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4. 봉준호감독과 아쉬운 블랙리스트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리빙 | [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4. 봉준호감독과 아쉬운 블랙리스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미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2-23 08:11 조회920회 댓글0건

본문

오징어 게임 출연으로 밴쿠버 중앙일보와 인터뷰로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연기 이야기 중심으로 연재 기회가 주어져 좋은 인연으로 생각되었다. 혹시 연극영화과 진학이나 연기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들과 소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갈 생각이다. 

 

758783364_nAwWvIEK_9eda5f1abb9a1c42be09ea817b99c497d8033206.jpeg오늘 이야기는 어쩌다보니 제목에서 너무 자극적인 모양새를 보여주지 않았나...싶은데, 민감한 사항의 소재(?) 또는 그런 어떤 것과는 전혀 관련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하하하하하!!! 때는 다시 거슬러 올라가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연극과 과대표이면서 학회장이었던 절친했던 오라버니의 추천으로 나를 포함한 세명이서 오디션을 보았는데, 그 오디션이 바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었다.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학교 학과 사무실로 캐스팅협조 문의가 왔고, 조감독이 찾고 있는 이미지의 학생을 학회장에게 추천받았던 것 같다.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날 내가 연기했던 장면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이미 보았다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여경 권귀옥이 연쇄살인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내며 범인에 대해 추측하는 장면을 말이다. 대사가 비교적 긴 편이었는데, 대략 이렇다. “FM라디오 방송국에서 받은 자료인데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틀어달라는 남자가 있었어요. 어제는 제가 직접 들었구요. 태령읍에서 외로운 남자가 보냅니다. 비오는 밤 꼭 틀어주세요” 바로, 그 장면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영화 개봉 당시 이 영화가 그 영화였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봤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어! 나 저거 오디션 봤던 대사다!” 라고 떠올리며 아쉬워했었기에 선명하게 기억한다. 여기서 어떤영화인지 모르고 봤다는 것에 의아해 하는 분들이 분명 있으실텐데, 그 당시 나는 영화나 영화감독과 관련한 것에 대해 정말 지극히 무지했다. 

 

지금은 1일 1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지만, 과거의 나에게 영화는 그닥 매력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영화를 제대로 접한 시기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으니 말이다. 문화적인 여건이 현저히 부족했던 시골에서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영화는 주로 주말에 더빙판으로 방영되던 [주말의 명화]정도가 전부였다. 그 당시 나는 그런 더빙 영화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언제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릴적 비디오 비슷한 것이 집에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몇몇 무술관련 홍콩영화외엔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면 강시(?)영화나 드라마로 방영되던 판관 포청천(?)정도? 물론 재밌게는 봤지만 그것들로 인해 내가 감동을 받고, 연기가 하고 싶고, 영화나 배우나 감독이 궁금해지고 그렇게 되고 싶은 꿈을 꾸고...그렇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대학 때 비로소 시청각실에 있는 영화들을 하나씩 접하면서 영화라는것을 알기 시작했다. 물론 그 때도 주로 학과 수업과 관련된 자료들 위주로 봤었기에 영화에 매료되거나 하지는 못했다. 우리학교 연기과 조교로 근무하던 당시 일이 일찍 끝나거나 쉬는날이면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주로 봤었는데, 그 당시 흠뻑 빠져있던 배우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다.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외국 배우를 묻는다면 단연코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나는 영화를 선택할 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무조건 보기도 하지만, 보통은 제목과 스토리를 보고 결정하는 편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영화가 바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였다. 제목과 스토리가 마음에 끌려 영화를 봤던건데, 역시나 영화도 너무 좋았고 그의 연기는 정말이지 너무 멋졌다. 그 후 나는 그의 팬이 되어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가 나오는 영화들을 하나씩 하나씩 섭렵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 발, 순수의 시대, 프라하의 봄, 전망좋은 방, 라스트모히칸, 크루서블' ... 그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배우의 매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배우 은퇴작인 '팬텀 스레드'를 포함해서 링컨, 나인, 데어윌비블러드' 까지 모두 다 말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 이병헌님의 연기도 그 이후에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로 처음접했으니, 이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짐작되지 않을 까 싶다. 

