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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요괴들의 장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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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8-25 08:46 조회8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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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숨 죽은 듯 고요한 밤이었다.

잠을 청하려고 불을 끄자, 난데없이 요괴들이 몰려왔다. 놈들은 하나같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 얼굴에 마구 달라붙었다. 눈에서 불 난 놈, 번개 친 놈, 화가 잔뜩 난 놈들이었다.

“가.” “가.” “가.”

놈들은 끈덕지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들 붙었다. 그 눈동자들은 점점 방안 가득 모여들었다. 저희 들끼리 경쟁하듯 눈동자를 굴리며 짓 까불었다. 두 손으로 마구 때리고 몸을 피해도 자꾸만 달라붙었다.

“비켜, 저리 비켜!”

방문 위에 붙인 부적 탓이다. 해독이 안 되는 그 빨간 상형문자가 요괴들을 불러들였다. 요괴 따위는 없다고 믿었던 나에게 보란 듯 온방을 점유 당했다. 밤새도록 놈들은 예서제서 달려들어 내 눈을 찌르고, 노려보고, 흘겨보고 이놈 저놈 돌아가며 장난질을 해댔다.

나는 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그날도 엄마는 점집에서 일러준 대로 푸닥거리를 했다. 생전 무당집 근처도 간 적 없다가 부적을 붙인 이유는 현대의학에서도 고치지 못한 병을 고쳐보겠다는 지푸라기였다.

60평생 병 이라고는 모르고 봄이면 산으로 들로 나물 뜯고, 많은 농사 일 신나게 뛰어다니며 일만 하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수개월 째 몸져누웠다. 뒷골이 당기고 어지럽고 구토와 의식불명이 계속되었다.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별의별 검사와 요법에도 통 낫질 않고 실신상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점집 할아버지는 대뜸 말했다.

“느그 어미가 나가는 삼재구먼. 상문이 들었어. 여태 딴 짓만 했네. 이 부적은 몸에 지니고, 나머지는 방문에다 붙이고 정성을 들여.”

엄마는 모든 약을 끊고, 8일간 죽을 쑤어 재를 올리고 조심스레 하루하루를 견디었다. 캄캄한 밤 12시에 조용히 밖으로 나가 길가 밭에 죽을 놓고 오는 것.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될 것.

별도 달도 뜨지 않은 밤이면 오싹 했을 것이고, 비가 오는 날이나 번개 치는 날 밤이면 소름 끼쳤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영혼을 위해 정성을 들였던 탓인지, 믿음 탓인지, 엄마는 차츰 신통한 효력으로 활기를 찾았다. 그러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밤, 요괴들의 장난질을 못 보았냐고 하니, 엄마도 재를 지내는 동안 이상한 그림자들이 계속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점집 할아버지와 약속한대로 한 번도 뒤를 돌아 본적이 없었단다. 오직 병을 고치겠다는 신념으로 앞만 보고 지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날 밤을 생각하면 온몸이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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