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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맛을 결정하는 기본, 멸치…통째 먹어야 칼륨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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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28 03:00 조회1,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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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요리는 멸치를 보면 알아요.”
배우 류수영의 이 말이 귀에 꽂혔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온 그는 쉽고 빠르게, 그야말로 뚝딱 음식을 만들어냈다. 손만 빠른 게 아니라 재료의 특징에 따른 요리법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류수영은 ‘선생’으로 불리고 있었다. 본명 ‘어남선’에 ‘선생’을 더해 ‘어남선생’이다. 요리 고수 같은 냄새가 나는 별명이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조리법이 다르다. 사진 왼쪽부터 소멸, 중멸, 대멸로 소멸과 중멸은 볶음이나 조림, 대멸은 국물용으로 주로 쓰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물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많고,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의 맛 평가 어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말이 특별히 새롭거나 놀랄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래, 멸치는 중요하지”하며 끄덕끄덕 동의하고 말았다.
 
실제로 우리 밥상에는 멸치가 빠질 날이 별로 없다. 일단 볶아서 반찬으로 먹는다.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콕 찍어 안주 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것 말고는 없다고? 설마!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젓갈로 담근 건 김치에 넣고, 국이나 찌개의 육수에도 멸치가 들어간다. 이때 멸치의 상태가 별로면 당연히 음식 맛도 별로다. 멸치볶음은 짤 테고, 젓갈은 비린 맛이 나고, 육수의 맛도 쓰겠지. 어남선생도 비슷한 말을 하려던 게 아닐까? 작은 생선이지만, 평범한 가정식의 맛을 결정하는 기본값 중 하나라고.
 
그러다 궁금해졌다. 멸치를 옛날에도 먹었을까? 지금처럼 위상이 높았을까? 찾아보니 멸치를 대량으로 잡았다는 기록은 조선 후기에나 등장한다. 그전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 오히려 멸치를 하찮게 본 느낌마저 있다. ‘선물로 주기엔 천하다(정약전 ‘자산어보’)‘거나 ’병을 일으키는 물고기(김려 ‘우해이어보’)‘ 같은 기록이다.
 
옛날 사람들이 멸치를 안 먹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동안 멸치를 쫓아다니며 연구한 내용을 책 『근대의 멸치, 제국의 멸치』를 쓴 김수희 독도재단 교육연구부장은 “한국인은 멸치의 감칠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며 “다만 볏짚이나 칡 껍질 같은 재료로 어망의 망지를 만들었던 옛날에는 멸치를 잡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크기가 작은 멸치는 작은 틈만 있어도 도망갔을 게 뻔하다.
 
전라도는 18세기부터 멸치 잡는 그물인 멸치망이 등장했다. 멸치망을 통해 멸치라는 이름이 문헌(1750년 『균역행람』)에 처음 등장했다. 멸치망은 찬거리 장만을 위한 소규모 어구로 구분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그러니 “탕으로 끓이든 가공하든 어떻게든 먹었을 것”이라는 게 김수희 부장의 설명이다. 이후로 멸치 어업이 발전하며 어구도 발달해갔다.
 
게다가 멸치는 빠르고 영리한 물고기다. 청어과의 등푸른생선인 멸치는 무리 지어 빠르게 헤엄친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멸치를 행어(行魚)라 불렀다. 제주에서는 바닷가에 돌을 쌓아 멸치를 가두는 돌살어업을 했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방법인데, 연안에 몰려온 멸치를 돌살에 가둬 멸치를 잡았다. 멸치는 물이 모두 빠지기 전에 건져냈는데, 이 방법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멸치는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풍부해 볶음부터 육수까지 활용하기 좋은 식재료다. [사진 pixabay]

 
잡기도 어려운데 파는 일도 쉽지 않았다. 멸치를 포함한 등푸른생선은 특유의 소화효소를 가지고 있어서 잡히자마자 살이 무른다. 19세기 중반 동해안에서는 후릿그물로 멸치를 한가득 잡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모래사장에서 멸치를 말렸다. 모래투성이 멸치였겠지만, 그렇게 말린 멸치를 서울에 팔고 다른 농어촌 지역과 물물교환을 했다.
 
멸치가 덜 알려진 데에는 반당어 탓(?)도 있다. ’반지‘ 또는 ’반당이‘라고도 하는데, 요즘에는 ‘밴댕이(정확히는 반당어와 밴댕이가 다른 어종이다)’라고 부른다. 반당어는 중국에까지 알려진 조선의 특산품이었다. 회, 구이, 젓갈로 먹었으며 젓갈은 김치를 담글 때도 넣었다.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1809)』에는 반당어젓을 넣은 석밖이김치를 소개하고 있다.
 