 

758783364_pK6oamuV_8226ee488dafdb3c4fc19448405947d6046ba09f.jpeg아무튼 궂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래야만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납득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자 그럼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봉준호감독님 영화 오디션을 봤고 결국 내가 캐스팅이 되었다. 영화가 뭔지는 잘 몰랐지만 우선 어쨌든 내가 되었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감독님께서 실물을 보고 싶어 하시니 촬영장으로 나와 달라는 조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 그 당시 그 촬영장에서 찍고 있던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촬영장에 가서 감독님께 웃으며 인사를 드렸는데, 감독님께서 날 데리고 갔던 조감독님께 하는 말씀이 “그 이미지가 아닌데(?)”라며 의아해하셨다. 하하하하하!!! 

 

758783364_JUp9estc_7d64cade9db8a84c6b72ed71229108309fa91fb4.jpeg감독님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참 어리석게도 나는 촬영장에 감독님을 뵈러 가니까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하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하지도 않던 피부화장도 좀 하고, 헤어스타일도 좀 더 신경쓰고, 의상도 나름 좀 더 산뜻하게 준비해서 차려입고 갔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배우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날 캐스팅한 이유를 생각해보라. 그것과 전혀 상관없어서 나를 캐스팅 했을 것이다...하하하하하!!! 궂이 왜 그렇게 꾸미고 차려입고 가서는......지금 생각해도 참 창피하다. 어쩜 그리 생각이 없었는지......다행히 조감독님이 옆에서 “화장을 하고 좀 꾸며서 그렇지 원래 이미지랑 잘 맞아요” 라는 식의 말로 도움을 주셨다. 그렇게 그 날 나는 봉준호감독님과 처음 만났고, 영화 촬영장도 처음 접했다. 조감독님이 밥먹고 가라 하셔서 현장에서 주는 밥도 먹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야인시대 보조출연을 하고 있을 때 친했던 동기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모교수님 작품에 노래할 줄 아는 배우가 필요한데 소개 좀 해 달라 해서 나를 추천했단다. 그 작품이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였는데, 졸업 후 나의 첫 연극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무지했고, 연극만 배웠던 나에게 우선순위는 당연히 연극이었기에 야인시대 보조출연도 관두고 연극연습에 몰두했다. 그것이 정말 큰 실수였다. 물론 첫 공연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고 기쁜일이었지만, 그 전에 반드시 내가 스케쥴 확인을 하고 공연 참여 결정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 당시 내 기억저장고에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잊고 있던 중, 조감독님의 연락이 왔고 촬영 일정이 언제쯤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거기에 대고 나는 대뜸 “어? 저 공연해야되는데!?”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그 때 내 생각엔 연기하겠다는 사람은 워낙 많으니 당연히 내가 못하면 바로 바로 다른 사람으로 쉽게 대체 되는 그런 것 쯤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오디션 연락 오는 것 하나하나,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일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이 참 많이 후회된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그때는 나와 관련있는 분야라고 전혀 생각을 못했었기에 드라마나 영화의 오디션 시스템, 배우 캐스팅 과정이나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들 그런 것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직접 통화했던 조감독님은 무식하고 몰상식한 나의 대답에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었을까?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을 나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 당시의 나에게 영화나 드라마는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연극을 전공했으니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당연히 연극밖에 없을것이라 생각했고, 그 영화의 캐스팅은 그저 운이 좋아 되었을 뿐,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작업은 아닐거라고... 그러니 나 하나쯤 빠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않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당연히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고, 영화 감독은 누가 있으며,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누가있고...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나 생각자체가 나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내가 연기하는 게 좋아서 연기를 선택했고, 첫 배움의 시작이 연극이었으니 당연히 연극만 해야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두 번째 찾아온 황금같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 친했던 동기 오빠가 내 얘길 듣더니 하는 말이 “니가 그 영화를 안 한다고 했다고? 연극해야 해서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고? 와 미치겠다......양미선!! 너는 이제 블랙리스트에 758783364_Fx421arQ_142f87e0675c76df4a6fa23d0457f008bef53a1a.jpeg오른거야 바보야!!” 그러면서 어이없이 웃었다. 왜 아무에게도 물어 볼 생각을 못했을까? 아니 왜 물어 볼 생각조차 안했을까? 참 답답할노릇이다. 그래. 그렇게 나는 봉준호감독님 캐스팅목록에서 아마도 지금까지 그렇게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을 것이다. 누가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겠는가? 아직까지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내가 맡은 배역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참 바보다...참 모르는게 많았던 바보였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더니....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배우 양미선 (인스타@yangmiseon_claire)

일러스트 이재빈 (인스타@woqls)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87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