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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밴쿠버문학 신춘문예 당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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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문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3-30 12:54 조회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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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동안 봉인된 무저갱 속에 갇혀 있다 뛰쳐나온 괴물은 과연 어떤 소리를 낼까. 그 순간 아버지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가 바로 그런 소리일 것 같아.

“이런 배은망덕한 놈!”

말릴 틈도 없었어. 아버지가 호통과 동시에 형의 머리를 주먹으로 세차게 후려 갈겼어. 형은 맥없이 그 자리에 널브러져 버렸어. 아버지가 씩씩거리며 쓰러져 있는 형에게 다가섰어. 커다란 그늘이 형의 창백한 이마를 뒤덮고, 투박한 손이 형의 가냘픈 멱살을 움켜잡았어. 저러다가 아버지가 형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있는 힘껏 아버지 팔을 붙잡고 늘어졌어. 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아버지는 내 손을 단박에 뿌리쳐 버렸어. 그러더니 형을 질질 끌고 집 밖으로 나가서 곧장 철문 쪽으로 향했어. 집 좌측 벽을 따라 가다가 보면 나오는 그 문은 창고로 연결되는 문이었어. 형은 맨발이 땅바닥에 긁혀서 피가 나는데도 좀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했어.

 

아버지가 철문을 힘껏 걷어찼어. 2평 남짓 되는 장방형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어. 내부가 온통 콘크리트로 발라져 있는 창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그 곳에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게다가 습기까지 차서 벽은 눅눅하고, 냄새도 퀴퀴했어. 알전구 하나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지만, 불을 켜던, 끄던 실내는 어두컴컴했어. 천장 바로 아래쪽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도 밖에 달린 쇠창살 때문인지 채광효과가 좋지 않았어.

아버지는 작게 옹크리고 있는 형을 그 살풍경 속에 밀어 넣고는, 어디선가 열쇠를 가져와서 철문을 밖에서 잠갔어. 자물쇠를 두 개나 걸고서.

“지 까짓 게 얼마나 버티겠어. 물도 밥도 이불도, 아무 것도 없는데. 이틀을 못 버틸 거다. 잘해야 사흘이면 뛰쳐나오겠지. 너! 문 열어주거나 음식을 건네주거나 하면 정말 크게 혼날 줄 알아라.”

나는 울면서 고개를 주억거렸어. 문을 열어주는 건 고사하고 그 안을 들여다 볼 방도조차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철문 바로 맞은편 담장에 기대어 앉았어.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 동안 두 시간 정도가 흘렀어. 그런데 갑자기 철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안에서 형이 문을 두드리면서 뭐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어. 나는 서둘러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서 형이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 문을 열어주자고 애원했어. 울고불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나를 보고 아버지도 못 이기는 체 열쇠를 들고 창고로 나왔어.

 

형은 그때까지도 발악적으로 철문을 두들겨 대고 있었어. 철문을 열자 형이 급한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뛰어 나왔어. 거미! 형이 소리쳤어. 거미 좀 잡아 줘, 형욱아! 문 맞은 편 벽 가운데 거미가 한 마리 앉아 있었어. 거짓말 좀 보태면 어린애 손바닥만 한 크기여서, 실내가 어두컴컴한 데도 눈에 금방 띄었어. 형이 또 거미 좀 잡아달라고 소리를 질렀어. 나는 얼떨결에 신발을 벗어 거미를 내리쳤어. 두 번, 세 번. 결국 거미는 압사체가 되어 내 신발 바닥에 들러붙었어.

거미가 죽은 것을 확인한 형은 아까와 다르게 몹시 차분해져 있었어. 그리고 자진해서 창고 안으로 들어서더니, 자기 손으로 창고 문을 닫았어.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아버지와 나를 밖에 남겨두고.

 

형이 창고에 갇힌 지 나흘이 지났어. 나흘이 아니라 40년 같았어. 거미 사건 이후로 창고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어. 그리고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어. 어제도 잿빛, 오늘도 잿빛, 어쩌면 내일도 잿빛.

아버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조한 기색을 보였어.

나흘째 되던 날. 아버지는 퇴근하자마자 창고로 향했어. 그리고 내가 며칠 전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 나는 아버지로부터 댓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어. 어쩐지 아버지 가까이에 있기가 두려웠어. 아버지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꺼냈어. 그것도 무려 세 갑이나. 밥도 굶고 잠도 안자고, 아버지는 밤새도록 담배만 연거푸 피웠어. 얼마나 많이 피워대는지, 아버지의 몸을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손끝에 누런 담뱃진이 한 더께 묻어날 것 같았어.

 

오후 3시. 아버지가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를 질렀어.

“형욱아, 열쇠!”

나는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어.

“전 열쇠 어디에 있는지 모르...”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버지가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어. 그리고 냉장고 위쪽에 매달린 찬장의 맨 위 칸을 거칠게 휘저었어. 종이컵이니 냅킨 따위의 자질구레한 물건들 몇 가지가 떨어지더니, 짤그랑 툭, 한 쌍의 열쇠가 바닥으로 떨어졌어.

열쇠를 든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어. 그 탓에 열쇠는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애꿎은 자물쇠만 턱턱 때렸어. 보다 못한 내가 아버지 손을 잡았어. 아버지는 열쇠를 던지듯 내 손바닥에 올려놨어. 그러더니 문을 마구 두들기면서 형을 불렀어. 아무리 외쳐 불러도 방 안은 잠잠했어.

“아버지, 제발!”

내 비명 같은 외침에, 아버지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어. 마침내 찰칵, 자물쇠 열리는 소리. 아버지가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혔어.

문이 열렸을 때, 창고는 텅 비어 있었어. 인기척도 없었고, 인적도 없었어.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들어온 적 없었다는 듯, 창고는 텅 비어 있었어. 망연자실. 문득 아버지가 내 어깨를 부여잡더니 마구 흔들었어.

“니가 열어줬냐!”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그저 미친듯이 도리질 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아버지가 나를 확 밀치고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벽을 마구 두들기며 형의 이름을 불러댔어.

그때였어. 창 너머로 언뜻 하얀 물체가 보였어. 지금은 12월, 엄연히 겨울. 이건 말이 안 돼.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어. 착시였을까. 눈물을 말끔히 걷어낸 내 시야 가운데 분명히 그것이 날고 있었어. 나비였어. 쇠창살 너머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새하얀 나비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가고 있었어.

 

11

...어느 날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그때 장주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마냥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장주가 되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되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 호접지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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