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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그리운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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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9-01 06:59 조회8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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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수필가 캐나다 한인 문학가협회


무엇이든 하고자 노력하면 대게는 그것에 대한 목표를 이루고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순조로운 인생 항해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처하는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기인하는 것들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대단히 밀접하여 서로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것은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 삶의 톱니바퀴를 차지하는 거대하고도 중요한 부품 중의 하나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인데도 집 안은 섭씨 삼십 도를 웃돌아 잠이 오지 않았다. 땅콩이, 네로, 미오, 그리고 얼마 전에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얼굴에 고깔모자를 쓴 몸이 불편한 베이비를 놔두고 의리 없이 혼자만 살겠다고 밖의 텐트로 나갈 수는 없었다. 밖은 열을 받은 집보다는 한결 시원했다. 두툼한 털옷을 입은 고양이들이 안쓰러웠다. 틈틈이 마실 물을 갈아주고 물수건을 만들어 몸에 덮어주었다. 순한 땅콩이 외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모두 덮어준 물수건 아래로 빠져나간다. 욕조에 물을 받아 발 목욕을 시도했으나 모두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워낙 물을 싫어하는 동물이라 어쩔 수 없다. 그저 꾸준히 지켜보는 수밖에. 그나마 잠을 많이 자는 동물이라 다행스럽다. 


    십 육 년째 켈로나에 살지만 이런 더위는 처음이다. 섭씨 45.2도, 체감온도 섭씨 47도, 백 년이 넘은 통나무 집은 산 아래에 주변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여름에도 실내는 쾌적하고 시원했다. 그동안 냉방 가전제품과 거리가 멀었던 내가 아이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선풍기를 장만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도 잠시뿐 조용히 쉬던 곳에 뭔가 나타나 불어 대고 소리를 내니 모두 무서워서 숨어버렸다. 게다가 더운 바람만 나와 도로 물렸다. 우체국에서 돌아와 탈진하여 거실에 큰 대자로 뻗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 무엇하나, 인간으로 인해 살아있는 것들이 위협받는 세상인 것을. 참으로 개탄스럽다.

 

    어렸을 적 한여름에 대청마루에 누우면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리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바람결에 나른하게 취하여 낮잠을 자던 그리움에 슬픔이 몰려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허공에서 비행하는 잠자리를 졸린 눈으로 쫓던 때가 그립다. 찬바람이 들어가면 병이 든다고 배에 차렵이불을 덮고 엄마의 부채질을 받으며 꿈속으로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성남에 사는 친구의 원두막에 놀러가 주먹 만한 조랑 참외를 씻어 껍질째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향기로운 단맛이 가득 퍼졌다.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찬물에 밥을 말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거나 상추쌈을 만들어 입에 가득 쑤셔 넣으면 수북했던 고봉밥이 금방 동이 났다. 열무김치에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거나 시원한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햇감자를 삶아 포슬포슬한 그것을 소금에 찍어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았다. 밤중에 화장실을 들락거려도 달콤한 수박을 포기하지 못했고 찐 옥수수를 한 알씩 뜯어 먹으며 하는 가위 바위 보 내기가 마냥 즐거웠다. 동무들과 매미채를 들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잠자리나 나비를 잡아서 갖고 놀다가 불쌍하다고 이내 풀어주기도 했었다. 


    그때 우리는 알았을까. 창공에 흩날리던 우리의 웃음이 어른이 된 뒤에 시름으로 바뀌게 될 줄을. 지구의 온난화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크게 달라진 일상은 사소한 것들마저 애타게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 울고 웃으며 지인들과 함께 나누었던 소통과 공감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다.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영화관에서 홀로 앉아 상영하는 영화를 보며 함께 공감하던 군중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앉은 의자를 뒤에서 힘껏 차주기를, 팝콘이나 음료수를 엎질러주기를, 또는 친구들과 식당이나 바를 찾아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켜놓고 돌아가며 차례대로 맛을 음미해주기를, 단지 우리는 간절히 소망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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