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한국의 세계유산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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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08 13:25 조회2,6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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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보감
2009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은 ‘의학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허준 선생(1539~1615)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선조 임금의 지시에 따라 임진왜란(1592~1598) 중인 159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반인들도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하여 전국에 보급하려 했다. 이러한 임금의 뜻을 받들어 어의(궁중에서 임금이나 왕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 태의)로 있던 허준은 왕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학서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의서를 완성했으니, 이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이 다른 의학 서적에 비하여 돋보이는 점은 여럿 있다.
첫째,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재 대신 우리 산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
둘째, 약재 이름을 의원들이 쓰는 전문 이름과 시중에서 민간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한글 이름으로 함께 기재해 놓아 누구라도 쉽게 약재를 찾을 수 있게 했다.
셋째, 세계 최초로 예방 의학을 강조했다. 병들어 몸을 고치려 하기 보다는 병이 나기 전에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을 강조하여 세계 보건 기구가 중시하는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건강과 안녕’이라는 이념을 이미 400여 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넷째, 중국·일본·대만 등지에 번역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동의보감≫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경험한 의학 정보를 정리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집대성한 ‘동양 의학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일반인을 위한 의학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네스코는 ≪동의보감≫의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세계 기록 유산으로 ≪동의보감≫을 등재했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 유산은 약 200여 점에 달하는데, 이 중에서 의학 서적은 ≪동의보감≫이 유일하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총 25권의 책에 담고 있다.
〈내경〉편 -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인 오장육부에 관한 사항을 담았다.
〈외형〉편 - 눈에 보이는 몸의 각 부위에 관한 기능과 질병을 썼다.
〈잡병〉편 - 몸에 생기는 여러 가지 병의 원인과 증상을 적고, 이에 따른 기본적인 치료 방법을 썼다.
〈탕액〉편 - 약재를 쉽게 구하는 방법과 처방하는 요령을 적었다.
〈침구〉편 - 침과 뜸에 관한 이론과 시술 방법을 기록했다.
○ 일성록
필사본으로 모두 2,329책이다. 규장각에서 편찬한 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인 1752년(영조 28)부터의 언행과 동정을 일기체로 적고, 그가 왕위에 오른 지 3년 후(1779)에 규장각을 설치하여 각신들로 하여금 왕이 조정에서 행한 갖가지 사실들을 기록하게 하였다. 이것을 자료로 하여 1783년부터 작성을 시작해 1785년 1월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성록》이 처음으로 편찬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규장각의 책임 관원에게 맡겨 이 편찬체제를 이어 나가게 하였는데, 현재는 1790년(정조 14)부터의 기록만 남아 있다.
증자의 "하루 세 번 내 몸을 돌이켜 살폈다"는 말의 뜻을 살려 《일성록》이라 하였다 하며, 기사마다 표제를 붙이고 중요 사항은 전부를 수록하였다. 또, 내용에 따라 하늘, 임금의 조상, 임금, 신하 등으로 구분하여 읽고 싶은 것을 찾고 가리기 편하게 하였다.
내용과 형식의 독창성,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5 ․ 18 민주화운동기록물
행정기관의 5.18 관련자료 : 군법회의재판기록-광주사건관련기록물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수첩, 일기 : 도청 분수대 위에서 낭독한 학생들의 성명서
등재명은 '인권기록유산-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대항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항쟁 관련 기록물'이다. 2010년 1월 광주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같은 해 3월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보완과 수정을 거쳐 2011년 5월 24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에서 등재를 권고하기로 결정하였고, 5월 25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공식 발표하였다.
이 기록물은 ① 정부, 전남도청, 광주시청, 광주경찰서 등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 민주화운동 자료, ②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자료와 군 사법기관 재판 자료, ③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 수첩과 시민들의 일기, ④ 사진 자료와 흑백필름, ⑤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 ⑥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⑦ 국회의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⑧ 국가의 피해자 보상 자료, ⑨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등 총 9개 주제로 분류되어 있으며, 5·18 민주화운동의 발발과 진압 그리고 이후의 진상 규명과 보상 등의 과정을 편철 4271권 85만 8904페이지, 흑백필름과 사진 2017컷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담고 있다.
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5·18 민주화운동이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필리핀·태국·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실시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 사례 등도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는 점 등이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심사 과정에서 극우 인사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학살을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세계기록유산 등재 반대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에 기록하여 올림은 한국이 보유한 세계기록유산 가운데 고문서가 아닌 현대사 자료로는 처음이라는 점, 문화재청 등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기구의 주도로 기록하여 올림에 성공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2011년 5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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