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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개운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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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순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4-30 22:19 조회1,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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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8783364_FB2em0IZ_6481079a36efe76a76cf62eaf0a92c0dea7e830f.jpg신순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유빈이의 책상에는 긴 유리병안에 아기 개운죽이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아기 개운죽은 원래  안방에 있는 화분에서 살던 것이었습니다.  유빈이네 집에는 개운죽, 산셀베리아,  스킨다부스, 선인장, 머니트리 같은 실내 식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빈이 엄마는 정성스럽게 식물을 보살펴서  물 주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았고, 이파리들에 앉은 먼지도 자주 닦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빈이네 집 여기저기에 있는 식물들은 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이파리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개운죽도 잘 자라면서 어느새 곁가지를 여러개 두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가지 몇 개를 잘라 작은 물병 속에 담궈 놓았습니다. 유빈이의 아기 개운죽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아기 개운죽들은 안전하고 포근한 엄마 몸에서 잘라져 나올 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냥 엄마가 나눠주는 대로 물과 영양분을 받아먹다가 모든 것이 딱 끊기면서 허공에 붕 떠 있을 때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온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레임도 있었습니다. 

“아가들아, 너희도 이젠 독립해서 살 때가 되었구나. 너희는 이미 물만 있으면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잘 할거야. 일단 물을 만나면 최대한 빨리 뿌리를 내리도록 노력하렴. 뿌리로부터 흡수하는 물이 제대로 있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단다.”

“엄마, 걱정 마세요. 잘 할게요.”

 아기 개운죽들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엄마 개운죽이 알려준 대로 몸통 맨 아래의 줄기에서 물을 빨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아래가 간질간질하니 몸에서 슬슬 변화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기 개운죽들은 하나 둘 씩 가느다란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뿌리가 생기면서 물 마시는 것도 한결 편해졌습니다.  유빈이 엄마의 보살핌속에 세월이 흐르면서 아기 개운죽들은 뿌리도 여러 개 생겼고 이제 제법 줄기 대가 굵어졌습니다. 유빈이 엄마는 예쁜 유리병을 여러 개 가지고 와서 하나씩 담았습니다.  그때 유빈이는 그 중 하나를 자기가 키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유빈아, 이 개운죽도 생명이 있는거야. 네가 책임감을 가지고 키울 수 있겠어? 물을 제대로 안주면 금방 말라 죽을 텐데?”

“엄마, 나도 이제 열살이에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유빈이는 자신 있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다시한번 물이 마르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그 중 제일 큰 개운죽이 담긴 유리병을 유빈이의 책상에 놓아주었습니다.  책상에 푸른 잎을 자랑하는 개운죽이 함께 있자 유빈이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공부할때도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유빈이는 처음으로 책임을 가지고 식물을 키우게 되자 매일매일 정성껏 아기 개운죽을 살폈습니다.  푸르미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습니다. 푸르미도 항상 깨끗한 물을 마시며 무럭무럭 자라나서 어느덧 몸통이 굵어졌습니다.  방안의 탁해진 공기도 개운죽이 뿜어주는 신선한 공기로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과는 달리 푸르미에 대한 유빈이의 관심은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귀찮아서 한두 번 미루더니, 일주일마다 갈아주던 물도 어쩔땐 이주일이 넘도록 갈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생일선물로 캐릭터 인형을 받고 나서는 아예 자리도 책상 구석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형 뒤에 가린 푸르미는 더욱 관심을 받지 못했고, 화병속의 물도 갈아 준지 오래되어 뿌옇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푸른 잎은 먼지가 쌓이더니 급기야 한쪽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록을 자랑하던 이파리가 누렇게 되었는데도 유빈이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 큰일이네. 물이 점점 줄어들어서 얼마 안 있으면 하나도 없을지도 몰라. 유빈이는 이제 나를 완전히 잊었나봐. 내가 이렇게 아픈데도 모르다니.”

푸르미는 걱정과 근심으로 더 몸이 아파왔습니다.  줄기 가운데까지 찰랑거리며 채워져 있던 물이 점점 줄어들어 발끝 뿌리를 겨우 적실 지경이 되었습니다.

“유빈아, 나 여기 있어. 제발 나에게 물을 좀 줘!”

푸르미는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도움을 청했지만 유빈이에게 들릴 리가 없었습니다.  얼마 안남은 물을 조금씩 나눠가며 간신히 버텼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은 점점 쪼그라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거의 기절 상태였던 푸르미는 갑자기 시원한 물을 느끼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유빈이 엄마가 말라 죽어가고 있는 푸르미를 유빈이 책상에서 발견하고 얼른 찬물에 담가준 것이었습니다. 

“유빈아, 분명히 잘 키운다고 하고는 이게 뭐니? 같이 있던 다른 개운죽들은 이렇게 잘 크고 새로 줄기가 나오려고 하는 것도 있는데.”

정말 유빈이 엄마가 키우는 다른 개운죽들은 모두들 키가 훌쩍 컸고 어떤 개운죽은 옆구리에 삐죽하니 새싹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죄송해요. 그런데 제건 엄마거보다 원래 좀 안좋았나 봐요. 처음부터 물을 잘 줘도 안자랐어요.”

유빈이는 엄마에게 혼날까봐 둘러대기까지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너에게 줄때는 오히려 제일 크고 건강해 보이는 걸로 주었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대는건 옳지 않은 거야.”

“네.”

“이제 그만 키우는게 좋겠다.  큰 소리 치길래 믿었더니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구나”

“아니에요, 제가 다시 키울게요. 이번에는 물 주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

“좋아, 한번 더 기회를 줄게.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랑으로 돌보아야만 잘 클 수 있는거야.”

  유빈이는 엄마가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병든 잎도 잘라내어 깨끗해진 푸르미를 다시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습니다.  처음과 달리 귀찮아해서 푸르미가 병까지 든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로 잘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안녕?  푸르미야.”

유빈이는 책상에 앉을 때마다 푸르미를 살펴보았고, 시간을 정해서 유리병의 물도 깨끗하게 갈아주었습니다.  비록 여기저기 아팠던 흔적을 지닌 푸르미였지만, 유빈이의 정성스런 보살핌과 관심을 받으며 점점 회복이 되었습니다. 다시 줄기가 통통하니 살이 오르고 새 이파리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빈이는 때로는 푸르미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푸르미는 유빈이의 사랑을 듬뿍 느끼자 너무 좋아서 이파리를 흔들어 보기도 했고,  노래를 들어 두근거릴 때마다 온 몸이 빠르게 아래위로 순환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푸르미의 성장을 더 부추겼습니다. 어느 날 푸르미는 옆구리가 간질간질 한 것을 느꼈습니다.

“엄마, 푸르미한테도 싹이 나와요.”

유빈이가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유빈이의 정성으로 아픈 것도 다 나았고, 이제 다른 개운죽들처럼 새싹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푸르미의 단단한 줄기를 뚫고 아가손같은 연두색 싹이 두어 개 고개를 슬며시 내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몇 달 뒤에는 유빈이의 책상에도 또 다른 개운죽이 담긴 유리병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유빈이는 책임을 갖고 뭔가를 키우는 것이 정말 어렵지만 또한 그 안에서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유빈이는 푸르미를 키우는 것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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