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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오징어 게임의 배우 양미선 이야기] 8. 나의 어머니 순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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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미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4-20 07:18 조회8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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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출연으로 밴쿠버 중앙일보와 인터뷰로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연기 이야기 중심으로 연재 기회가 주어져 좋은 인연으로 생각되었다. 혹시 연극영화과 진학이나 연기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들과 소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갈 생각이다. 

 

얼마 전, 어머니가 수술을 하셨다. 시골 집 담벼락 아래로 떨어져 손목 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럼에도 자식들 걱정할까봐 아프지 않은 것 처럼 통화를 했고, 며칠 동안 시골 병원과 시내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현재 몸 상태도 좋지 못하고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 도 있는 위험한 상태이니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서야 뒤 늦게 연락을 해 왔다. 운 좋게도 예약하기 힘든 대학병원에서 빠르게 입원 후 수술 할 수 있었고 수술도 잘 되었다. 현재 잘 회복하고 계시는 상태다. 잘 넘어갔으니 다행이지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팔 전체가 새까맣게 퉁퉁 부어올랐었다는데 얼마나 아팠을까...종이에 살짝만 베여도 몹시 쓰라리고 아픈 법인데, 손목 뼈가 산산조각이 났다니...그 손을 하고도 자식들에겐 아무 일 없다고, 잘 지낸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자식들 걱정끼치는 걸 너무도 싫어하시는 그런 분. 그러면서도 당신은 자식들 생각하면 눈물부터 흘리시는...내 편지를 눈물부터 나서 읽지 못하겠다는 나의 어머니, 우리 순애씨. 오늘은 그런 순애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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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에 태어난 우리 부모님은 그 당시 흔하지 않았을 연애결혼을 하셨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여자 쪽이 나이가 더 많은 연상연하커플이다. 하하하하하!!! 외할아버지는 가난한 아버지를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착한 심성 하나 보고 결국 결혼하셨다. 그래서 찢어지는 가난에 허덕여도 외가댁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할아버님과 새할머님조차도 그런 어머니를 나몰라라 하셨다.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20살, 어머니는 22살이었다. 살 곳 하나 변변치 않으니 큰 아버지 댁에서 얹혀 살다 큰 아버지와 어머니의 작은 마찰로 집을 나왔는데, 아버지는 이발소에서 일을 해야 하니 아버지는 그대로 남고 어머니만 홀로 산 중턱에 있는 쓰러져 가는 빈집에 터를 잡았다. 큰아버지들 밑에서 일을 하셨어도 월급은 커녕 쌀 한 포대 받는 것이 전부였던 아버지는 어머니께 해 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다. 큰아버지들께서 돈도 안 주면서 이발소에 잡아두니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아버지를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아버지가 가져다 주는 쌀 한 포대가 생활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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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큰 오빠가 태어났다. 그러나 산후조리는 커녕 바로 전쟁같은 현실에 익숙해져야 했다. 출산 후, 3일 뒤 부터 혼자서 나무를 해다 불을 때야 했고, 먹을 게 없어 밥에 소금을 반찬 삼아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칠흑같은 밤이면 산속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울음소리로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갓 태어난 오빠는 추위에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대니 깔아놓은 요를 하루에도 몇 번씩 빨아대야 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 당시 산후조리도 못 한 상태로 매일같이 나무를 머리에 이고 내려오던 탓에 아직까지도 정수리 쪽이 볼록하게 솟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속에서의 생활은 생각하기도 싫고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고, 생각하면 눈물밖에 안 난다고 하신다. 

