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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3. 첫 작품 - 야인시대 장형일 감독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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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미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2-09 07:08 조회1,0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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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출연으로 밴쿠버 중앙일보와 인터뷰로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연기 이야기 중심으로 연재 기회가 주어져 좋은 인연으로 생각되었다. 혹시 연극영화과 진학이나 연기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들과 소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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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의 드라마 데뷔작품이었던 'SBS야인시대'의 故장형일 감독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서울로 올라와 대학로에 자리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엔 아직 공연도 일도 없었던터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던 길이었는데, 우연히 벼룩시장이라는 신문광고지가 보여 들고 들어왔다. 방에 드러누워 자연스럽게 일자리공고면을 보던 중, 한강예술이라는 곳에서 엑스트라(보조출연)를 모집한다는 일자리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동안 연극만 배웠고, 연극에 대해서만 접했던 나였기에 보조출연이라는 것이 조금은 생소했지만, 연기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재미있겠다 싶어 다음 날 바로 한강예술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지금은 프로필을 찍어준다는 명목으로 5만원인가...돈을 내야한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엔 신분증만 있으면 되었다. 신분증 복사만 끝내고 나면 바로 다음 날 부터라도 일할 수 있었다. 현대극과 시대극 사극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나갔던 건 현대극이었던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날 야인시대 촬영섭외가 들어왔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장형일 감독님을 만나게 되었다. 

 

758783364_tSgNf49i_2d85334f9deb39e69b06124fb60907ffd40008b4.png감독님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파이프담배가 떠오른다. 현장에 계실때면 항상 파이프담배를 물고 계셨는데 맥아더장군이 연상되는 모자와 네모난 안경까지, 그 세 가지는 늘 감독님의 시그니처였다. 보조출연 특성상 정해진 배역 없이 현장에 투입 되었던 나는 기모노를 입으라 하면 그날은 일본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것이었고, 한복을 입으라 하면 조선사람이 되어 연기를 하면 되었다. 시장상인부터, 손님, 기생 등... 그날그날의 배역이 늘 달랐다. 일반인도 할 수 있었던 보조출연은 하루하루 다른 역의 인물로서 의상을 갖춰입고,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까지 완성되니 사실적인 재미가 쏠쏠했다. 

 

내 기억에 첫 날이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야인시대 첫 촬영에서 기모노를 입고 일본인을 연기하는 것이 나의 첫 임무였는데, 최대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그리고 의상에 맞게끔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나막신을 신고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인들에게서 봤던 종종걸음을 표현하려고 애썼는데, 보조출연이기 때문에 전혀 눈에 띄지 않을 걸 알았지만 난 나의 역할에 최대한 충실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런 모습들이 감독님의 눈에 좋게 보였던 것 같다. 나이트 촬영이었는데, 관계자분이 한 분 오시더니 이걸 연기로 할 수 있겠냐며 대사를 하나 건네주었다. 청년 김두한이 지나갈 때 일본기생으로서 일본어로 “오빠 놀다가요~”라고 말하는 연기였는데, 너무 재미있겠다 싶어서 어떻게 살려볼까 고민하다 청년 김두한 일행이 지나갈 때 팔짱을 끼며 붙들고선 “오빠 놀다가요~” 했더니 싫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 더 붙들며 “오빠아~~놀다가요~~!!” 하는데 또 싫다며 됐다고 한다. 그래서 대본에는 없었지만 내 생각에 추가해서 연기하면 상황흐름에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지나쳐 가는 김두한 뒤에 대고 큰소리로, 바보같은 놈(?)의 의미인 “빠가야로(바카야로)!!!!”를 외쳤다.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연기를 한 것이다. 하하하!!! 감독님의 날카로운 컷 사인이 들려왔고, 촬영장의 정적과 함께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결과는 모 아니면 도 였으니까...

