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한국의 세계유산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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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0 10:54 조회2,3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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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
김장, 더 넓게 ‘김치를 담그는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김장은 한국의 문자 체계인 ‘한글’이나 ‘태극기’와 비교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광범위한 도시화와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90% 이상은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서 담아 주는 김치를 먹는다. 이는 ‘김장’이라는 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가족 협력 및 결속을 강화하는 기회임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것,특히 공동 작업인 김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김장은 또한 많은 한국인에게 인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도록 해준다. 김장은 자연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것에 대한 인간의 창조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가장 우수한 사례이다. 한국인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운다. 김치의 재료와 담그는 방법은 지역마다, 가정마다 다양하다.
김장은 월동 준비의 필수적 부분으로서 김장을 통해 많은 한국인은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또 한국인들은 김치도 없을 만큼 가난한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김장철마다 지역사회, 자원봉사 단체 및 기타 집단은 대규모의 김장 행사를 조직하여, 수천 명이 김치 담그는 데 참여한다. 여기에서 담근 김치는 모두 필요한 이들에게 기증된다. 이러한 대규모 행사에서 담근 김치를 나누는 풍습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다.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세계 무형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농악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세계 무형 유산)으로 등재된 농악은 흥을 돋우고 사람들 사이에서 단합과 화합을 끌어내기 위하여 공동체의 행사에서는 빈번하게 농악이 연주되고 있으므로 한국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해서 농악에 노출됐다. 오늘날까지 농악은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민속 예술로 남아 있으며, 각종 축제와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농악을 대표적인 문화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근대 이전 시대의 농악은 공동체 내 연대성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정체성을 만들고 공유하였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경향 속에서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오랜 세월에 걸친 농악의 기능은 오늘날의 한민족 사회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농악의 다양한 기능, 즉 매혹적이고 서사적인 민속 예술, 흥겨운 여흥의 형식, 공동체 축제나 공적 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농악이 지니는 가치는 매우 높으며, 농악이 각 지방에서 풀뿌리 문화의 산물로서 가장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술 형태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흔히 흥이 많고 열정적이며, ‘신명(도취적인 흥분)’이 있다고 묘사되고는 한다. 이러한 정서적 특징 덕분에 한국인들은 노래와 춤, 곡 연주 등에 쉽게 매료되는 성향을 지녔다. 타악기의 흥겨운 리듬과 태평소의 귀를 뚫을 것 같은 고음이 특징인 농악은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절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깨춤을 추게 만든다. 따라서 흔히 농악은 잔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서로서, 연행자들과 관객이 한데 어울려 흥겨움을 나누고 소통하게 해주며 이러한 역할에 적격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은 강한 소속감을 느끼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농악이 지켜온 불변의 가치이며, 이러한 특성 덕분에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성공적으로 전승될 수 있었다.
○ 줄다리기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벼농사 문화권에서 주로 행해졌다. 한국의 줄다리기는 2015년에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줄다리기가 기원한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는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다리기, 줄 당기기, 줄 싸움, 줄 쌈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가장 이른 시기에 줄다리기를 언급한 문헌은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이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도의 줄다리기를 조리희라고 기록하였다. 1849년경에 편찬된 《동국세시기》에는 도삭, 갈전, 조리지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규경(1788~1863)이 저술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줄다리기가 충주 지방 풍습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세시기》에는 충청도, 경기도, 제주도의 줄다리기 풍속이 서술되어 있다.
보통 정월 대보름날에 가장 많이 행해졌다. 그러나 동래 지역에서는 단오, 제주도에서는 한가위, 전라도 서해안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룻날에 줄다리기했다는 기록도 있다. 줄다리기하기 전에 먼저 하는 일은 줄을 만드는 것이다. 재료가 될 짚이나 칡을 준비하여 새끼를 꼰다. 새끼는 수십 가닥으로 합사한 굵은 줄로 만들고 거기에 다시 새끼로 꼰 손잡이 줄을 무수히 매단다. 원줄은 지역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데 지름이 크게는 1~1.5m까지 된다. 길이는 50여 m에서 2~300m에 이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줄다리기 문화는 벼농사 재배 지역에서 주로 관찰된다. 우리나라는 삼남 이하 지역에서 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조사에 따르면 이북에서도 발견되는 지역이 있다. 현재 지역 전통으로 줄다리기 전승 행사를 하는 곳은 강원도 삼척, 충청남도 당진, 경상남도 영산, 전라북도 김제, 전라남도 장흥 및 나주, 경기도 광명, 경상북도 청도 등이 있다.
전통적인 농본 사회에서 줄다리기는 농한기에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 풍속이었다. 따라서 줄다리기는 오락 기능을 담당할 뿐 아니라 농경의례로서 주술적 성격도 가진다. 특히 주술적인 면은 줄다리기의 시행 시기, 줄의 모양, 줄을 당기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 첫 만월이라는 점에서 신성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줄의 모양은 농경에 필요한 '비'나 '비의 신'을 형상화한 용과 닮았다.전통적으로는 줄다리기의 승부로 풍흉을 점치는 지역도 있었다.
2015년 12월 제10차 무형 유산 보호 협약 정부 간 위원회에서 줄다리기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기록하여 올렸다. 이는 한국, 베트남,캄보디아, 필리핀 4개국이 공동으로 기록하여 올려 신청한 결과이다. 등재된 한국의 줄다리기에는 영산 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 기지시 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삼척 기줄다리기(강원도 무형 문화재 제2호), 감내 게줄다리기(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7호), 의령 큰 줄 댕기기(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0호), 남해 선구 줄긋기(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6호)라는 6개의 무형 문화재가 포함되었다.
'줄다리기'의 명칭은 캄보디아에서는 ‘테안 프롯(ល្បែងទាញព្រ័ត្រ)’, 필리핀에서는 ‘푸눅(Punnuk)’, 베트남에서는 ‘깨오꼬(Kéo co)’라고 부른다. 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4개 국가에서 모두 줄다리기는 풍작과 번영을 상징한다. 줄다리기 놀이함으로써 공동체의 결속과 공동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승부와는 무관하게 줄다리기는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위이자 구성원의 협력을 격려하는 의미로 활용됐다. 사회적 결속의 기회, 주술적 의례 행위, 농경문화의 산물, 농한기와 추수기의 오락으로서 줄다리기는 벼농사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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