반당어는 멸치와 맛이 비슷하다. 500년 동안 선호하던 반당어의 씨가 마르기 시작하자 비슷한 어종인 멸치가 대체 식품이 됐다. 인구가 늘고 소비가 많아지며 멸치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1887년 진해에서 멸어세가 징수됐다. 단일 어업으로 멸치의 상업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멸치 어업의 상승세에 ‘스위치’를 켠 일이 또 있었다. 1876년 개항기에 일본인이 들여오면서부터다. 멸치는 일본인에게도 중요한 물고기였다. 에도시대부터 마른 멸치와 정어리를 어비(농업 비료)로 써왔고, 국물을 내는 데도 멸치를 사용했다. 도쿄는 가쓰오부시, 오사카와 큐슈 쪽에서는 멸치로 국물을 냈다. 아주 작은 생멸치를 밥 위에 올려 덮밥으로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 망이 터지게 잡히던 멸치는 남획으로 인해 어획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한국은 품질이 좋은 멸치가 많이 잡혔다. 특히 진해, 거제, 욕지도 근처에서 잡히던 2~4㎝의 크기의 멸치는 모두 비싼 값에 팔렸다. 1883년 일본과 조선의 근대적 통상관계 규정인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이 맺어졌다. 이때 전라·경상·강원·함경 등 4도 해안의 어로가 합법화됐다. 서남해 지역의 일본 어민들이 조선에 물밀 듯 들어왔는데, 이들 대부분이 멸치 어민이었다고 한다.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서 어민들이 기장 앞바다에서 갓 잡은 봄 멸치를 그물에서 털어내고 있다. [중앙일보]

그렇게 멸치는 조선의 중요 어업이 됐다. 일본 어민들은 멸치잡이 배, 가공선, 운반선을 세트로 움직이며 남해를 휩쓸었다. 근대 들어 우리나라 총어획량의 50%는 멸치와 정어리로 획일화됐다. 김수희 부장은 “조선의 노동력과 자원을 싹쓸이해 일본으로 멸치를 옮기는 근거지는 부산이었다”며 “멸치 어장과 멸치잡이 기술은 해방 후에도 남게 됐고, 이후에 멸치는 우리 어민의 주력 상품이 됐다”고 설명한다.
 
어쩐지 멸치의 똥만큼이나 쓰디쓴 역사다. 멸치 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멸치는 워낙에 칼슘이 풍부하지만, 똥과 뼈까지 통째로 먹는 게 칼슘 흡수를 더 높인다고 한다. 칼슘은 뼈를 튼튼하게도 하지만 신경전달을 원활하게 해줘 불안한 마음도 없애준다. 또, 멸치는 고단백 식품이다. 요리연구가 한복진의『우리 음식 백가지 2』에 따르면, 멸치의 단백질이 구성하는 여러 가지의 성분 중에 “이노신산은 감칠맛과 시원한 맛을 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던 조기젓과 준치젓, 반당이젓, 굴젓에는 감칠맛을 내는 이노신산이 많다. 그중 멸치젓은 이노신산 함유량이 가장 높다. 육수는 물론이고 젓갈로 만들어도 맛있는 이유다. 하나 더 보태면, 감칠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멸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수희 부장 역시 “한국인은 원래도 말린 생선을 좋아했다”면서 “우리는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는 동건법으로 명태나 조기, 청어를 보관하며 먹어왔다. 멸치 잡는 기술과 가공법이 어디서 왔든 간에, 멸치 맛이 우리에게 잘 맞았기 때문에 우리 음식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집반찬으로 꼽히는 멸치볶음. [중앙일보]

그렇다면 멸치는 어떤 걸 골라야 할까. 은빛이 은은하게 나고 표면에 상처가 많지 않고 비늘이 벗겨지지 않은 것이 신선하고 좋은 멸치다. 마른 멸치는 부스러기가 많이 없는 것이 좋다.  
 
그러고 보니, 어남선생이 멸치로 만든 것도 육수였다. 질 좋아 보이는 죽방 중멸치 한 줌에 밴댕이와 건새우와 다시마 등을 넣고 끓인 다음 ‘끝장 육수’라고 이름 지었다. 먹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분명 감칠맛이 나고 개운하겠지. 이 육수를 넣으면 어떤 음식이라도 맛을 깊게 해줄 테니, ‘끝장’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이세라 쿠킹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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