 

감독님께서 소리치며 말씀하셨다. “너 누가 연기를 그렇게 하래?“ 그래서 나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뒤이어 감독님께서 아주 큰 소리로 다시 또 말씀하셨다. “잘했어!!! 연기는 그렇게 하는 거야!!” 하시며 활짝 웃어주셨는데, 와~ 그 때의 그 감동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내 마음은 무아지경 상태였다. 다시 한 번 촬영할 때 빠가야로를 꼭 그렇게 소리쳐야 하냐고 하시길래, 그 다음 촬영에선 소리를 줄여서 촬영을 마무리했다. 하하하!!! 그렇게 기분좋은 첫 촬영을 끝내면서 나는 야인시대 촬영장에서 빠가야로로 불리워졌다. 현장에 가면 감독님께서 먼저 늘 웃으며 인사해주시고 잘 대해주시니 다른 스태프분들도 똑같이 참 잘 대해주셨다. 야인시대 촬영 내내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다. 그 당시에 난 정말 겁이 없었고, 그냥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면 마냥 좋았고 그래서 즐겼던 것 같다. 외적으로도 그 인물처럼 만들어주는데 대사까지 생겼으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그 땐 정말 겁이 없었다. 

 

758783364_cM14UNA0_72d057da0f0a5240bc5f1242356bba1b1bfdf2ce.png그렇게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에 대사있는 배역으로 또 연기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조선기생 역이었는데 원래는 캐스팅 된 배우가 따로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현장에선 무엇이든 감독님 말씀이 곧 법이었다. 그 배우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당시 최철호배우님이 연기했던 신마적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상황에서 닫혀있는 문 앞에서 뒷담화하듯 연기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때도 감독님께서 넌즈시 웃으시며 “감정이 그렇게 밖에 안 되나?” 하셔서 곧 그 의중을 파악하여 다르게 또 연기하였더니 흐뭇하게 웃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감독님께 너무너무 감사했지만 한 번도 그 감사함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융통성 없고 늘 부족했던 나는 어리석게도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조차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 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으로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이 찾아왔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우미관 촬영이었던 것 같은데(?)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자꾸 혼을 내며 뭐라하셨다. 나 역시 그곳에서 배경처럼 앉아있었기에 그 배우가 감독님께 혼나는 장면을 다 보고 있었더란 말이다. 그러다가 감독님께서 또 빠가야로를 찾으셨다. 우리를 인솔하던 반장이 있었는데 곽반장님이 오더니 작은 소리로 “할 수 있겠어요?”하고 물었고 감독님께서 조금 떨어진 옆에 서서 “빠가야로가 해봐” 하며 흐뭇하게 웃고계셨다. 원래의 나였더라면 당연히 “네!! 할 수 있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를 외치고 나가서 연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노래는 분명 내가 잘 할 수 있는 노래였고, 역할로서도 내가 아주 자신있어하는 배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에, 배우가 감독님께 혼나는 걸 다 봤었기에 내가 했는데 잘 넘어가면 방금 전 연기했던 그 배우분이 상처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못하여 감독님께서 실망하시면 어쩌나 싶은 망설임도 있었고...여러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758783364_S4ofUOQN_768b24b2f0da261a4a0f955b603b1e18cb96b34a.png다들 내게 시선집중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나는 반장님한테 “해봐야 알겠는데요...” 라고 말해버렸다. 해봐야 알겠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하아......지금 생각해도 정말 바보같은 대답이었고 한심한 대답이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연기할 빠가야로를 예상하셨을텐데, “해봐야 알겠는데요...” 헉,헉,헉...아....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바보멍텅구리같다. 그러자 감독님께서 아주 냉담하게 소리치며 말씀하셨다. “됐어! 그냥 후시녹음으로 가!!!” 하아....그 한심했던 순간을 잊을수가 없다. 애써 잊으려해도 늘 더 선명해진다. 정말 내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연기였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걸 고민하고 망설였는지 나 스스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가 잘 했을 때 부끄러워했을 그 배우가 마음에 걸렸고, 자신있게 나서서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감독님께서 실망하실까봐 머뭇거리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않고선 내가 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배역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평소 해 보고 싶었던 좋아하던 배역이었다. 그날의 창피함과 실망하던 감독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회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큰 실수가 하나 더 있었다. 

