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야나기 무네요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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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5-18 08:10 조회1,1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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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
“오늘날 조선의 고미술, 즉 건축이나 미술품이 황폐해지고 파괴된 것은 사실 대부분이 왜구의 경악할 만한 행동 때문이었다. 중국은 조선에 종교와 예술을 전파했는데 그것을 파괴한 것은 우리들의 무사였다. 이런 사실은 조선 사람들에게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었을 것이다. 나라(奈良)를 찾았을 때 법륭사(호류사)가 소장한 놀랄 만한 고미술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국보, 황실 소장품의 대부분이 조선 작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1300년 동안 올리는 쇼토쿠(聖德, 일본에 불교를 중흥시킨 인물. 6세기 후반에 용명 천황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구려 승 혜자와 백제 승 혜총으로부터 불교를 배웠으며 법륭사(法隆寺)를 지었다) 태자에 대한 제사는 사실은 조선을 향한 예찬이었다. 조선 민족이 위대한 예술의 민족이라는 것은 나를 자극하고 고무하며,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을 미래에 안겨준다.
오늘날 일본이 국보라 하며 세계에 자랑하고 세계인 역시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있는 많은 작품이 도대체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중에서도 국보 중의 국보라 부르는 것 거의 모두가 사실은 조선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역사가도 실증하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일본의 국보라고 불리기보다는 정당하게 말하면 조선의 국보라고 불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야나기 무네요시>
야나기의 기고문을 게재한 1922년 8월 24일 자 동아일보 지면.
일본 도쿄 니혼민게이칸에서 확인된 야나기 무네요시의 광화문 철거 반대 육필 원고. “만약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퇴해 일본이 조선에 합병되고 궁성이 폐허가 되며 그를 대신해 그 위치에 큰 서양풍의 일본총독부 건물을 짓게 되고 ...”(빨간 줄친 부분)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 신축을 위해 옮기기 전인 1920년대 초의 광화문과 해태상.
“만약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퇴해 일본이 조선에 합병되고, 궁성(에도성)이 폐허가 되며 그를 대신해 그 위치에 큰 서양풍의 일본총독부 건물을 짓게 되고, 저 푸른색 물이 흐르는 해자를 넘어, 높고 흰색 벽으로 솟는 에도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일본인 민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사진)가 1922년 일제의 광화문 철거 방침에 반대하며 동아일보에 게재한 기고문 가운데 일제의 사전 검열로 실리지 못한 내용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야나기가 광화문 철거에 반대하며 1922년 7월 작성한 육필 원고를 일본 도쿄 니혼민게이칸(日本民藝館·일본민예관)에서 최근 발견했다고 밝혔다. ‘장차 잃게 된 조선의 한 건축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이 원고는 1922년 8월 24∼28일 동아일보 1면에 5회에 걸쳐 실리면서 광화문 철거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육필 원고에는 일제의 사전 검열 탓에 신문에는 실리지 못하고 같은 해 일본 잡지 ‘가이조(改造)’ 9월호에만 실렸던 200자 원고지 2장 분량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장을 지낸 이상해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광화문의 아름다움을 추도사 하듯 애절하게 묘사하며 철거를 반대한 야나기의 글은 당시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라며 “일제가 광화문을 헐어 조선의 상징을 말살하려는 데서 한발 물러섰고, 광화문은 비록 제자리는 아니지만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져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너(광화문)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발언의 자유를 가지지 못했으며 또는 너를 산출한 민족 사이에서도 불행히 발언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다. … 그러나 침묵 가운데 너를 파묻어 버리는 것은 나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비참한 일이다.”
야나기의 원고는 식민지 문화재의 운명과 나라를 빼앗긴 이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절창(絶唱)이다. 야나기는 일본이 조선에 합병되고 에도성(江戶城)이 헐린다면 “반드시 일본의 모든 사람은 이 무모한 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것”이라며 “그런데 이와 똑같은 일이 지금 경성에서, 강요받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고발했다.
야나기에게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와도 같았다. 그는 “나는 마치 너(광화문)를 낳은 민족이 저 견고한 화강석 위에 끌을 깊이 파서 기념할 영원의 조각을 새긴 것과 같이 너의 이름과 자태와 영(靈)을 결코 스러지지 아니하고 싶은 힘으로 잘 새기겠다”라고 썼다. 총독부 건물의 신축은 “아무 창조의 미를 가지지 못한 양풍(洋風)의 건축이 돌연히 이 신성한 지경을 침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경복궁 흥례문 구역을 헐고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앞을 가리는 광화문을 철거하고자 했고, 결국 1926년 경복궁 동쪽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 의궤(儀軌)도 없는 광화문이 사라졌다면 원형 복원은 어려웠을 것이다.
