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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봄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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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한나 작성일17-04-10 14:33 조회6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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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빌어요.” 오늘도 친구는 어김없이 말했다. 화엄사로 가기 전 사성암 커다란 소원바위에 올랐을 때였다. 우리는 종종 사찰이나 성당을 함께 걷곤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는 내게 소원을 빌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비는 소원은 하나씩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바랄 게 없을 만큼 지금의 삶이 완벽한 건 아닌데도 소원바위를 그냥 내려왔다. 

바쁜 삼월을 보내고 지쳐있는 나에게 친구는 봄 마중을 제안했다. 지리산 자락에 폭 안겨있는 화엄사에 봄이 온 것 같다며 홍매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내가 어리다고 섣불리 말하는 것 없이 언제나 예의 바르고 나를 존중해주는 어른친구.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더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친구라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밥 먹을 땐 묵언을 해야 하고, 절제와 규칙이 있어서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내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며 화엄사로 나를 안내했다. 

영등포에서 출발한 기차가 전라남도 구례에 닿을 때쯤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 마중답게 화사한 날을 기대했지만, 나지막이 내리는 봄비도 나쁘지 않다. 화엄사는 주말 상춘객들로 붐볐지만 비가 내려서인지 대체로 차분하다. 운무 내린 산사에 홍매화는 붉은 빛을 뿜어 내고 있다.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자태를 감탄하고 있다. 나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홍매화 주위를 맴돌았다. 

“예불 가볼래요?” 교회 안에서 자란터라 모든게 낯설지만 화엄사까지 와서 경건한 예불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가 화엄사를 가득 울리더니, 수도승이 줄 지어 대법당으로 향한다. 겸손히 무릎 꿇은 수도승의 뒤로 불자들이 간절히 불공을 올린다. 병든 노부모, 잘 풀리지 않는 아들 딸, 삶과 몸이 고달픈 자신을 위한 염원으로 법당 안의 공기가 가득 찬다. 손을 모으고 마음도 함께 모아 납작 업드린 몸짓을 보고있자니 인간사 그 어떤 모양보다 이 염원의 마음은 진실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신앙과 생활 역시 정직하고 절실하리라. 누군가의 말대로 염원은 약자의 특권이다. 약자이기에 빌 수 있고, 약자의 염원은 종종 하늘에 닿는다. 

친구는 고즈넉한 산사에서의 고요함을 선물로 준다며 나를 잠시 홀로 두었다. 산사에서는 어떤 음악도 어울리지 않고, 읽던 책도 내려놓게 된다. 마음 토닥여 주는 물소리가 좋아 밤 공기가 싸늘한데도 처마 밑에 앉아 빗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지리산에 올때마다 비가 왔다. 나를 환영하는 지리산의 마음인듯 고맙게 받았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산사의 밤은 적막했으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지친 나를 보살폈다. 

새벽녘, 이제서야 내 차지가 될까 대법당 옆의 홍매화를 다시 찾았다. 홀로 선 홍매화와 마주하며 내 비어있는 질그릇에 담을 소원을 곰곰이 생각했다. 이기적이게 나만을 위해 꾸는 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내 삶과 생각이 당신 앞에 절실하고 순전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내 염원을 오랜만에 하늘로 올려보냈다.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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