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 DNA 기술 발전, '무명 용사'의 신성한 상징성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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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전쟁엔 '무명 용사' 없을 것... 과학과 상징의 충돌
오타와 무명 용사의 딜레마, DNA 시대에 익명성 지켜질까
오타와 국립 전쟁기념관 앞에 안장된 '무명 용사'의 신성한 익명성이 기술적 도전에 직면했다. 25년 전 유해 안장 당시, 의도적으로 신원을 '익명'으로 남겼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DNA 기술이 이 상징성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평화유지 작전 등 현대전에서는 전사자 신원 확인과 유해 송환이 당연한 절차로 자리 잡았다. 과거 세계대전 때처럼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기를 기대하기는 이제 불가능하다. 21세기에도 대규모 전쟁과 학살이 여전히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무명용사’라는 상징이 과연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딜레마는 국방부의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국방부는 2007년부터 ‘전사자 신원 확인 프로그램’을 가동해, 1970년 이전에 발생한 약 2만9천 명의 미확인 전사자 유해를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신원 확인 기술의 발전은 법의인류학자 등 관련 전문가들에게 또 다른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그들의 임무는 이름 없이 남겨진 이들에게 정체성과 얼굴을 찾아주는 일이지만, ‘무명용사’의 묘는 오히려 그 익명성을 보존해야 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무명 용사의 신원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2000년 5월 유해를 송환받을 당시 DNA 검사를 수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는 신원 확인 노력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조건으로 유해를 양도한 영연방 전쟁묘지위원회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또한, 199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전 무명 용사의 신원이 가족의 압력과 DNA 검사로 밝혀져 상징성이 훼손됐던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 전쟁에서는 무명 용사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24년 뉴펀들랜드가 100년 이상 프랑스 땅에 잠들어 있던 병사를 800여 명의 실종자를 대표해 별도로 안치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무명 용사는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는 강력한 상징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만약 그가 내 아이라면 알고 싶을 것'이라는 유가족의 복잡한 심경 또한 공존하며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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