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한국의 세계유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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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4-11 09:30 조회2,23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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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돌 유적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만여 개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12월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많은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다.
► 고창 고인돌 유적
전라북도 고창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무게가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 화순 고인돌 유적
세계에서 제일 큰 고인돌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효산리와 대산리 일대에 500여 개의 고인돌이 집중분포하고 있으며,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 주는 채석장도 발견되었다.
► 강화 고인돌 유적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개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 조선왕릉 40기
조선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
조선 왕릉은 519년 지속된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의 무덤이 완벽하게 보존된 유적지이다.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다. 자연을 중시하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자연 친화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조선 왕조의 무덤은 총 119기인데 그중 임금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은 42기이다. 42기의 왕릉 중 40기가 2009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에 있는 2기(제릉 - 태조 첫 번째 왕비 신의고황후. 후릉 – 2대 정종과 정인왕후)는 북쪽에 있어 함께 등록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같은 조선 왕조의 왕릉이다.
조선 왕릉은 자연을 중시하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자연 친화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봉분을 세우는 방식, 주변 석물들의 배치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엄숙함이 느껴진다.
왕릉에는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왕과 왕비의 죽음은 곧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때는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다. 임금이 세상을 떠나 왕릉이 세워지는 시기는 역사의 중요한 시기였고, 왕릉 속에는 역사의 현장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519년 동안 조선 왕조를 이끌었던 왕족의 무덤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이 바로 ‘왕릉’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혀 있는 곳은 ‘원’이라 하고, 13기가 있다. 그리고 대군, 공주, 옹주, 후궁, 귀인이 묻힌 장소는 ‘묘’라고 하는데, 모두 64기가 있다. 왕이라고 해서 모두 왕릉에 묻힌 것은 아니다.
종묘에 신주를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는 왕릉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제10대 왕 연산군과 제15대 왕 광해군은 종묘에 신주가 없고, 왕릉이 아닌 묘에 잠들어 있다.
조선 왕릉은 대부분 도읍지였던 한양 외곽에 있으며. 왕릉은 도읍지의 4대문 10리 밖 80리(오늘날의 100리로, 당시의 10리는 5.2km 이다.) 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궐에서 출발한 임금의 참배 행렬이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조선 왕릉은 궁궐을 중심으로 한양 외곽의 동남쪽과 서북쪽에 주로 모여 있게 되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강원도 영월의 장릉과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 여주의 영릉은 80리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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