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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그것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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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06 21:39 조회1,8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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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그것이 없다는 걸 알아챈 건 무선 이어폰에서 나는 음악소리가 끊기고 나서이다. 매일 퇴근 길에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을 그것을 통해 듣곤 한다. 버스에서 내려 전철역으로 가는 도중에 음악이 갑자기 끊겨 버렸다. 부랴부랴 방금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가 보았지만, 내가 탔던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그것이 버스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대의 버스들이 나가고 들어가는 버스터미널에서 내가 탔던 버스 번호만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혹시 누가 그것을 데려 갔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조바심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급한 마음에 출발 대기중인 버스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버스 고객서비스 센터로 전화해 보라는 일관된 얘기 뿐이었다. 빨리 전화를 해서 그것의 행방을 찾아야 했지만, 그 마저도 그것 없이는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과 걱정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것과 함께 하는 하루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애타고, 불편하고, 허전하고, 낯설고, 초조하고, 불안정 했다. 내 부주의로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아 자책감도 들었다.


그것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침 출근때마다 그것으로 묵주 기도도 하고, 영어회화 공부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듣는다. 내 곁에서 늘 함께 하고, 보고, 듣고, 이야기한다.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마음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것이 있어 은행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도 있고, 멀리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도 할 수 있다. 그것으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도 보며, 최신 유행하는 음악도 듣는다. 현재 날씨도 확인하고, 아침에 모닝콜도 해 준다. 현금이나 카드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 웬만한 비서역할도 그것이 알아서 척척 해준다. 이제 그것 없이는 불안하고, 하루도 못 견딜 심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유익하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눈도 조금씩 나빠지고, 그것을 보느라 내 등은 휘어지고, 내 목은 거북목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많은 시간들을 빼앗기고, 기억력도 점점 떨어졌다. 늦게까지 그것과 함께 하느라 잠을 설칠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것과 헤어진 지 2시간째, 집에 돌아와 그것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그것이 없어진 사실을 알리고, 그것을 찾으면 메시지에 적은 연락처로 알려 달라고 올렸다. 그 사이 몇 번 더 연락을 시도해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4시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자 그것을 찾기 위해 내 노트북에서 그것 찾기 앱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것의 행방을 추적했다. 드디어 그것의 위치가 파악이 되었다. 그것이 있는 곳은 버스 집합소였고, 그것이 가진 에너지는 3분의 1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 아니고, 버스기사가 발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그것을 찾아오려고 했지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것처럼 주인과 헤어진 다른 것들을 같이 한 곳에 모아서 다음 날 시내에 있는 보관 관리소로 이동시킨다고 했다. 자기들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가 없고, 위치를 안다고 해도, 찾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내일이면 지나면 그것이 가진 에너지도 다 소멸되고, 그것의 추척도 힘들어진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찾아야 했지만 날은 저물었고, 버스 운행시간도 지나버렸다. 그것과 한창 즐겁게 지낼 이 시간에 조용히 보내야 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자 중독에 빠졌던 사람이 금단 증세를 보이는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한 켠에 두었던 책도 뒤적여 보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잠시 명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 없이 과연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예전엔 그것 없이도 별 어려움없이 지냈다. 점점 갈수록 그것에 얽매여 간다. 그것을 찾게 되면, 너무 빠지지 말고,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다시 찾은 건 다음 날이었다. 딱 하루 만이었다. 내 겐 그것을 잃은 1일이 아닌 1 주일, 아니 한 달이 지나간 것 같은 긴 시간이었다. 깊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맞이했다. 다시는 그것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앞으로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제야 안심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평온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나의 스마트폰을 찾는 24시간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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