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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달과 6펜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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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정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8-04 10:04 조회1,3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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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dsSwlAbQ_3ff49f72fb525e359528ee26abfd502abd6149a3.jpeg민정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대표적인 작품 제목이다. 그림의 배경은 남태평양에 있는 타히티섬으로, 그의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곳이다. 태곳적 자연림과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원주민에 동화되어, 그의 원초적 상상력을 왕성하게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은 끝내 그를 쫓아다녔고, 어느 날 날아온 딸의 죽음을 담은 비보는 결국 그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이 위대한 작품은 그 절망의 나락 속에서 태어났다. 거의 4m에 달하는 거친 마포 위에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인간 존재와 인간 운명의 행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그림 속에 내포하고 있다.


   폴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적 허구가 가미된 작품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주인공인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내세워 고갱의 성격과 그의 예술로 향했던 열정과 투혼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그 외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이상과 삶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비유했다.


   스트릭랜드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결국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그는 달의 인력에 의하여 밀물과 썰물이 되듯,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끌림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제목에서 말 하는 달의 세계로 향하기 위하여 가정과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와, 물질의 세계로부터 떠난다. 편하고 틀에 박힌 생활에서는 창조적 본능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보다 관계에 얽힌 사회에서는 그의 영혼이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책 속의 화자는 그를 설득하기 위하여 예술가로 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라며,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필사적인 염원을 말하고 있다.


   나는 자문해 본다. 나에게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꿈이 있었던가. 있다면 그 일의 전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꿈이 있었다 해도 현실과 타협하며, 안정된 생활을 위해 그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6펜스*의 세계이다. 문학보다는 문인에게 심취하고 그들과 함께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지위가 오른다고 생각하는 스트릭랜드 부인.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아끼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대중의 욕구에 맞추어 영혼 없는 그림을 그리는 스트로브.  정신적인 사랑보다 육체적 욕망을 탐닉하고 사랑을 소유라고 생각하는 스트로브 부인. 부와 출세가 행복의 조건이란 믿는 알렉 카마이클. 모두 세속적인 6펜스의 사람이다.


   비록 도덕과 윤리를 져 버린 사람이라 해도 세상의 평판을 온전히 무시한 채, 오로지 그의 영혼이 이끄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스트릭랜드의 의지에 나는 박수 쳐주고 싶다. 타인의 인식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부분의 감성을 소비하는 나로서는 매력적인 성격이 아닐 수 없다. 평판이란 얼마나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것인가. 어쩌면 완전하지 못한 평판에 의해서 많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소멸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이란 인간의 무의식 속의 잠재의식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스트릭랜드가 편안함을 기피하고 불편함과 고통스러움을 감수하는 것도 자신의 영혼을 나태함에 빠뜨리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예술은 기교가 아니라 상상에 의해 사물의 개성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 한다. 같은 그림을 그려도 그리는 사람의 직관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각도와 기법의 그림으로 미래를 앞서간 사람이며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타히티라는 원시적인 섬에서 영혼의 갈망과 평화를 그려낸 그는 바로 자연인이었다.


   저자는 진정한 예술의 길은 절대적인 고독과 처절한 고뇌 속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능만으로는 결코 예술의 경지를 이룰 수 없으며,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자신을 번제로 바치는 희생이 있어야만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달을 향하여 가되 달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예술의 길은 끝과 완성이 없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해주고 있다.


    서머싯 몸의 자전적 소설인 <인간의 굴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진로에 많은 방황을 하는 주인공인 필립은 자신의 젊은 모습이기도 하였다. 의사였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의사를 포기했던 작가. 그가 바라던 이상의 세계 즉 달의 세계를 이 소설에서 담았다고 보여 진다. 출세가 보장된 길을 과감하게 버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항구 도시에서 보잘것없는 보건소 관리자로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아브라함처럼. 거대하게 흐르는 문명의 물결 속에 떠밀려 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돌아가고 싶은 순수의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6펜스: 그 당시 영국의 가장 작은 단위의 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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