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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서쪽으로 난 창] 엘리베이터 걸(열세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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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8-17 22:55 조회1,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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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83364_YW7Hrg8O_54198884d3f83da0174ed2f0e04d56ce3ad9d1d4.jpg박지향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오르막길로는 다니지 않습니다. 반드시 내리막길로만 가지요. 아무리 급한 사정이 있어도 반드시 정해진 순서대로 한정된 인원수만 내려갈 수 있어요. 내려가는 시간을 단축시켜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한번도 그 시간을 단축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쉬울까요? 그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일단 출발선에 한번 들어서면 누구라도 자동으로 그 길을 달리게 됩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큰딸이 “정답” 하며 피식 웃는다. “모래시계입니다.” 맞습니다. 모래시계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발은 묶였지만 이렇게 라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감사한 맘으로 귀하게 쓰고 있다.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컴퓨터 게임이나 셀 폰을 들고 하는 게임은 할 줄도 모르고 흥미도 없다. 아직도 책갈피 속에 끼워 두었던 마른 꽃잎이나 나뭇잎을 붙여 카드를 만들고 손 편지를 쓰는 나는 심각한 올드 패션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 된 지금도 스무고개를 하자고 떼 아닌 떼를 쓰는 대책 없는 철부지 엄마다. 다 큰 아이들이 시대에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엄마와 스무고개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겠는가?. 싫은 기색 하나없이 놀이에 동참하는 딸들도 참 특이하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고마워” 하며 윙크를 던지자 “뭘 그까짓 걸” 하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우린 그냥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은 것뿐이에요” 한다. 


시간은 앞만 보며 달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말처럼 모래시계를 뒤집어 흘러내려온 모래를 다시 위쪽으로 쏟아 놓으면 현재가 되었던 모래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그것이 또 현재가 된다. 오늘은 어제의 반영인 것이다. 그러 하기에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과거 때문에 발이 묶인 사람도 있고 충실하게 쌓아 놓은 과거가 계단이 되고 엘리베이터가 된다. 


엘리베이터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할머니 조안나는 올해로 81세가 되셨다.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타기를 좋아하신다. 3층에 거주하시는 데 매일 오후엔 우편물 확인을 위해 우편함이 있는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가신다. 내려 가시는 건 문제가 없는데 돌아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직원들의 눈에 띄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많다. 그런 날에는 우편물을 가지고 3층으로 가셔야 할 할머니가 2층에도 나타나시고 5층에도 나타나신다. 운 좋은 날은 한 두 번 만에 방을 찾아 가시는데 그렇지 못한 날은 여러 번 타고 내리 고를 반복하신다. 교통사고후유증으로 방향 감각에 문제가 생기신 거다. 식사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 왕래하시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모든 분들이 서로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시므로 상부상조하신다. 그렇지만 일 거수 일 투족을 도움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혼자만의 볼일이 있을 때에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한번은 목적지를 못 찾고 헤매 다니 시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내가 쳐다보고 웃자 “나 지금 운동 중이야” 하시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셨다.


할머니는 40년 동안의 간호사 생활을 접고 63세 되던 해에 은퇴하셨다. 자그마한 키에 볼록하게 나온 배가 작은 눈사람을 연상케 한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코와 입술, 모두가 동글 동글 하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동글 해서 할머니 입에서 굴러 나온 말들은 구슬처럼 도르르 굴러 다닌다. 성격은 워낙 밝고 붙임성이 좋아 누구든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머니를 통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와 나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맘을 읽는다. 스스럼없이 장난도 하고 가족의 안부도 물으며 흉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할머니는 나를 “빅 스마일” 이라 부르고 나는 할머니에게 “엘리베이터 걸” 이라는 별명을 붙여 드렸다. 할머니는 그 별명을 아주 좋아하신다. 이력서 쓸 일 있으면 특기 란에 “엘리베이터 타기” 취미 란에도 “엘리베이터 타기” 라고 쓰시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취직하면 ‘빅맥 콤보’를 사 주시겠다는 할머니와 또 한번 배를 잡고 웃었다.


할머니와 나는 눈만 마주쳐도 웃는다. 웃을 일이 있어서 가 아니다. 웃다 보면 웃을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웃음보다 더 좋은 치료제가 없다는데 살다 보면 웃을 일이 어디 흔하던가.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웃을 일도 없을 뿐 더러 웃지 못하시는 분들도 많다. 찾아오는 이도 많지 않을 뿐 더러 딱히 갈 곳도 없다. 반면에 늘 웃는 조안나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모른다. 뿌린 만큼 거두는 진리를 보여주고 계시는 거다.

 

58년전 인 1962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지만 삼 년도 못살고 이혼을 했다. 도박 중독 이란 걸 모르고 결혼한 것이었다. 이혼을 하고 나니 남은 건 아들 하나와 산더미 같은 빚이었다. 다시는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찌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온다고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 열렬히 사랑했다 그리고 재혼을 했다. 남편은 건설회사 엔지니어였는데 공사 현장에서 감독을 하다 손가락 두개를 잃는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가 맺어준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아내와 사별을 했고 혼자 힘으로 아이 셋을 키우고 있었다. 아홉 살 연상의 남편은 십대였던 딸 하나와 초등학생이었던 쌍둥이 아들 둘을 선물했다. 할머니 표현이 그렇다. 그 세 아이들은 선물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옛 이야기하듯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결코 웃을 수 없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십대 딸의 반항과 방황을 붙들어 주어야 했고, 하루라도 조용히 지나가면 오히려 불안이 엄습하던 사고뭉치 쌍둥이 아들들의 광기를 잠재워야 했다. 그 틈사이에서 불안에 떠는 자신의 아들을 단단히 지켜야 했고 밥을 벌어야 했다. 포기 하고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결혼 후에 아침마다 떡밥을 주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된 여자에게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자상한 남편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정성껏 아내의 아침상을 차리는 남자, 잡힌 물고기에게 떡밥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우스운 원리는 그 남자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정신을 차렸다. 사고뭉치 아들 둘은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고 대학을 들어갔다. 물론 하루 아침에 개과천선한 것은 아니다. 변함없는 새엄마의 사랑에 감복한 아이들의 눈물의 회개가 자신들의 길을 활짝 열어준 것이었다. 삐뚤어 질 때로 삐뚤어진 딸이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사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조안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딸의 간호를 도맡아 했다.  6년이 넘는 투병생활과 재활 치료 끝에 걷고 달리고 먹고 웃는 딸을 선물 받았다. 


아이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 튼튼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딸은 자신의 경험이 약이 되어 청소년심리상담사가 되었다. 쌍둥이 두 아들 중 하나는 건축 설계사, 다른 하나는 군인이 되었고 자신이 낳은 아들은 컴퓨터 전문가가 되었다. 그녀는 성공했다. 세상이 보는 잣대로 측량한 성공이 아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들조차 찾아오지 않는 노년의 외로움을 그녀는 모른다. 쌍둥이들 중 한 아들은 퀘백에 또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딸은 토론토에서 살고 자신이 낳은 아들은 5분 거리에 산다. 그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6년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할머니를 대하는 그들은 누가 봐도 친 아들 친딸이다. 매달 누가 와도 오고 5분 거리의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엄마 “Mom” 이라 부른다. “엘리베이터 걸’은 그렇게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밝은 태양이 환하게 떠 오르는 아침, 모래시계를 뒤집어 햇살 좋은 창가에 놓았다. 고운 금가루 같은 모래 알갱이가 내리막길로 쉼없이 달려 내려간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도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모래시계처럼 마지막 일 것 같은 순간에 삶은 다시 시작된다. 영원히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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