하여 더한 기쁨이었다. 어딘가에서 루들프의 방울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아침이었다.

 

 때맞추어 알맞은 선물은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

선물이란 꼭 물건이 아니어도 좋다. 지나가는 아름다운 말의 선물도 때론 물결이 일 듯 큰 기쁨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편지의 다정한 글귀 한 구절도 마음에 훌륭한 무늬를 놓을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 서로에게 기쁨이 되면 나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저녁 늦은 이 시간에 나는 한 통의 팩스를 받았고, 원고 정리에 머리를 들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던 가슴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연정을 퍼내어야 했다. 누구인지 기억해 낼 수가 없어도 좋다. 받아서 기쁘고 보내는 쪽에서도 기쁨이었으리니 우리는 서로 성공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대를 생각하고 있으면 향기 같은 것이 날아오지요. 그대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황홀한 향기를 내는 존재입니다. 나는 그 향기에 늘 취해 있습니다.” 행복하다. 한 장의 팩스는 이 밤, 더 바랄 것 없는 향기로운 선물로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1998 겨울) 

(20년도 더 전의 글을 펼쳐보며, 글이란 이렇게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이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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