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1. 내인생의 황금기 - 연극영화학과 수업 이야기 >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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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1. 내인생의 황금기 - 연극영화학과 수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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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미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1-12 08:05 조회1,3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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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출연으로 밴쿠버 중앙일보와 인터뷰로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연기 이야기 중심으로 연재 기회가 주어져 좋은 인연으로 생각되었다. 혹시 연극영화과 진학이나 연기 관련 분야에 관심있는 독자들과 소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 갈 생각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꿈을 꾸고, 이상과 현실의 벽을 느껴 실망하고 주저앉기도 하며 삶에 치여 현실과 타협하며 그 꿈들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것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는 우리들 각자의 선택은 늘 최선이었을테니 말이다. 나 역시 배우라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위해 선택한 첫번째는 대학이었다. 내가 연기자로서 설 수 있었던 나의 근간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였다. 목표로 했던 학교였는데 운좋게 들어갔고,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나에게 더할나위없는 행복을 안겨줬다. 평생 꺼내 쓸 수 있을 창의적인 생각들을 이미 그곳에서 다 쏟아붓고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내 집중력 최고치였던 시기였다. 

 

입학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평범하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외적으로 그들에 비해 나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평범하기만 했다면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혀 낯설지 않았고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에너지가 마냥 좋았다. 나의 모든 피부로 오감으로 느꼈던 것 같다. “와 이런 자유로움 너무 좋다! 이걸 원했지! 그래 이거야!!” 행복했다. 한 학기에 한 작품씩, 졸업까지 총 4작품의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데, 정말 꿈만 같았다. 무대에서 공연을 올린다는 것, 전설로만 여겨지던 드라마센터 원형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는 것, 나에겐 전혀 흥미롭지 못했던 이론수업이 아닌 실기위주의 수업과정들, 자유로운 수업 방식, 생각이 열려있는 교수님들, 같은 꿈과 목표를 위해 모인 동기/선배들과의 창의적인 활동, 소통, 마찰... 무엇 하나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이것은 기적이다. 고등학교시절 야자시간이면 수학인터넷강의를 들으며 정석을 베게삼아 잠을 청하던 나에게 대학에서의 공부는 행복 그 자체였다. 그래서 방학이 되는게 싫었다. 학기중에는 거의 왕복 4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거리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고, 방학이면 돈을 벌어야 했기에 동아리 활동도 한 번 참여하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수업을 듣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전혀 부족함 없이 행복했으니 말이다. 1학년 2학기 제작실습에서 송혜숙 담임 교수님과의 수업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일명 송마녀라 불리워지던 교수님은 무서움과는 거리가 먼, 마녀배달부 키키같은 귀여운 소녀였다. 똑 떨어지는 짧은단발머리에 롱스커트, 스타일이 확실한 교수님만의 옷차림, 동그란 안경 위로 흐뭇하게 웃으시던 그 미소는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남산에 모여 남산 한 바퀴를 뛴다. 뛰고 나면 교수님께선 손수 만들어오신 샌드위치를 나누어 주시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대본리딩하는 매 수업시간마다 다들 피곤해하는 것 같으면 “미선아~커피 마시자~”라며 또 씽긋 웃으신다. 그러면 우리는 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자판기 커피를 사들고 행복한 휴식을 즐겼다. 밥은 또 얼마나 많이 사주셨는지......

 

늘 뭔가 말씀하실때면 툭툭 던져주시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는데 절대로 정답을 알려주시지는 않는다. 그냥 재밌어 하며 웃으신다. 고민거리,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시고 스스로 터득하게끔 했던 교수님의 가르침이 나는 참 좋았다. 내가 원하던 수업방식이었다. 수학처럼 어떠한 공식도 답도 딱 맞아떨어지는 결론도 없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정하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보여지는 그림이 훌륭하다면 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끌어내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주고 존중해주시면서 그렇게 고민하는 학생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늘 흥미롭게 바라보셨다.  그런 교수님께서 단 한 번 정답을 알려주신적이 있다. “미선이는 다 좋은데 융통성이 없는 게 흠이야.” 정답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 이후로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곧이곧대로 해야하는 나의 융통성 없는 FM성향은 아직도 그대로 변함이 없다. 

758783364_gVmUlpGA_78d66af7b6f811cb31291054e2f2b93af1a8a538.jpeg그리고 교수님께서도 여전하시다. 하하하하하!!  

