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 "꾀병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고통'에 우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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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찾으면 중독자 취급 편견에 갇힌 만성 통증
코로나에 묻힌 연방 통증 보고서 의료계 각성 촉구
"선생님 정말 아파요"라는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의사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10대 소녀에게 엄살이 심하다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서 꾸며낸 이야기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캐나다 의료 시스템 내에서 '보이지 않는 병'을 앓는 여성들이 겪는 냉혹한 현실이다.
연방 보건부가 지원한 캐나다 통증 태스크포스 보고서가 의료계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2021년 3월 발표된 이 보고서는 만성 통증 진단과 치료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을 권고했으나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의 혼란 속에 묻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의료계는 이 보고서가 의료진의 편견을 깨고 환자 중심의 치료를 정착시킬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궁내막증, 루푸스, 섬유근육통, 만성피로증후군 등은 대표적인 보이지 않는 병이다. 엑스레이나 일반적인 혈액 검사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진율이 높다. 특히 여성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적 질병이 아닌 심리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다.
무스조에 사는 셰이린 바칼룩 씨의 사례는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10살 무렵부터 생리 때마다 자궁을 철조망으로 조이는 듯한 격심한 통증을 겪었지만, 병명을 확정받기까지 11년이 걸렸다. 50차례 넘게 병원 진료와 초음파 검사를 받았지만 돌아온 건 “참아라”는 이야기뿐이었다. 통증을 호소하며 진통제를 요구할 때는 약물 의존을 의심받는 일까지 있었다.
그녀의 병명은 21세가 되어서야 수술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자궁내막증 조직을 통해 확인됐다. 바칼룩 씨는 진단을 듣는 순간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회상했다.
의료 현장의 성별 편견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캐나다 산부인과 학회 소니 싱 박사는 여성의 만성 통증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4배 높다고 지적한다. 의료진이 환자의 통증 호소를 의심하거나 축소하는 이른바 ‘메디컬 가스라이팅’이 여성 환자를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업가 아만다 깁슨 씨 역시 2020년 시작된 전신 통증과 브레인 포그(머리가 멍해지는 증상)로 병원을 찾았지만, 신체적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항우울제 처방을 권유받았다. 이후 여러 전문의를 거쳐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았다. 토론토 대학교 안드레아 펄란 교수는 섬유근육통 환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주변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만성 통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심혈관 질환·당뇨·암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강조한다.
마리아 허드스피스 태스크포스 의장은 통증을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관리가 필요한 독립적 질환으로 규정했다. 변화 조짐도 있다. 최근 캐나다 내 17개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만성 통증 관련 커리큘럼이 도입됐다. 보고서는 의료진이 환자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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