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한국의 세계유산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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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5-16 08:53 조회2,3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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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중일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이다. 부록으로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 합 9책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학술연구 자료로서 높은 가치가 인정될 뿐 아니라, 유례를 찾기 힘든 전쟁 중 지휘관이 직접 기록한 사례인 점을 들어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난중일기 : ① 임진일기 : 27매, ② 계사일기 : 30매, ③ 갑오일기 : 52매, ④ 병신일기 : 41매, ⑤ 정유일기 : 27매, ⑥ 속정유일기 : 20매, 겉장이 없고 첫장에 '정유'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기 내용은 정유에서 무술 정초에 이르고 있고, ⑤의 정유일기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 서간첩 : 충무공의 서간(편지)집이다.
‣ 임진장초 : 표지에 '임진장초'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오른쪽 위에는 '만력이십년'이라고 써 있으며, 지면에는 여러 곳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인'이라는 주인이 찍혀 있다.
【친필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에는 두 가지 전적이 있는데, 그 하나는 이충무공의친필 초고본으로, 충남 아산의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이충무공전서》에 있다. 본래 충무공은 다만 일기를 썼을 뿐, 거기에 어떤 이름을 붙였던 것은 아니며, 정조 때에 이르러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권5에서 권8에 걸쳐 수록한 다음부터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정조 19)에 완성되었는데, 그 편찬작업은 윤행임과 유득공이 맡아 하였다. 그런데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까닭은 전서의 편찬자들이 충무공의 친필 초고를 가져다가 정자로 베껴 판각에 올릴 때에 생략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부분이 정작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에는 빠진 부분도 있다.
즉, 임진년 정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 그리고 을미년 1년 동안과 무술년 10월 8일부터 12일까지가 누락되었는데, 이것은 필경 편찬 작업 과정이나 아니면 그 후에 유실된 것 같다. 친필 초고본은 별책 부록까지 합하여 8책에 이르며, 제5책과 제6책은 두 책이 모두 정유년 일기여서, 8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가 중복되어 있다. 그 까닭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제5책에 간지가 잘못 적혀 있는 곳이 많고, 또 내용을 보아도 제6책의 것이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나중에 충무공이 시간 여유를 틈타 앞의 간지의 잘못을 바로잡는 한편, 기억을 더듬어 보완하였던 것이 아닌 가 추측된다.
【내용】 국난을 극복해낸 수군사령관으로서 충무공의 엄격하고도 지적인 진중생활을 평이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유비무환의 진중생활, 인간 이순신의 적나라한 모습과 생각,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 부하에 대한 사심없는 상벌의 원칙, 국정에 대한 솔직한 간언, 군사행동에 있어서의 비밀 엄수, 전투상황의 정확한 기록, 가족·친지·부하장졸·내외 요인들의 내왕 관계, 정치·군사에 관한 서신교환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가치】 첫째,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일기로서, 전란 전반을 살피는 사료로서의 가치와 나라의 위급을 구해낸 영웅의 인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생사를 걸고 싸우던 당시의 진중일기로서 그 생생함이 더욱 돋보이며, 단순한 전쟁사 이상의 가치가 있다. 셋째, 그 당시의 정치·경제·사회·군사 등 여러 부문에 걸친 측면사와, 특히 수군의 연구에 도움을 준다. 넷째, 충무공의 꾸밈없는 충·효·의·신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후세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다섯째, 무인의 글답게 간결하고도 진실성이 넘치는 문장과 함께 그 인품을 짐작케 하는 웅혼한 필치는 예술품으로서도 뛰어나다.
○ 새마을운동 기록물
1970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개된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기록물들로, 2012년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였다. 2013년 6월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nternationalAdvisoryCommittee;IAC)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를 권고하였으며, 유네스코가 이를 받아들여 《난중일기》와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총 11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이는 세계에서 5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수치이다.
이 기록물은 ① 대통령의 친필 원고와 연설문 및 서명이 담긴 결재 문 서 등 대통령비서실이 생산한 자료, ② 새마을 사업 지원, 새마을 관련 세금 감면, 새마을 조직·단체 설립 등의 법령과 관련한 행정문서 등 중앙 및 지방 행정부처가 생산한 자료, ③ 마을 운영 규정물, 마을회의 및 주민총회 등 각종 회의록을 비롯한 마을 단위의 새마을운동 기록물, ④ 새마을지도자들의 성공사례를 담은 원고와 편지, ⑤ 각계 각층의 시민, 단체, 기업 등이 대통령과 정부에 보낸 편지 및 기증서, ⑥ 새마을교육 교재 원고와 분임토의 차트 등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이 생산한 기록물 등 약 2만 2,000여 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기관에서 생산한 자료들은 국가기록원에,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이 생산한 자료들은 새마을운동중앙회에 보존되어 있다.
새마을운동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낙후되어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으며, 유엔의 세계식량계획(WFP)과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UNESCAP) 등에서 빈곤퇴치의 모델로 채택하고 아프리카 등 많은 저개발국가에서 국가발전의 모범 사례로 학습하는 '인류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 과정을 담은 이 기록물들은 빈곤퇴치와 마을환경 개선, 새마을정신의 개발, 농촌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주민들의 리더십 개발 등 1970년대 한국의 3만 4,000여 개 마을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농촌근대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종합적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새마을운동이 빈곤퇴치를 위한 국가발전의 한 모델이자 민관 협력의 성공적 사례로서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았다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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