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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물로 헤어지기 / 신영배 시 감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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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7-26 20:24 조회6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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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물로 헤어지기 / 신영배     

                                                               

 

나무의 서쪽이 마를 때

새의 한쪽 날개도 마르고

새가 마를 때

베란다에 처 둔 줄도 마르고

줄이 마를 때

촘촘한 빗방울도 마르고

빗방울이 마를 때

펼쳐 든 우산도 마르고

우산이 마를 때

검은 구두가 함께 마르고

우산과 구두 사이

서 있던 당신이 마르고

이 모든 것이 눈물 한 방울에 맺혀 있고

눈물 한 방울을 발끝에 두고

 

 서론- 눈물은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칼로 물 베기’처럼 행위의 결과가 심각하지 않은 걸까? ‘물로 헤어지기’가 담담한 것은 물이 매개체가 되어 이별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에는 헤어질 때 아픔이 있다. 시어 ‘빗방울’과 ‘눈물 한 방울’이 손끝에서 발끝까지 머문다. 겉이 마르기까지 안으로 삭히는 시간이 꽤 걸린다. 화자는 이별을 초연히 서술했다. 반면 제삼자인 독자는 마르지 않은 감성으로 촉촉이 감상할 수 있었다. 신영배는 시 ‘물과 나비’에서 나비가 물로 기교를 부려 꽃이 탄생하는 신비를 연출했고 ‘물로 헤어지기’에서는 이별의 상징인 눈물을 시간적 흐름으로 연출했다. 두 시 모두 물과 상관관계가 있다.

 

 본론- 1행부터15행까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 차분히 묘사되어 있다. 소설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이별의 심리를 물의 형상 이미지로 표현했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따른다. ‘우산과 검은 구두’는 이별의 상징어다. 마지막 행 ‘눈물 한 방울을 발끝에 두고’는 헤어졌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이별의 아픔은 시간이 흐르면 물이 마르듯 서서히 치유된다. ‘베란다에 쳐 둔 줄, 우산과 검은 구두 사이 서 있던 당신’ 오랜 시간 함께 한 흔적이 있듯이 젊음은 허락된 시간이 많아서 좋은 것 같다.

 

 삼 구 칠 세대는 586세대보다 연애관이 진화 되어있다. 586세대는 사랑과 이별도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때는 순결 확인서를 종교적 차원에서 주장하고 홍보했다. 연애를 일회용으로 치부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한 세대 차이인 1961년생 최영미 시인과 1972년생 신영배 시인의 눈물에 대한 감성 차이를 비교해 보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마침내 그도 갔지만/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라/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961년 586세대만 해도 억압된 관계에 불만이 있다. 사랑에 희생을 요구했던 세대와 비교하면 ‘물로 헤어지기’는 관계 표현이 수직에서 수평적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관계의 언짢음을 고발적으로 표현했다면 1972년 삼 구 칠 세대의 ‘물로 헤어지기’는 관계의 표현이 분방하다.

 

 시 종결 부분에 ‘눈물’이 함축되었는데 눈물이란 ‘남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이나 남의 어려운 처지를 가엾게 여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옛사람들의 눈물은 지나치게 신파적인데 눈물이 말랐다는 표현도 희로애락의 승화나 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폭포수 같은 눈물을 진정성으로 본다면 현대인의 ‘악어의 눈물’은 어떤가, 눈물의 종류를 가치로 비교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은 단순히 눈물의 정체나 깊이를 운운할 게 아닌 세월의 변화로 인한 문화의 차이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결론- ‘나무의 서쪽-새의 날개-베란다 줄-촘촘한 빗방울-펼쳐 둔 우산-검은 구두-우산과 검은 구두 사이에 서 있던 당신’ 이 시는 이별의 아픔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다. 세대마다 감성이 다른데 슬픔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유형과 켜켜이 쌓아 응고된 것을 푸는 유형은 결이 다르다. 슬프다고 징징대는 표현과 슬픔을 삭이는 표현에는 분명 시의 깊이가 다르다. 우리는 눈물에서 포용을 배워야 한다. 한동안 눈물 없이는 볼 수도 알 수도 없다는 미사여구가 차고 넘쳤다.

 

 독자들의 시를 이해하는 수준은 제 각각이다. 감정으로 시종일관한 글들은 끝까지 읽는데 인내가 필요하다. 아픈 사연도 깔끔한 정리가 필요하다. 글의 매듭을 잘 지으려면 감정을 아껴야 한다. 아픔이나 슬픔을 주제로 삼는 글은 자칫 감정적일 수 있다. 그래서 신파가 된다. 시 쓰기에도 내강이 필요하다. 독자들의 감정 이입을 얻어내려면 자신의 감정이 응고된 채 한을 풀어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고이지 않고 흐르게 하여 정수했을 때 반응과 호응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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