 

다음 장면을 준비해야해서 잠깐의 휴식시간이 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혼자 앉아있던 나에게 감독님께서 다가오셨다. 그러더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느 때 처럼 미소지으며 물으셨다. “빠가야로, 넌 여기 왜 왔어?”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보통은 연기가 좋아서 현장에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 왔다, 촬영현장이 궁금해서 왔다, 야인시대를 너무 좋아해서 오게 되었다 또는 감독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기타 등등...연기자로서 말할 수 있는 아주 많은 대답의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답은 이랬다. “돈 벌려고 왔는데요(?)” ...... 감독님께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며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계시더니 이내 곧 자리를 뜨셨다. 

 

참...내가 생각해도 할 말이 없다.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연기하겠다는 녀석이 돈 때문에 왔다니...그냥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해서 왔나 보구나...그저 그렇게 한심하게 바라보셨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아무리 주워담고 싶어도 한 번 뱉은 그 생각 없는 말은 되돌릴 수가 없다. 절대로. 그 당시 나는 매체연기에 대해 무지했고, 학교에서도 연극만 배웠기에 연극만 알았다. 게다가 실제로 벼룩시장 신문광고를 보고 돈을 벌려고 왔었던 터라 생각 없이 그 사실 그대로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재미있었고, 매체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너무 대단해 보이고 높게만 보였던 감독님께서 배역도 없이 보조출연으로 나갔던 나에게 직접 다가와 해주신 갑작스런 질문 앞에서 아무것도 준비되지 못했던 나는 당황하여 그렇게 말해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촬영이 있었지만, 얼마되지 않아 공연을 하게 되어 보조출연 일을 관두게 되었다. “돈 벌려고 왔는데요(?)” 그것이 감독님과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감독님이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장형일 감독님이라고 말 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를 믿어주셨던 분이다. 보조출연이었고, 대사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임과 눈빛, 표정으로만 연기했던 나를 카메라안에서 찾아내 주셨고, 배역을 주셨다. 당돌하게 마음대로 없는 대사를 연기했을 때도 칭찬해주셨고, 옆에 앉아 질문해주시고, 흐뭇하게 웃어주시던 내 인생 최고의 감독님, 최고의 은인...장형일 감독님. 

 

정말 그렇게 큰 사랑을 받고서도 난 잘보이려고 애쓰는 것 처럼 보일까봐 감사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돌아섰다. 참 철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뒤늦게 2013년 10월 췌장암으로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파이프담배 한 번 사들고 찾아뵙지 못했던 그 죄송함에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났다. 늘 어리석게도 후회만 하면서 사는 내가 너무 미웠다. 감사했으면 표현을 했으면 되었을 것을, 왜 그것 하나를 못해서 이렇게 후회를 하는지......참 바보같은 인생이다. 그 이후로 더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감사한 분들께 최대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 불필요한 생각이 너무 많다. 나는 과연 언제쯤 어른이 될까 싶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한다. 내게 찾아왔던 행운같았던 그 첫 번째 기회를 나는 그렇게 내 스스로 놓쳐버렸다. 왜 그랬느냐고 수십 수백번을 되뇌이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다.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저 인생사는 법을 하나 또 배웠다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그리고 늘 희망한다. 꿈에서라도 꼭 한 번 감독님을 뵐 수 있기를...... 그래서 나의 진심을 꼭 전할 수 있기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감독님...!!”

 

배우양미선(인스타그램@yangmiseon_claire)                                                 

일러스트작가 이재빈(인스타그램@woq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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