 

그렇게 홀로 갓난아이와 산속생활을 하는 것도 사무치는 고통인데, 어느 날 아버지가 오셔서는 쌀 한 가마니를 던져 놓더니 선전포고를 하셨다 한다. “나 내일 군대가.” <월남전>에 참전하시게 된 것이다. 생활이 너무 어렵다 보니 아버지 생각에 <월남전>에 참전하면 돈을 보내줄 수 있으니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어머니가 울며 말했다. “나는 어찌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죽지만 말고 살아.”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선전포고에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어떤 아내가 남편이 전쟁터에 자진해서 나가는 것을 두고 보겠는가. 돈이 없었던 아버지는 차비가 없어 평소 신고 다니던 군화를 팔아 그 돈으로 차를 타고 그렇게 떠났다. 어머니와 갓난아이를 남겨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전쟁터로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가난은 사람을 참 비참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또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그저 아버지의 착한 심성 하나 보고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던 결혼이었는데, 그 결혼생활이 그렇게 참담할지 누가 알았겠는가....남편도 없이 갓난아이와 둘이서...여리고 여리던 한 여인, 나의 어머니 순애씨는 그렇게 갓 태어난 어린 오빠를 보며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2년여의 시간을 홀로 버텨냈다. 

 

다섯 손가락 중,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있겠냐만은 어머니는 특히 큰 오빠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리신다. 갓난아이였던 오빠와 둘이 살면서 배고프다고 울어대던 그 어린 것을 한 번도 배부르게 먹이지 못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거라고.

 

아버지가 <월남전>에 다녀오신 뒤에도 생활이 힘든 건 여전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버지 건강이 좋지 못해 몇 년 동안 누워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밥이라도 굶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어린 오빠와 함께 외가집 옆 가게를 지날 때면 오빠가 그렇게도 과자를 집어 들고 먹고 싶어했단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돈을 낼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오빠의 엉덩이를 세게 치며 화를 냈고 오빠는 그렇게 과자 없이 빈 손으로 집으로 오는 내내 울었다고...오빠는 늘 지나쳐야 하는 그 길을 지나면서 어린 마음에 얼마나 먹고 싶어 속상하고 슬펐을까...또 그런 어린 아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돈이 없어 사 주지 못하고 혼을 내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팠을까...아픈 상처에 대한 기억은 잊으려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해진다. 어머니의 그런 아픈 기억들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 날 그 시간에 멈춰있 듯 아픈 생채기로 마음 한 켠에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이다. 

 

[옛날옛날에 꿈 많던 한 소녀가 있었어. 그런데 그 소녀는 엄마의 얼굴을 몰라. 엄마가 돌아가실때 소녀의 나이는 너무 어렸거든. 신데렐라처럼 소녀는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어. 하지만 그 새어머니는 당신이 데려온 아이들 그리고 당신이 낳은 아이들에게만 친절했고, 불쌍했던 그 소녀에겐 사랑을 주지 않았어. 소녀는 마음 둘 곳 없는 집이 너무 싫었어. 소녀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지만, 정작 당신의 친 딸 이었던 소녀의 아픈 마음과 힘겨운 생활은 보이지 않았나 봐. 새어머니 밑에서 사랑 받지 못하고 살던 소녀는 결국 국민학교(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쫓기 듯 나와 그 어린 나이에 대전으로 전주로 서울로 돌아다니며 식모살이를 했어. 그렇게 외롭고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한 남자를 만났어. 아주 마음 착한 남자였지. 무심했던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혼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궁금해 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디서 저런 가난한 남자를 데려왔다며 결혼을 반대했어. 그렇지만 소녀는 남자를 버릴 수 없었어. 소녀가 사랑한 남자니까. 

 

누구나 그런 꿈을 꾸 듯, 결혼은 꿈처럼 행복할 줄 알았을 거야.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분명히 달랐어. 캄캄하고 무서운 깊은 산속에서 첫 아이가 태어났고, 남편은 돈을 벌어오겠다면서 월남 전쟁터로 떠나버렸어. 그렇게 소녀와 아이, 둘 만 남았지. 옆에 있어도 갓난아이는 그런 소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그래서 배고프다고 울고, 춥다고 울고, 아프다고 울고...계속 울었어. 그 힘겨운 생활을 소녀는 오직 혼자서 다 감당해야만 했어. 

