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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나의 짝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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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유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5-27 08:39 조회1,3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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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06fbd962b6e48670eb7478c5b0c77ef_1573146149_6286.jpg김유훈(사)한국문협 밴지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단어는 “사랑”이란 두 글짜라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하며, 개인의 인생사까지 변화 시키는 위대한 단어이다. 즉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수 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그리고 노랫 말에 이르기까지 Love story는 반드시 들어가 있다.


   그동안 바쁘게 지낼 때는 깊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으나  지금 시간이 좀 나고보니 아련햇던 옛 생각들이 영화속의 장면처럼 떠오르는 것이 사춘기 시절의  짝사랑이다. 

 그 시절에  심하게 겪은 사랑의 감정은 백반볼트 짜리의 전류라고 할까?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그 시절 나의 짝사랑 대상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였다. “로마의 휴일”에 나온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심장 멈추는 듯 하였으며  그녀를 보고 싶어 그 영화를 여러 번 보았을 뿐 만 아니라  그 시절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빠지지 않고 보았다. 그리고 청계천 6가에 있는 책방에 가서 미국 영화잡지들을 구입 후 “오드리 헵번”의 사진들을 오려서 사진첩까지 만들고 그 사진을 보며 즐거워 하였고 마치 그녀가 내 비밀의 애인인 양 간직하였다. 오래전 영화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소년, 토토와 다를 바 없었던 내 모습이였다. 


그 후, 세월이 빠르게 흘러 대학생, 군대생활, 그리고 중동근무를 마치고 나니 어느 덧  20대 후반이 되었다. 나는 교회생활을 하며 교사, 청년부 활동 중에 눈이 번쩍뜨이는 한 아가씨를 보게 되었다. 마치 영화배우인 듯한 그녀를  본 후, 나는 밤잠으 제대로 이를 수 없게 되었다. 긴긴밤 그녀를 생각하며 행복에 젖었던 시절이였다. 교회에서 그녀를 만나면   순한 양이 되었으며, 무슨 말을 하려면 얼굴부터 붉어지고 목소리까지 떨며 말해야 했다. 그리고 같이 활동을 하면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지남철이 되어 그녀 곁으로 가 있었다. 내 몸은 그녀 곁에서 맴돌면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숨긴 채 1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향한 나의 짝사랑을 편지로 고백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내 편지를 읽었는 지 웃는 얼굴로 나에게 “우리 내년 부터 사귀는 것으로 해요”이 말을 들은 나는 뛸 듯이 기뻣다. 세상을 다 얻은 기쁨이였다. 그러나 한편 내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나의 갈 길은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였다. 그 당시 나는 기도와 함께 고민을 깊게 한 결과 공주처럼 예쁜 아가씨와의 관계는 아름다운 짝사랑으로 내 마음속에 간직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가끔씩 떠오르는 그녀와의 추억은 비록 짝사랑이였지만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여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있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많은 교수님들이 대부분 유학파였다. 그 중에 특히 곽선희목사님은 우리들에게 꼭 미국에는 가서 보고 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할머니들도 손자들 보러 미국에 가고 오고 하는 데, 목사들이 외국을 모르면 되겠느냐?” 하는 이론이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해외 유학의 꿈을 다시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카나다라고 늘 말하였다. 나도 모르게 카나다는 언젠가 꼭 가고 싶어 오랫동안 짝사랑을 했던 나라이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토플 시험을 여러 번 보느라 힘들었지만 결국 내가 원했던 카나다, 밴쿠버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그 후,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곽선희목사님을 영접할 일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은 나에게 “아니, 김목사, 자네 여기에 있었어…” ,”네, 목사님, 목사님께서 할머니들도 비행기탄다고 하셔서, 제가 유학을 왔습니다” 하였더니 목사님께서 껄껄하며 웃으셨다. 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다른 선배 목사님들과 함께 이틀동안 관광을 시켜드리며 지난 이야기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칠순이 넘고 보니 내 속에 또 다른 짝사랑이 새롭게 싹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대상은 다름이 아닌 내가 태어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내 가족들이 살고 있는 그 곳으로 가고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드는 것은 나이 탓인가? 비록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의 자연 환경이 세계적으로 뛰어나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나같은 노인이 현역 트럭커로 일 할 수 있음에도, 카나다 정부에서 노인 연금이 있어도, 그리고  의료혜택 뿐 만 아니라 지금처럼 우환 폐렴으로 어려운 시절에 정부에서 주는 각종 보조금이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있는 짝사랑은 변함없이 대한민국이다. 고향을 떠나온 시인 윤동주가 지은 시, “별헤는 밤”에서 그 마음을 다 채울 길이 없어 별을 보고 노래했던 그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동안 수 많이 밤길을 운전하며 쳐다보았던  별을 볼 때마다 외로움인지? 서글픔인지? 나도 모르게 울적했던 순간들을  무어라 표현키 어려워 나는 트럭을 세우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에 대한 갈증을 다 해소할 수 없어 이제는 서쪽하늘 바라보며 고국을 향한 짝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우리 자유 대한민국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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