장차 잃게 된 조선의 한 건축을 위하여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1)
이 한 편을 공개할 시기가 성숙한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장차 행하려는 동양 고건축의 무익한 파괴에 대하여 나는 가슴을 짜내는 듯한 아픈 생각을 느낀다. 조선의 수부(首府)인 경성에 경복궁을 찾아보지 못한 여러 사람은 왕궁의 정문인 저 장대한 광화문이 장차 파괴될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겠기로 신경에 아무 느낌과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독자가 동양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의 소유자인 것을 믿고 싶다. 가령 조선이라는 것이 직접의 주의(注意)를 여러 많은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점차 인멸(湮滅·자취가 없어짐)하여 가는 동양의 고(古) 예술을 위하여 이 한 편을 정성껏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 한 편은 잃어버려서는 안 될 한 예술이 잃어버리게 되는 운명에 대한 애석의 문자(文字)이다. 그리고 그 예술의 작자(作者)인 민족이 목전에 그 예술의 파괴를 당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나의 동정하고자 하는 애달픈 감정의 피력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제목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없다면 부디 다음과 같이 상상하길 바란다. 만약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퇴해 일본이 조선에 합병되고, 궁성(에도성, 일본 황거皇居를 이름)이 폐허가 되며 그를 대신해 그 위치에 큰 서양풍의 일본총독부 건물을 짓게 되고, 저 푸른색 물이 흐르는 해자를 넘어, 높고 흰색 벽으로 솟는 에도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니면, 정으로 치는 소리를 듣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강하게 상상해보라. 나는 그 에도(오늘날 도쿄)를 상징하는 일본 고유 건축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쓸데없는 그것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사실 미적으로 이보다 뛰어난 것을 오늘날 사람들은 만들 수 없지 않겠는가. (아, 나는 망해가는 나라의 고통에 대해 여기서 새롭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일본의 모든 사람은 이 무모한 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일이 지금 경성에서, 강요받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야 한다. (번역: 일본 도쿄 예술대 연구진)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생명이 조석(朝夕)에 절박(切迫)하였다. 네가 이 세상에 있다는 기억이 냉랭한 망각 가운데 장사(葬事)되어 버리려 한다. 아! 어찌하면 좋을까? 내 생각은 혼란해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겠다. 혹독한 끌과 무정한 철퇴가 너의 몸을 조금씩 파괴하기 시작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것을 생각하고 가슴을 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너를 구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행히 너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너를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 사람뿐이다.
아직 이 세상은 모순의 시대이다. 문 앞에 서서 너를 쳐다볼 때 누가 그 위력(威力)의 미를 부인할 자 있으랴? 그러나 이제 너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려는 자는 반역의 죄를 받을 것이다. 너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발언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였으며 또는 너를 산출한 민족 사이에서도 불행히 발언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하여 그 곳에 있는 여러 사람은 어둡고 쓰린 무정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너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후 세월이 지나갈수록 너를 애모하는 마음이 점점 깊어갈 것도 나의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모의 애(愛)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이다. 아니 이러한 애(愛)를 죽이라고 강제하는 세상이다. 아!! 생각할수록 괴로운 아픔이 가슴을 누른다. 그러나 어찌할 수도 없는 것은 사실이니 이야말로 답답하고 아프지 아니한가?
아무나 말하기를 주저하리라. 그러나 침묵 가운데 너를 파묻어 버리는 것은 나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비참한 일이다. 이 까닭에 나는 말할 수 없는 여러 사람을 대신하여 네가 죽는 이때 한 번 너의 존재를 이 세상에 의식케 하려고 나는 이 한 편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있는 장소에서 1000마일 이상이나 떠나 있는 내가 홀로 침묵을 깨치고 소리를 친다 할지라도 어둠의 힘과 강한 형세로부터 너를 구원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시비를 논단(論斷)하는 이 말을 결코 무의미한 말이라고 생각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이를 쓰는 것이 나에게 대하여는 한 가지 큰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너의 운명을 다시 회복하도록 보증하여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 대한 존경과 정애(情愛)가 이 세상에 없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너의 미(美)와 역(力)과 운명을 이해하는 사람은 실로 적지 아니할 것이다. 만약 그 수가 적다고 할지라도 너는 그 적은 사람의 정애라도 받아 주겠지? 어쨌든 너의 죽음을 생각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여다오?
나는 이 현세에서 장차 떨어지려는 너의 운명을 회복하여 주는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영(靈)의 세계에서는 너를 불멸의 자(者)로 만들지 아니하고는 마지아니하겠다. 실제 너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낼 수 있는 자유는 나에게 없으나 이 문자 가운데서 너를 불멸케 하는 자유는 나에게 있다. 아? 나는 이에서 너의 이름과 자태와 영(靈)을 결코 스러지지 아니할 성싶은 힘으로 잘 각(刻)하겠다. 마치 너를 산출(産出)한 민족이 저 견고한 화강석 위에 끝을 깊이 파서 기념할 영원의 조각을 새긴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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