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하워드 정 칼럼] '정답 없는 시대', 이민 생활이 가르쳐준 생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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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워드 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1-10 16:07 조회2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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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정(Howard Chung)
Winhere Auto-Part 전 수석엔지니어
글로벌 브레이크 시스템 40년 경력
현대·쌍용·GM·닛산 기술센터 근무
'정답 없는 시대', 이민 생활이 가르쳐준 생존의 기술
영어권 사회로의 이민은 단순히 언어 장벽을 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문화와 새로운 사회의 소통 방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험이다. 물론 영어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문화적 배경과 소통의 관습, 즉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필자 역시 직장 생활에서 이를 절감했다. 1983년 현대자동차 연구소에서 시작한 경력은 전형적인 한국의 조직 문화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 상명하복식 소통과 연공서열이 기본이었다. 물론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실무진의 참여가 절충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틀은 명확했다.
이후 잦은 일본 출장과 닛산자동차 북미연구소에서의 8년간의 근무는, 일본 특유의 간접적인 표현과 문화적 규범을 몸으로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일본 문화에 대한 친숙함은 훗날 닛산자동차의 북미 조직에 적응하는 데 예상외의 도움을 주었다.
진짜 문화 충격은 1989년 미국계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찾아왔다. 그곳은 지리적으로 조직이 흩어져 있었고, 다국적 팀원과의 소통이 일상이었다. 업무는 순수한 연구개발이라기보다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중심의 업무'에 가까웠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본 적도 없던 '음성 사서함(Voice Mail)' 같은 원격 소통 방식은 처음엔 너무나 어색했지만,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익혀나갈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충격은 '회의 문화'였다. 필자는 회의 며칠 전부터 완벽하게 자료를 준비하고 예상 문답을 만드는, 소위 '공부하는' 방식으로 회의에 임했다. 하지만 많은 동료는 달랐다. 그들은 마치 아무 준비도 안 한 것처럼 현장에서 질문을 던지며 하나씩 배워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방식이 게으르거나 무책임하게 보였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것은 정답을 말하러 오는 자리가 아니라, 질문을 통해 흩어진 지식을 연결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이 경험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지금, AI 혁명 앞에 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AI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이 변하거나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안에 여러 에이전트AI가 협업하는 환경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 단순한 정보 처리 능력은 AI를 따라갈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도 풀기 어려운 '정답 없는 문제'를 다루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윤리적 판단력, 그리고 사람과 AI를 잇는 소통 설계 능력이다.
결국 우리는 언어와 표면적인 기술을 넘어 문화적 맥락을 읽고, 정답을 외우는 대신 '질문으로 배우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도덕성과 협업 능력은 이 모든 것을 지탱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민 1세대가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배웠던 바로 그 방식, 그것이 어쩌면 AI 시대를 살아갈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 모른다.
앞으로 우리 개인과 조직이 이러한 역량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르고 제도화할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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