 

학과 수업중 제일 중요한 필수과목이 제작실습이었는데, 제작실습은 오디션으로 포지션이 정해진다. 배우/스텝으로 나눠지는데 나는 운좋게도 4작품 모두 배우로 참여할 수 있었다. 1학년 1학기 작품 '리투아니아(루퍼트부르크작)'에서 <어머니>를, 2학기 작품 '새(아리스토파네스작)' 각색본에서 <삼신할매>를, 2학년 1학기 작품 '벚꽃동산(안톤체홉작)'에서 <야냐>를, 그리고 마지막 졸업 작품이었던 '사천의선인(베르톨트브레히트작)'에서는 <신씨아줌마>를 연기했다. 언젠가 내가 연극연출을 하게 된다면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가 '리투아니아'다. 열정적인 화법과 새하얀 은발이 너무 매력적이셨던 故양정현 교수님과 함께 했던 작품이었는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작은 시골마을, 가난에 허덕이는 한 가족에게 의문의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는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며 행복해하는데 그 돈이 탐났던 가족은 결국 남자를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술집주인을 통해 손님으로 찾아온 그 남자가 바로 오래전 집을 떠났던 그들의 아들이었음을 알게되고, 성공한 모습으로 찾아온 아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들을 놀래켜주기위해 아들임을 밝히지 않고 손님으로 가장하여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는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연습할때면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선생님의 표정을 염두해두지 않을 수 없다.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아들로 나오는 손님이 첫 대사를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교수님께선 항상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그게 아닌데...하며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교수님도 역시 답을 주는 대신 그냥 바라보셨고, 내가 연기하는 역할은 아니지만 정말 궁금했다. 그러나 그당시 부끄러워 질문하나 제대로 못하던 나에게 그것은 늘 의문으로만 남아있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손님의 첫 대사의 감정은 뭐였을까? 늘 궁금했는데 졸업 후 문득 언젠가 그것에 대해 깨달았다. “아 이거였구나...그래서 교수님께서 그 때 그러셨구나...!” 왜 아쉬워 하셨는지 너무 잘 와닿았다. 손님의 첫 대사는 분명 그렇게 나오면 안 되는 대사라는것을. “잘 먹었습니다, 아주 잘 먹었어요” 간단한 대사같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하고도 복잡한 감정의 대사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손님의 첫대사가 단순한 감정으로 연기되어지는 많은 '리투아니아' 공연을 볼 때면 나도 교수님과 같은 그런 마음이 되는 것 같다. 그때는 왜 내가 그걸 몰랐을까...너무도 단순한 사실인데.....그래서 연기는 경험이 중요하고, 가슴으로 연기해야함을 또 한 번 느낀다. 또한 늘 깨달음의 즐거움이 있다. 찾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숨바꼭질처럼 숨어있던 사실들이 계속해서 드러난다.제작실습에 들어가면 그날그날 연습량에 따라 끝나는 시간에 변수가 생기기에 학교에서 잠들고, 아침에 학교 세면대에서 씻고 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그런 날은 대충 씻고 수업에 들어간다. 피곤에 지칠만도 하지만 연출론, 소리와리듬, 몸다스리기, 화술과화법, 택견 등 많은 실기과목들은 그 자체로 또 피곤을 잊게 해준다. 늘 창의적 영감을 위해 몰두해야 했던 그 시간들이 나는 너무 값지고 소중했다. 오감을 활용하는 다양한 실기수업들은 곧 나의 피로를 해소시키는 원천이었다. 

 

특히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수업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공연을 할 때의 그 감동과 아늑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것이다. 수 없이 많은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거쳐간 역사적인 공간이며 내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연극의 꿈을 키웠고 사랑했고 또 흠모했던 공간이었다. 객석에 앉아 원형무대를 가만히 바라볼때면 알 수 없는 아늑한 적막함이 어떤 존재로서 나를 마주하며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느낌때문에 가만히 극장에 앉아있는게 참 좋았다. 극장귀신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였나? 하하하!!!

 

이제는 극장으로써 문을 닫았기에 많이 아쉽고 속상하지만 그 감동과 가슴벅찬 느낌을 알고 있는 우리들 마음속에 드라마센터는 여전히 살아있다. “예장동에 자리잡은 서울예대는 학장이 대빵이라 교수도 대빵 교수가 대빵이라 학생도 대빵 연극과 만만세! 영광영광 서울예대~영광영광 서울예대~영광영광 서울예대~연극과 만만세!” 에너지 넘치는 재밌는 노래다. 언제부터 이 노래가 학교 교가처럼 불리워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긍지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드라마센터 앞마당에서 우리는 늘 이 노래를 불렀다. 학교행사때도 주점이나 공공장소 어디서든 장소 구애없이 불렀다. 그런 유쾌한 열정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중고시절 나에게 공부는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다. 물론 국어/영어/일어/음악/미술은 좋아했지만 그 외 과목들은 늘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걸 왜 배워야 하는 걸까? 참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늘 변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기싫으면 변명의 이유를 찾는다 하지 않았던가...기초가 없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배움의 의지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공부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했던 연극과 수업은 나의 가능성을 알게 해주고, 그동안 표현하고 싶었던 나의 잠재된 능력들을 끌어내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대학시절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졸업하던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옷 다 벗고 춤추라 해도 출 수 있겠더란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황금기를 보냈던 그곳은 나와 우리 부모님께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선물같은 존재였다. 

 

배우 양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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