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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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9-21 19:42 조회3,1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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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국보 1호
(왼쪽) 우리나라의 국보 제83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오른쪽) 일본의 국보 제1호 고류 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예술품"이라고 극찬했던 불상이다. 신라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나뭇결을 살린 단아한 얼굴의 부드러운 웃음과 긴 손가락으로 턱을 가볍게 받치고 생각하는 자세의 이 보살상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여 일본 고대 문화를 발전시킨 아스카 시대(538~710)의 것으로, 백제 불상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
아스카는 쇼토쿠 태자(성덕태자, 6세기 말~622)가 다스리던 때의 수도였던 곳이다. 아스카는 능선이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 우리나라의 서남부 지방, 곧 백제 땅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아스카에는 당시 불교의 중심 사원이었던 아스카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불교 공인에 앞장 선 소가씨 가문의 사찰로, 7세기 초에 백제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의 기술로 지어졌다.
소가씨는 백제 계통의 호족인데, 백제에서 전해 준 불교를 받아들여 보수파 호족 세력을 물리치고, 불교를 공인하였다. 6세기 말에 정권을 장악한 대신 소가노우마꼬는 생질녀를 여제 스이코 천황으로 세우고, 천황의 조카이며 소가씨의 외손이자 사위인 쇼토쿠 태자(574~622)를 섭정으로 삼아 정무를 맡게 했다. 태자는 선진 문화를 열심히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고, 관제와 법령을 정하고, 천황의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역사책을 편찬하고, 백제 승려가 전한 역(달력)을 채택하여 정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발전으로 일본은 쇼토쿠 태자 시기에 비로소 율령 국가 체제를 이루었다.
또한 불교를 독실하게 믿고, 스스로 불경 주석서를 짓기도 했던 쇼토쿠 태자는 전국에 많은 사찰을 세우게 했다. 그 대표적인 사찰이 호류사인데, 이 절 역시 백제 기술자들을 초청해 거대한 규모로 건립한 것이다. 호류사는 현존 최고의 목조 건축인 아스카 시대의 금당을 비롯해 7, 8세기의 목조 건축이 11동이나 남아 있는 옛 건축의 보고이다. 이 절에서는 담징이 그린 관음상이나 백제관음이라 불리는 우아한 보살상, 우리나라 목조 탑 형태를 전해 주는 오층탑과 팔각 원당식 건물인 몽전 등 우리 고대 문화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일본은 지식과 기술의 여러 면에서 백제 문화를 받아들여 고대 국가로 발전하고, 문화를 꽃피었다. 그 유산으로 남아 있는 불상과 공예품 가운데 고류사 미륵상과 같은 훌륭한 것들은 대부분 백제계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서기》의 기록과 관련하여 신라에서 제작되어 전해졌다고 이해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백제 혹은 일본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편, 고류사에는 잘 알려진 것과는 다른, 비교적 작은 크기(66.4cm)의 목조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1구 더 전한다. 울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우는 미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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