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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해 묵은 화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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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해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4-02 09:01 조회1,3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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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c1ab4faed4b01838843f20d6371fa_1579280712_176.jpg양해국(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 회원)

 

이민 짐 꾸리던 어느 여름 날, 나는 땀을 뻘 뻘 흐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채 캐나다 이민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무척이나 친하게 지내왔던 문방사우들 짐 속에 정성껏 챙기며 정착지에 도착하면 평소 즐기던 붓글씨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려니 하는 기대 속에서 흥의 노래 부르며 이민 꾸러미 한 켠을 할애 하였다.

막상 도착한 정착지에는 겨울은 영하 15도에서 영하 35도 강추위, 매일 불어오는 싸라기 눈에 칼바람, 여름에는 모기들 극성인 마니토바주의 도시 일명 윈터펙, 윈드펙, 머드펙이라 불리는 위니펙에서의 삶은 이민전에 상상하였던 꿈을 무참히 부수기에 충분하였다.

 

생활전선에 닥친 환경은 50여년을 살고 떠나온 고국과는 너무 다르기에 혼란을 초래하였고 모든것이 새로운 시작과 생소했던 것뿐이었다.

귀먹거리로 시작된 하루는 벙어리로 눈만 껌벅이며 눈치로 접하는 육체적 노동에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막함, 가슴에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하루하루의 시작과 끝이었다.

 

가족들을 걱정하는 가장의 삶의 취미생활이란 먼 옛적의 고국에서 꿈꾸었던 동경심으로 이루어진 사치일 뿐 소중히 아꼈던 문방사우들은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정성으로 꾸린 짐은 풀어놓지도 아니하고 묶어놓은 짐꾸러미를 그대로 방치 하였지만 그 문방사우들은 항상 내 곁 먼발치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아주며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민사 일기가 한 페이지씩 쌓여가는 가운데 그나마 자식들은 착하게도 각자의 몫을 다하여 주었고 위니펙 사람들의 특유한 따뜻한 인정들도 큰 힘이 되었다.

 

조금씩 정착하여 갈 즈음,어느 날 갑자기 이민자인 나에게 찾아온 가혹한 위암 선고는 머리를 망치에 맞은것 같은 현기증으로 그만 대책 없는 고국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국내 병원 신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몸의 증세는 위암도 부족하여 전립선암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힘들었던 이민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대수술 이후 3년간의 회복기에 격었던 마음고생과 경제적 고초들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 하였다.

 

이민자 생활이 그러하듯이 마니토바주 위니펙에서 비시주 아보츠포드, 알버타주 캘거리, 다시 비시주 뱅쿠버 써리로 일자리를 찾아 주를 넘나드는 이사를 하며 살았고 우여곡절 속에 맞이한 리타이어는 나에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 이후 정년퇴직의 생활은 비로소 그동안 잊고 지내며 살아왔던 붓글씨 사랑으로 가슴에 불을 도로지피게 되어 문방사우인 붓, 벼루, 먹, 화선지, 연적들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붓을 쥐고 화선지 위에 글을 써보았지만 오랫동안 격조한 친구들은 그리 쉽게 마음 열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던 중 글씨가 조금씩 나아질 무렵이되자 몇 몇 지인과 무궁화 붓글씨 동호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또한 한인신협 전무님 이하 임직원님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세심한 배려로 매주 화요일 수요일 연중무휴로 사무실을 제공받게 되었고 무궁화 붓글씨 동호회는 오늘의 모임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지금 사용하는 모임이름과 모임의 기역시 한인신협 직원님들의 큰 선물이었다.

 

2년 반 전 회원님들이 필요한 습자지와 붓 등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때로는 이민와서 붓글씨 즐기려고 소장하고 계셨던분들이 벼루, 연적 들을 우리 동호회에 기증하여 주시는 분도 게시어 소중히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불편함도 많이 해소되었지만 지금의 화선지는 중국산이 90퍼센트 이상을 점령하고있다.

그러나 이민 올때 꾸려온 내 화선지는 순수한 고국제품이었고 지질 또한 고급지라 불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하여 우리로선 고국의 종이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것이다.

이 또한 대한의 자손임에 어깨가 우쭐해진다.

 

그동한 말없이 지켜주던 몇 권 남지 않은 선반 위의 20여년 전 화선지지는 이제 더욱 아껴쓰므로 모쪼록 좋은 글씨로 남게되어 이글을 대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풍성한 양식이 되고 마침내 회원님들의 득필로 이어졌으면 한다.

나아가 이러한 계기가 노년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어 행복한 취미생활로 이어짐은 물론 기쁨이 강물같이 흘러 한인신협의 발전상과 더불어 무궁화 붓글씨 동호회의 무궁한 발전으로 도모되길 꿈꾼다.

 

끝으로 우리동포들이 살고있는 캐나다 뱅쿠버가 대한의 후예들에게 묵향이 가득한 마을로 발전하여 사시사철 묵화 만발한 예향의 도시가되길 두손 모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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