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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아주머니 라는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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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4-02 08:50 조회1,4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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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e0d2bb49f62a395fa4aa76c5d16289_1576774200_8679.jpg심현숙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회원

 

 

‘아주머니’하면 나는 나의 외숙모가 떠오른다. 우리는 어릴 적 외숙모를‘외 아주머니’또는‘외 아줌’이라고 불렀다. 내가 대여섯 살 때의 기억으로 외아주머니는 갓 시집 온 새댁이었는데 눈이 서글서글하게 컸고 키도 작지 않으셨다. 늘 내 여동생을 업어 주셨다. 웃을 때는 속눈썹이 길고 숱이 많아 그늘져 보이는 눈빛이 어린 내 마음을 미묘하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때부터 아주머니라는 칭호를 좋아하였고 더욱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아주머니 댁’을 배운 후‘아주머니’는 신뢰와 존경 그리고 정겨움의 의미로 늘 내 머리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허물없이 가깝게 느껴지거나 나이 차가 있어 좀 어려운 여자 분에게 난 아주머니의 칭호를 서슴없이 써 왔다.

 그러나 내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잘못된 고정관념이었는지 3년 전에야 알았다. 평소 절친하게 지냈고 나보다 12살 위인 부인한테 내 습관대로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사모님’은 좀 거리감이 느껴져 싫고 ‘형님’하면 왠지 덜 존대하는 것 같아 이 두 칭호의 중간쯤인 아주머니를 택하였던 것이다. 그 댁과 잘 지낸 4년 동안 줄곧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두 가정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겨 좀 서먹서먹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분께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앉으라고 하더니 대뜸

 “내가 콩나물 장수냐 식모냐? 왜 나한테 아주머니라고 부르니? 나는 늘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하며 화를 버럭 내었다.

 “예? 무시라니요? 그게 절대 아니에요.” 청천 병력 같은 소리에 너무도 놀라 내가 뭔가 실수를 크게 한 것이 아닌가 급히 국어사전을 펼쳐 보았다.

 아주머니: 부모와 같은 항렬인 여자, 한 항렬 되는 남자의 아내, 부인네를 높이어 정답게 부르는 말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저의 지방에서는‘아주머니’하면 부인네를 높여서 부르는 소리예요. 그 칭호가 싫으시면 다음부터 아주머니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 나도 너의 지방 사람한테 물어보긴 했다만 낮춘 말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러나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었다.

 시장에 가면 장사하는 여인네들이 대부분 아주머니로 통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몇 년 전 고국에 갔을 때 9살 위인 딸아이의 친구 어머니와 조그마한 섬에 있는 그 분의 콘도에 가서 하루를 쉬었다 온 적이 있다.

 “은경 엄마, 10살까지는 벗한다는데 나한테 진이 엄마라고 해. 나도 젊게 살자고.” 하며 좀 쑥스러워하였다.

 “그래도 어떻게 진이 엄마라고 해요? 그럼 형님이라고 할게요.” 나는 그 아주머니의 손을 잡으며 겸연쩍어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라는 칭호 때문에 난 두 번이나 수난을 당한 셈이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빙빙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조선시대의 여자 마냥 맹하니 살고있는 건 아닌지 순간 아찔했다.

 

 이민 오기 전 서울에서 부업으로 안경점을 경영하였는데 우리 집 안경 기사는 내게 몇 가지의 상술을 주입시켰다. 그중 하나가 손님을 부르는 칭호였다. 남자 손님이 안경점에 들어오면 선생님과 사장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깔끔하면서도 어딘가 학자 타입으로 보이면 선생님, 얼굴에 윤기가 나면서 약간 융통성이 보이는 사람은 사장님이라 부르면 틀림없이 안경을 팔 수 있다고 하였다. 여자 손님들에게는 젊은 사람과 늙은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모님이라 부르란다.

 그런 호칭을 쓰며 매상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내가 그 시절도 진정 부르고 싶었던 이름은 아저씨, 아주머니였다.

 그러나 모두 아주머니가 싫다니 다음 몇십 년 후쯤엔 또 무슨 칭호를 싫어하게 될까. 세상이 온통 인스턴트 시대라고는 하지만 호칭까지 입에 바른‘님’해야만 할까.

 세상이 변해 세태에 따라갈 수밖에 없고,‘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불러 주는 칭호에 상대의 기분이 좌우되고 매너가 달라진다면 언제나‘아주머니’대신 다른 이름을 불러 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만은 아주머니라 불러 주면 좋겠다. 그럼 나는 나의 외숙모를 떠올리며 그분처럼 조용조용하고 인자하면서 더 정다워지려고 애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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