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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 난 창] 다섯 번째 편지(열번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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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08 09:08 조회1,6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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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YW7Hrg8O_54198884d3f83da0174ed2f0e04d56ce3ad9d1d4.jpg박지향




이곳 리타이어먼트 홈에서는 원하는 분들에 한해서 일년에 두 번 소풍을 간다. 불행히도 올해는 COVID 19의 확산으로 소풍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되었다. 찬바람이 불기 전 구월엔 햇빛이 좋은 날을 골라 단체로 준비한 도시락을 가지고 공원으로 간다.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라즈베리 베리가 한창일 때는 베리 농장으로 소풍을 간다. 작년 봄, 베리 농장으로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 열 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두들 시간도 되기전에 버스에 올라 좌석 벨트를 하고 앉아 아이들처럼 들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인원 점검을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확인한지 5분도 안 지났는데 한 분이 사라지셨다. “누가 없죠?” 하고 물었다. 할머니 한분이 “칠면조가 없어” 하셨다.  


칠면조는 82세 바브라 할머니의 별명이다. 이름을 부르고 둘러보니 정말 사라지고 안 계셨다. 아무도 어디 가셨는지 모른다고 했다. 처음엔 화장실을 한번 더 가셨겠 거니 하고 기다렸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도우미들과 간호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찾아봤지만 건물내에서 못 찾았다. 나는 할머니 방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거울 앞에 서 계신 할머니는 의외로 여유로웠다. 이 모자도 써 보고 저 모자도 써가며 입은 옷과 어울리는 모자를 찾고 계셨다. 처음에 쓰고 내려온 모자가 맘에 들지 않으셨던 것이다. 모자 삼매경에 빠지신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리시니 전화벨 소리도 못 들으신 것이다. 


할머니는 모자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신다. 그 모자 덕에 나도 할머니의 옷방을 구경하게 되었다. 단 몇 분 동안 주어진 기회에 내 눈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모두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얼핏 본 모자는 백개도 넘어 보였다. 각양 각색의 구두와 핸드백 또한 얼마나 많은 지 옷방 한쪽 벽에 설치된 선반은 핸드백과 신발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더 놀랄 일은 옷이었다. 색깔별로 계절별로 분류해서 걸어 둔 옷들이 옷방에 가득 차 있었다. 걸어 둔 옷 밑으로 접어서 정리해둔 옷들 또한 숨쉴 공간 하나없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몇 벌이나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할머니의 코디 감각은 눈 여겨 보지 않아도 모두가 인정하는 코코 샤넬이다. 평소에도 구두서부터 옷과 핸드백 모자까지 완벽하게 코디해서 차려 입고 다니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패셔니스타 이시다.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옷과 신발 모자로 가득한 방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할머니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였다. 할머니 손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신부가 못돼도 몇 백명은 족히 될 것이다. 40년 넘게 그 일만 하셨으니… 처음부터 디자이너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열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생계를 위해 들어갔던 드레스 샵에서 청소와 허드레 일을 하고 다림질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선을 도왔다. 드레스를 수선하고 다리는 일은 보람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오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가난한 부모님을 도와 야 했고 열심히 살았다. 아무리 좋아하고 돈이 따라오는 일이라 해도 늘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재봉틀을 돌리고 바느질을 했다. 하다 보니 어느 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바느질과 펴지지 않는 집안 형편은 그녀를 지치게 했다. 그런 바브라 앞에 운명의 남자 조던이 나타났다. 손님으로 온 신부의 남동생 조던은 메말라가던 그녀의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일에만 파묻혀 살던 그녀의 삶을 찬란한 빛으로 메워준 조던은 군인이었다. 그녀나이 23세였고 조던은 22세였다.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전화선을 넘어 편지를 타고 그들의 사랑을 무럭무럭 자랐다.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조던은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떠나기 며칠 전 한아름 들꽃을 꺾어 들고 찾아온 조던은 바브라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하면서 가느다란 금 반지를 내밀었다.


조던을 보내고 바브라는 자신이 입을 웨딩드레스를 만들며 그의 편지를 기다렸다. 결혼해 준다면 꼭 살아서 돌아오겠 노라며 약속하고 떠난 조던은 편지 네 통을 보내고 소식이 없었다. 날마다 우체통만 바라보던 그녀에게 날아든 다섯 번째 편지는 두 명의 *CNO가 직접 건네 준 편지였다. 그것은 조던의 전사 소식과 함께 받은 마지막 편지가 되었다.

조던의 사망 후 바브라는 미국을 떠나고 싶었고 국경을 넘어 정착한 곳이 밴쿠버였다. 그와의 추억이 묻은 땅을 떠나면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그녀는 밤낮없이 바느질을 했다. 바늘 잡은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났다. 뻥 뚫린 가슴을 바느질로 라도 메워야 했다. 손끝에 난 상처는 아물어 굳은살이 생겼지만 가슴에 난 구멍은 메울 수가 없었고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지금도 할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재봉틀을 돌린다. 자신이 입을 옷을 만드는 것이다. 할머니가 입고 다니는 옷은 모두 그녀 손끝에서 만들어진 옷이다. 소박한 투피스 정장, 소매가 넓고 우아한 블라우스, 화려한 원피스 드레스, 정말이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옷을 가지고 계신다. 할머니는 두번의 식사 시간에 두 번 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신다. 그때마다 통통한 몸매에 유난히도 발목이 굵은 할머니는 구두, 핸드백, 모자에 그녀가 만들어 입은 옷은 언제나 화려한 외출복 차림이다. 그렇게 옷을 만들고 입는 일이 전부 인 듯한 할머니에게 붙여준 별명이 칠면조다. 통통하게 살찐 칠면조가 날개를 활짝 펴고 다니는 모습을 연상해서 붙여준 것이라 짐작한다. 칠면조라 말하는 이들의 얼굴엔 슬그머니 비웃음이 지나간다. 할머니는 그녀의 생에 불을 밝혀준 남자 조던에게 로 날마다 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황새의 마음을 뱁새가 어찌 알겠는가?


조던이 전쟁터로 떠나던 날 바브라는 하늘색 원피스드레스에 창이 넓은 흰색 모자를 쓰고 배웅을 나갔다. 조던은“내가 돌아올 때도 그 모자를 쓰고 나와줘” 라고 했다. 할머니의 모자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할머니 방엔 모서리가 낡은 오래된 종이상자가 하나 있다. 상자를 열면 창 넓은 흰색 모자가 세월을 덥고 앉아 있다. 모자를 들어내면 조던에게서 받은 편지들이 나란히 누워 있고 편지를 들어내면 새하앴던 웨딩드레스가 누렇게 변색된 채 누워있다. 조던과 바브라는 종이상자 속에서 그렇게 부부가 되어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 지나가버린 젊은 날, 조던을 향해 걸어가고 싶었던 웨딩 드레스를, 때가 되면 수의처럼 입고 그에 게로 갈 것이다.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날도 많았지만 세월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름다운 깃털을 달아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인생은 왜 이러냐?” 고 억울해하지 않는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하며 화려함 뒤에 숨은 아픔을 꺼내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원망도 슬픔도 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 같다. 그러니 그 누구도 바브라를 뚱뚱하고 못 생긴 칠면조라 부르지 마라. 그녀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빛깔, 에메랄드라도 갈아 뿌린 듯, 반짝이는 초록의 깃털을 펼치는 우아한 자태의 공작이다. 그런 그녀를 나는, 공작부인이라 부른다.


*CNO(Casualty Notification Officer): 미군 유가족들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는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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