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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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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12-22 08:09 조회6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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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수필가 

한인문학가 협회



내 기억 속에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눈 한 번 감았다 뜨니 마침표를 찍으려 달려드는 일이 몇 가지가 있다. 

억울하게도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 중 하나였다. 한 해 동안 제대로 무엇을 한 일이 있었나 싶게 벌써 연말이 코 앞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무엇을 딱히 한 일이 없었다. 일을 나가는 날은 일을 마치고 곧바로 집에 들어와 쉬었고 쉬는 날에는 집안일을 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굳이 한 일을 꼽자면 매일 캐나다 뉴스를 보았고, 고양이들과 조석으로 시간 맞춰 놀아주며 엄청나게 깊은 교감을 나눈 거였다.

그 덕분에 이제는 날마다 놀아주어야 하고 안 그러면 계속 들볶임을 당해야 했다. 그래도 참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나는 점점 더 완벽한 집사가 되어가고 있다. 

어쨌든 때는 바야흐로 일 년 중 가장 큰 기쁜 날이 돌아오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설레이는 마음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진배없이 똑같다. 이민을 오면 이민올 때의 나이에서 멈춘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도 하다.아직도 마음은 이팔 청춘이고 내리는 눈을 보면 밖에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진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받아야 할 선물을 상상하며 기대하던 마음이 이제는 반대로 내가 주어야 할 선물을 고르며 설레인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이리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올해가 가기 전에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 직접 벽에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기로 하였다. 며칠에 걸쳐 의자 위로 올라가 벽을 마주하였다. 그리고 백 번도 넘게 의자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도 의자를 오르내리는 일이 너무나 고되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 나는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온 몸에 뻗쳐오는 통증에 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초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떻게든 이 벽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육신을 지배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떡하니 거실 중앙에 커다란 그림을 그려 놨으니 중도에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첫 날 아침에 시작한 그림을 밖이 어둑해 질 때까지 붙들고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가’ 싶어 의자 위에 올라선 채로 저린 두 팔과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벽화는 아무나 그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날 밤 진통제를 먹고 앓았다.         다음 날부터 며칠 동안은 그림 쪽은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예고와 미대를 나온 오빠를 두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림과는 전혀 무관한 내가 벽화를 그리고자 한 것부터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시작한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꼬박 이틀을 쉬고 다시 시작했다. 떠오르는 대로 색을 쓰고 미친 듯이 붓을 휘둘렀다. 드디어 페인팅이 끝났다. 의자에서 내려와 바라보니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밑그림도 없이 그린 것 치고는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성경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드디어 끝마쳤다는 날아갈 것 같은 쾌감에 가슴이 요동쳤다. 이렇게 생애 첫 벽화는 완성되었다. 

    “얘들아, 엄마의 트리가 너무 근사하지 않니?!” 냥이들은 새로운 알알의 전구들에게 얼굴을 부벼댔다. 스위치를 올리자 밝고 환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빛났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더 없이 거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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