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 가슴에 단 붉은 '파피', 100년 잇는 추모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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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포화 속 피어난 꽃... '플랜더스 들판' 시가 기원
10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11월 11일까지, 왼쪽 가슴에 착용
기금 전액 현역·퇴역 군인 의료, 주거, 식사 지원에 사용
11월이 되면 캐나다 전역의 코트와 셔츠, 가방, 모자 위에 붉은 파피(poppy) 꽃이 하나둘 피어난다. 캐나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이 상징은 100년이 넘는 전통으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를 다짐하는 국민적 추모의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파피가 전쟁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투가 끝난 들판에 수많은 붉은 파피가 피어나며, 전장에서 스러진 이들의 죽음을 상징하게 됐다.
이 전통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다시 이어졌다. 포격으로 파괴된 건물의 잔해에서 흘러나온 석회질이 황폐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며, 야생 파피가 피어난 것이다. 이 장면은 캐나다 군의관 존 맥크래 중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는 이후 시 「플랜더스 들판에서」를 써 전쟁 희생자 추모의 상징으로 파피를 세상에 각인시켰다.
이 시를 읽은 미국인 교사 모이나 마이클은 전사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옷깃에 파피를 달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마담 게랭이 그 전통을 이어받아 전쟁 고아를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섰다. 1921년, 캐나다 왕립 재향군인회의 전신인 참전용사 협회는 파피를 공식 ‘추모의 꽃’으로 채택하며 전국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재향군인회는 국민들이 파피를 올바르고 정중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파피는 심장 위쪽, 즉 왼쪽 가슴에 착용해야 하며, 다른 장식핀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착용 기간은 매년 10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11월 11일 현충일까지다. 또 비미 리지 전투 기념일이나 참전용사 장례식 등 추모 행사에서도 파피 착용이 권장된다.
재향군인회가 매년 진행하는 ‘파피 캠페인’을 통해 모인 기부금은 ‘파피 펀드’로 신탁 관리된다. 이 기금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 그리고 현역 군인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생계비나 난방비, 약값 지원은 물론 저렴한 임대 주택 제공, 지역 의료 장비 구입, ‘밀스 온 휠스’(노인 도시락 배달) 프로그램 운영 등 사회복지 사업에도 폭넓게 활용된다.
또한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과 유지보수, 전쟁 유족 지원에도 쓰인다. 캐나다 전역에서 모인 모든 기부금은 투명하게 관리되며, 군 복무자와 그 가족을 위한 실질적 지원으로 이어진다.
파피 캠페인 기간에는 전국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거리 모금 활동을 펼친다. 시민들은 상점에 비치된 공식 기부함에 1~2달러를 넣거나, 재향군인회 지부를 방문해 직접 기부할 수 있다. 또 ‘국가 파피 신탁 기금’을 통해 연중 후원도 가능하다.
한 송이 붉은 파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상흔 위에 피어난 기억의 꽃이자,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캐나다인의 추모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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