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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풍수에 따라 지은 서울의 4대문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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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1 09:16 조회2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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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경성 서대문이올시다.’ 1915년 3월4일 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 기관지답지 않은 기사를 싣는다. 돈의문(서대문)의 철거를 의인화해서 ‘영원히 사라질 돈의문(서대문)’을 안타까워했다. 기사는 “나는 1421년(세종 3년) 팔도장정 30만 명의 손으로 탄생한 성문 8곳, 즉 8형제 중 둘째 되는 돈의문이다”로 시작된다. 

 

“이름 덕분에 몇 백 년 먹어도 갓난아이처럼 ‘새문, 새문’소리를 듣더니…여러분과 인연이 끝나 경매되어 팔린답니다.… 조국에 변란이 일어나면 무능한 나도 국가의 간성(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군대나 인물)노릇을 해서 성 밑에 몰려드는 적군의 탄환과 화살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지엄하게 한성의 서편을 지켰는데 다만 경매 몇 푼에….” 

 

기사는 이어 “도끼와 연장이 내 몸을 파괴한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죽죽 돋아난다.”고 슬퍼하면서도 이내 “그러나 도량 넓게 생각하면 내 몸 헐려나가는 것이 기쁘기 한량없다”고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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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철거소식을 의인화해서 알린 매일신보 1915년 3월4일자. ‘나는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으로 철거의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대포 한방이면 무너질 정도로 무기가 발달했고, 이제는 번화한 경성(서울)의 교통에만 방해가 된다니 큰 길을 만들려고 헌다하고 내 몸뚱이였던 석재는 여러분(시민)이 밟고 다닐 길이 되니 죽어도 아주 죽는 것이 아니고, 공사를 위해 몸을 버리니 서대문의 면목으로 즐겁습니다.” 

 

이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6월11일 매일신보는 다시 한 번 돈의문 철거기사를 쓴다. 

 

“서대문이 250원에 경매되어…마침내 6월10일 (마지막 부재까지 철거되는 순간) 인부가 위에서 부재를 떨어뜨릴 때 ‘슬프다!’하고 소리치듯 ‘쿠아앙!’하고 땅이 울리더라.…서대문은 영구의 그림자가 사라졌더라.…경희궁 흥화문에서 서대문밖까지 평탄한 큰 길이 조성되어…두어 달 지나면 그 근처는 면목이 일신된다.” 

 

요컨대 매일신보 기사는 495년 풍상을 견딘 돈의문의 철거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한 대로건설을 위해서는 ‘걸림돌만 되던’ 문을 허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동대문(흥인지문)이나 남대문(숭례문) 같이 잘 생기지도 못하기 때문에 옆으로 길을 돌려 보전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서 “할 수 없이 철거해야 하니 경향 제위의 모두에게 작별을 고한다.”는 3월4일자 기사가 눈에 밟힌다. 돈의문 말고도 소의문(서소문), 혜화문(동소문) 등도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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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서 250엔에 낙착된 후 완전 철거되었음을 알리는 매일신보 1915년 6월11일 기사. “인부가 위에서 부재를 떨어뜨릴 때 ‘슬프다!’하고 소리치듯 ‘쿠아앙!’하고 땅이 울렸다”고 했다.

 

그러나 돈의문은 매일신보 기사 표현대로 ‘교통에 방해가 되었고, 게다가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처럼 잘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철거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는 숭례문과 흥인지문 역시 예외 없이 철거할 예정이었다. 특히 숭례문은 조선왕조 왕도이자 대한제국 황도인 서울의 정문이었기에 반드시 철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에 따라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한국통감부를 개설하면서 숭례문 역시 풍전등화 격이 됐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단체인 일본거류민회는 용산과 그 인근지역에 40만~50만 명을 수용하는 ‘도시개조’를 계획했다. 골자는 서소문~수구문(광희문)을 직통하는 도로를 개설하고, 종로에 십자대로를 조성하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한 왜성대와 욱정(예장동·회현동 일대) 등 남산 북산록을 공원화 한다는 것이었다. 또 용산에 대규모 경마장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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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쯤의 남대문(숭례문) 전경. 철거위기에 놓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승전기념물이라 해서 살아남았다.

 

용산 신도시 계획에 걸림돌이 된 것이 바로 숭례문이었다. 그렇잖아도 일제는 도성 및 산성, 사찰 등의 각종 기념물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서울에서 발행된 한성 신보 초대사장을 지낸 낭인(일정한 직업이나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빈둥빈둥 노는 사람) 출신 아다치 겐조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인 동화를 위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배일(排日)자료를 공급하는 기념물”이라면서 “기념물을 제거하는 것이 민심통일과 선인동화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산성과 옛 사찰 등을 보면 ‘여기서 왜구를 격파했다’느니 하는 배일자료가 새겨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인이 이런 자료를 조석으로 접하면 조선인 동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용산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숭례문은 ‘타도 1순위’가 됐다. 당시 조선주둔군 사령관인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아예 “낡아빠진 남대문은 빨리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포격으로 파괴하자”는 극단론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제동을 건 자가 있었으니 바로 당시 한성 신보 사장이자 일본 거류민 단장이던 나카이 기타로다.

 

‘숭례문 철거반대’를 외친 나카이의 주장은 깜짝 놀랄 만 했다. 나카이는 ‘포격파괴’를 주장하던 하세가와에게 “(숭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빠져나간 문”이라면서 “당시의 건축물은 남대문(숭례문) 이외의 두 세 가지 밖에 없으니 파괴하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하세가와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가 개선장군처럼 통과해서 서울을 함락한 숭례문”이라는 이야기에 뜻을 굽혔다(나카이의 <조선회고록>, 당업연구회출판사, 1915년). 대신 교통소통을 위해 숭례문의 좌우 도로를 확장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흥인지문(동대문) 역시 가토 기요마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한 문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1927년에 간행된 서울여행 가이드북인 <취미의 조선여행> 책자는 남대문, 즉 숭례문을 소개하면서 “그 옛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정벌 때 가토 기요마사가 남대문,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대문을 통해 경성으로 쳐들어갔다고 하는데, 그 남대문이 이 남대문”이라고 했다.

 

일제는 숭례문(남대문) 및 흥인지문(동대문)을 문화재적, 혹은 미술사적인 가치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승전문’이었기에 보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전승기록과 아무런 연관이 없던 돈의문 등은 교통에도 걸림돌이고 조선인의 배일감정을 부추길 뿐이라는 이유로 철거됐던 것이다.(오다 히데하루의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고적조사와 성곽정책’, 서울대 석사논문, 2002년) 

 

 

그런 돈의문(서대문)은 철거된 지 10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복원되지 않고 있다. 주변 토지 보상과 교통난 해소방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거 때 명분이 ‘교통 때문’이었는데 104년이 지난 지금 복원의 걸림돌 또한 ‘교통’이란다. 서울시가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로나마 복원한 모습을 공개했다고 하니 아쉬운 대로 ‘상상속의 돈의문’이라도 감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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