 

하지만 소녀는 누구보다 강한 모성을 지니고 있었어. 용기내어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지. 우는 아이를 업고 '상'도 팔러 다니고, '찐빵'도 팔아 보고, '간장통'을 파는 일도 해 봤어. 하지만 장사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 어려웠어. 아무리 용기를 내 봐도 소녀 혼자서 갓난아이와 둘이 생활 한다는 건 역시나 너무 힘겨웠지. 하루하루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어. 소녀의 진짜 엄마가 살아있었다면...그런 소녀의 모습을 봤더라면...소녀의 어머니는 분명 소녀의 아버지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절대로 그렇게 딱 한 소녀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도 않았을 거야. 소녀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 너무너무 엄마가 보고 싶었어. 하지만 소녀는 엄마의 얼굴을 모르잖아. 그래서 엄마의 얼굴을 떠올릴 수 조차 없었어. 소녀는 너무 슬퍼서 평생 울 눈물을 그 때 다 흘렸어. 

 

전쟁터로 떠났던 남편이 돌아왔지만 생활이 팍팍하긴 마찬가지였어. 남편이 그 때 많이 아팠거든. 소녀의 어린 아들은 늘 가게 옆을 지날 때마다 과자를 들고 서서는 내려놓지 않았어. 하지만 소녀에겐 돈이 없었어.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린 아들의 엉덩이를 마구 때리며 혼을 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은 속상해하며 울었어. 그런 아들을 보며 소녀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인처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어. 

 

어느 날 소녀의 아들이 좀 더 컸을 때, 옆집 닭이 낳은 계란을 가져온 적이 있데. 그래서 그 주인이 와서 뭐라 하길래 소녀가 아들한테 물었데. 이걸 왜 가져왔느냐고. 작은 손으로 계란 하나를 소중하게 꽉 쥐고선 엄마 주려고 가져 왔다면서 소녀의 아들이 말했데. 소녀의 아들은 그 뒤에도 먹을 게 생기면 자기가 먹지 않고 엄마 주겠다면서 가져오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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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픈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어느 덧 소녀는 5남매의 엄마가 되어있었어. 그렇게 5남매는 각자의 인생을 찾아 하나 둘, 소녀의 곁을 떠나갔고 소녀는 그렇게 또 5번의 큰 눈물을 흘려보냈지.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고, 소녀가 늙어 첫 돋보기를 쓰던 날 돋보기 너머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어. “얼굴이 왜이러냐? 아휴 보기싫다. 이렇게 쭈글쭈글 한 지 몰랐네...” 소녀는 돋보기를 벗어버렸어. 그리고 다시는 쓰지 않았어. 마음은 늘 소녀의 어린시절 그대로 남아있는데 너무 늙어버린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던 거야. 소녀는 늙어 할머니가 되었어도 소녀 그대로인 거야. 소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소녀의 막내 딸인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 

 

어느 날 소녀가 말했어. “나는 죽으면 파랑새가 되었으면 좋겠어.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그러자 소녀의 남편이 말했어. “그럼 나는, 파랑새 모이 주는 사람으로 태어나야 겠구만.” 다시 소녀가 말했어. “끔찍한 소리 하네. 아주 징글징글하구만.” 소녀의 막내 딸인 나는 웃으며 생각했어.  '그래도 소녀가 믿고 선택했던 남편이 56년 동안 소녀를 진심을 다해 사랑했었구나...' 소녀는 더이상 외롭다고 울지 않을 거야. 파랑새 모이 주는 사람으로 태어나겠다는 남편도 있고, 혹독한 가난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키워 낸 5남매가, 이제 소녀를 지켜줄 거니까... ] 

 

   “사랑하는 소녀여, 더이상 울지 말아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순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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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미선 (인스타@yangmiseon_claire)

일러스트 이재빈 (인스타@woq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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