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건너 글동네] 타인의 고통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타인의 고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무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23 22:29 조회1,075회 댓글0건

본문

758783364_rVaAFz1x_bba282194a4576969a6f9cb0b1d09989be4a0d70.jpg송무석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수전 손탁은 <<타인의 고통>>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지만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넘치는 끔찍하거나 자극적인 기사와 사진은 수전 손탁의 말처럼 우리를 어느 만큼은 타인의 수난에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그럼, 우리는 정말 타인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없고 점점 그런 역경에 무디게 반응하게 된 것일까?

과학자들은 타인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우리에게 반영해 주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s )를 발견했다. 이 세포들은 공감(Empathy)과 연민(Sympathy)에 큰 역할을 하며 타인의 고통을 볼 때 그런 고통을 느끼게 한다. 공감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입장을 느끼는 것이다. 연민(Sympathy)은 같은 감정을 경험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감정이나 상황을 인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로 친구의 늙은 개가 죽었을 때 나는 슬프지는 않지만, 친구의 슬픔을 이해하듯이. 또, 독일 뇌과학자 타니아 싱어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이용해 사람들의 공감 반응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거나 사진으로 접하기만 해도 사람들의 뇌에서는 자신이 직접 고통을 겪을 때와 유사한 반응이 일어났다. 이는 우리에게 공감 능력이 있다는 과학적 증명이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안다는 말이다. 물론, 고통이나 불행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직접 겪는 사람만큼 절절히 실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감에는 크게 두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감정의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다. 문에 손을 쾅 찧은 사진을 보면 그 손이 타인의 손일지라도 내 손이 다 아픈 것 같은 고통이 전해진다. 고통받는 타인의 사진 같은 것을 보면 나의 뇌에서도 고통과 관련된 반응이 관찰되거나, 잔뜩 인상 쓰고 있는 얼굴을 보면 내 표정도 어느 정도 함께 일그러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의식과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타인의 감정이 내게 생기는 것이 일차적 공감이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진짜 ‘공감(empathy)’이라고 부르는 것은 ‘연민의 정(sympathy)’과 가깝다. 이는 상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원인에 대한 ‘이해’를 동반한다. 여기서 나아가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나의 이익과 상관없이 돕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이타심(altruism)’이라고 부른다.

피츠버그대 심리학자 마가리타 스베트로바(Margarita Svetlova) 가 머리핀과 담요를 이용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 결과에 따르면 30개월 된 아이가 18개월 된 아이보다 자기 물건을 더 쉽게 타인에게 주는 등 정서적 공감도 높고 더 이타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즉,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공감 능력도 이타적 행위 능력도 향상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연민을 가진 우리가 왜 이타적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Ara norenzayan의 저서 <<Big Gods>>에는 심리학자 John Darley, Dan Batson이 프린스턴 신학대학생을 상대로 한 실험이 나온다. 이 실험은 익명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가능성은 신앙심의 강도가 아니라 본인이 처한 상황이 급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심리학 교수 리처드 니스벳와 리 로스가 쓴 <사람일까 상황일까>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엔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보다는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라 한다. 또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도 요인이다. 방관자 효과란 문제가 되는 상황에 여러 사람이 있을수록 다른 사람이 관여하겠지 하는 책임 전가, 자신의 판단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될 위험에 경계심, 그리고 타인이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다수의 무지를 말한다. 나는 여기에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시간을 통해 체화된 우리와 타 집단과의 구별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가족이나 친구가 곤경에 처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다른 일을 제치고 도울 것이다. 150 명가량의 소수와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우리의 제한된 능력과 성향 때문에 이 범위를 넘어 기꺼이, 쉽게 타인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방법이 없는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반감을 느꼈던 타인이 고통을 당하면 쾌감을 느끼기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반응) 하지만, 이타심을 자극하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고 한다. 미국 심리학자 리처드 데이비슨은 타니아 싱어와 함께 진행한 실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 훈련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력과 자비심을 키우고 더욱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응급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돕다 잘못되었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하는 착한 사마리안 법 같은 조치는 판단 착오에 따른 책임이 두려워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방관자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희화화된 사진이 아닌 진정한 전쟁의 참혹을 보여준 전쟁 보도가 반전 운동을 일으켰듯이 우리에게는 타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을 희망은 있다. 다만, 제약된 우리 개개인의 자원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시적이거나 작은 도움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커다란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 복지와 같은 제도를 만드는 데 힘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등 전문 의료인의 60%가감정적 소진(empathetic burnout or empathy fatigue)을 겪고, 1/3은 업무를 일시적으로 쉬는 단계까지 간다고 한다.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감정적으로 소진되어 초조해지고, 우울해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그만큼 공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사회 성원 전체가 연대감을 키우고, 타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 대안이 아닐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4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