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 "현충일 파피 보고 '아편 양귀비?'"… 이민자가 겪은 '문화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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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의 날'이었던 7월 1일... 캐나다 역사 배우는 계기
핼러윈, 크리스마스... 낯선 명절이 가족의 '정착 기록'으로
밴쿠버에 사는 이민자 반 장 씨에게 캐나다의 국경일은 단순한 쉼표가 아니었다. 낯선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는 “예전엔 남의 나라 기념일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제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고 말한다.
장 씨 가족이 밴쿠버에 발을 디딘 것은 2000년 11월, 마침 현충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튿날, 그는 공원에서 처음으로 ‘리멤브런스 데이’의 풍경을 마주했다. 거리마다 사람들은 붉은 꽃을 가슴에 달고 있었고, 그에게는 그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그는 친구에게 “저건 아편 양귀비인가?”라고 물었다가, “그건 희생을 기리는 파피(poppy)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장 씨에게 ‘파피’는 중국어로 ‘우미인화(虞美人花)’, 즉 초한지 속 비극적 연인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그것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붉은 상징이었다. 같은 꽃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였다.
그는 이후 지역 중국어 신문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8만여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캐나다를 거쳐 유럽 전선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그들 역시 어딘가에서 붉은 파피로 기려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이후 장 씨에게 국경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잊힌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정착 과정에서 낯선 날들은 계속됐다. 아들이 "내일 'Pro-D Day'라 학교에 안 간다"며 기뻐했을 때, 정작 가족들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교사 연수를 위한 날 이라는 것을 알고, 교육을 대하는 캐나다의 방식을 이해하게 됐다.
7월 1일 '캐나다 데이' 역시 그에게는 복잡한 의미로 다가왔다. 캐나다 플레이스에서 축제 불꽃놀이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날이 중국계 캐나다인들에게 '치욕의 날'로 불렸던 어두운 역사를 떠올렸다. 1923년 바로 이날, 중국인 이민을 전면 금지한 '중국인 배척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2023년, 그는 오타와 의회 언덕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세대에 걸쳐 캐나다에 뿌리내린 중국계 후손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외부인이 아님을 느꼈다고 한다.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은 이제 이 가족의 정착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어린 시절 핼러윈 분장을 즐기던 아들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취직한 후, 첫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에게 마사지기와 쿠션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장 씨는 이 순간 캐나다 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되었음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왜 캐나다에 왔느냐'는 질문에 '국경일을 위해 왔다'고 답한다. 장 씨는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축제 속에서 점차 우리의 자리를 찾고 있다"며, "국경일은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여정의 중간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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