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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오리 이원익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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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29 16:01 조회5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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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영정 

 

여기 삼삼한 매력의 정치인이 있다그는 석 자 세 치 작은 몸으로 좌··영 삼정승을 두루 지내며 세 명의 임금을 보필하였다오리 이원익사람들은 "키 작은 영웅"(혹은 재상)이라 부른다이원익의 발자취를 통해 참 희생참 헌신참 애국애족참 삶을 뒤밟게 하고 싶다

이원익(1547~1634)은 본관은 전주자는 공려호는 오리시호는 문충한성부 출신이다태종과 선빈 안씨의 소생인 익령군의 4대손으로 태어나임진왜란과 정권 교체의 혼란기에도 빼어난 인품과 능력으로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정승으로 맹활약했다

 

이원익은 17세 때 생원시에 합격해(1564명종 19성균관에서 수학했고 5년 뒤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1569선조 2). 이듬해 승문원권지부정자로 활동하였다사람과 번잡하게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고공적인 일이 아니면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한다유성룡(柳成龍)이 일찍부터 이원익의 비범함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597년 2이순신이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장군을 죽이려는 하는 선조의 의지는 확고했다그때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이가 영의정 겸 도체찰사 오리 이원익이다전쟁을 총지휘하는 도체찰사가 전하께서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폐하지 못하옵니다.”라고 간한 것이다이틀의 국문 끝에 장군은 목숨을 건지고 백의종군케 되었으니 청백리 오리 대감의 위대한 반대가 장군을 살리고 나라를 살린 것이다.

 

오리 선생은 석 자 세 치지금으로 치면 1m 정도의 작은 체구를 지녔다오죽하면 효종이 1651년에 인조의 종묘(묘정)에 이원익을 함께 제사를 지낸다고 내린 교서인, <인조묘정배향교서>에 "신고불승의"라 표현했다의복마저도 버거운 몸으로어릴 적에 병치레가 잦았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났던 이준경(1499~1572)이 건강이 염려되어 명종에게 부탁하여 약을 먹였을 정도였다그 정성 덕인지 77세 고령에도 이괄의 난에 인조를 모시고 피난을 갈 정도로 체력과 강인한 정신을 지녔다그리고 골골 팔십이란 말도 무색하게 88세까지 장수했다. 84세 때 작성한 유서를 보면 흐트러짐이 전혀 없는 글씨체를 볼 수 있다

왜소한 체격 탓인지 수줍은 성격으로 말수가 적었지만관직에서 직언은 서슴없이 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피난할 때에 숙박한 곳에서 준 음식을 직접 먹고 독약이 있는 지 알아본 후에야 임금에게 바쳤을 정도로 성실하게 소임을 다한 충신이었다그리고 왕가의 후예임에도 소박하고청렴한 관직생활로 청백리로 존경을 받았다.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이 함락되었을 때에 평안도순찰사로 있으며 평양 탈환의 공을 세우고사도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했다이에 선조가 선무공신까지 인정하려 했으나사양하고 임금을 보필한 공만 받겠노라 했다그런데 이 호성공신도 스스로 일등이 아닌이등으로 받을 정도로 치적을 자랑하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당시 받은 교서는 분실되었는데유성룡이 받은 교서에 오리 선생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선생은 호성공신으로 녹훈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수많은 곡절 끝에 1608년 광해군이 즉위했다새 국왕은 전대(前代)의 영의정인 이원익을 자신의 첫 수상에 그대로 임명했다이런 사실은 당시 그의 위상과 신망을 또렷이 보여준다.

 

거대한 전란을 겪은 국왕과 재상은 이때 중요한 정책을 도입했다그 뒤 대동법(大同法)의 모체가 되는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을 경기도에 시범 시행한 것이었다널리 알듯이 대동법은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고 백성의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공납을 쌀로 걷는 제도였다이원익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논의되어 온 이 제도의 시행을 강력히 주장해 시행시켰다앞서 황해도 도사안주목사로서 보여준 뛰어난 실무적 관료의 면모는 다시 한 번 빛났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광해군의 내치(內治)는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영의정은 그런 풍파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기 쉬운 자리였다즉위 직후 광해군이 형 임해군(臨海君)을 처형하려고 하자 이원익은 23회나 사직했고결국 윤허를 받아 낙향했다(1609광해군 1).

 

그러나 그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2년 뒤 국왕은 그를 다시 영의정으로 불렀다(1611년 9). 그러나 이때도 국왕의 시책에 반대해 이듬해 4월에 체직(遞職벼슬이 갈림)되고 말았다.

 

1614년에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사사되었고이듬해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이원익은 폐모론을 강력히 반대했고강원도 홍천(洪川)으로 유배되었다그는 4년 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여주에 은거하면서 광해군의 치세를 보냈다  (1619광해군 11).

 

1623(인조 1) 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제일 먼저 영의정으로 부름을 받았다광해군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인조에게 자신이 광해군 밑에서 영의정을 지냈으니 광해군을 죽여야 한다면 자신도 떠나야 한다는 말로 설복해 광해군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80세에 가까운 노구로 공주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도체찰사로 세자를 호위해 전주로 갔다가 강화도로 와서 왕을 호위했으며서울로 환도하자 훈련도감제조에 임명되었다그러나 고령으로 체력이 약해져 사직을 청하고 낙향하였다그 뒤 여러 차례 왕의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역경은 정묘호란(1627인조 5)이었다이원익은 다시 도체찰사가 되어 국왕과 세자를 수행했다환도한 뒤 국방을 총괄하는 훈련도감 제조에 임명되었지만그런 중책을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그는 사직을 주청해 금촌으로 낙향했고, 1632(인조 10) 6월 인목대비가 승하하자 잠깐 서울로 올라와 성복(成服)한 것을 빼고는 그곳에서 계속 지냈다.

 

이원익은 1634년 1월 29일 금촌에서 세상을 떠났고, 4월 그곳에 묻혔다영예와 고난이 교차한 87세의 긴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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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및 신도비부인 영일 정씨와의 합장묘다경기 광명시 소하동 소재. <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이원익의 능력과 명망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하고 객관적인 증거는 광해군과 인조가 그를 자신의 첫 재상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일 것이다치세 초반 원로를 임명해 조정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경륜과 인품이 겸비되지 않았다면 있기 어려운 인사가 분명할 것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주목되는 요소는앞서 말했듯이 당시로서는 드물게 뛰어난 실무적 능력과 식견을 가진 신하였다는 것이다황해도 도사 시절의 군적 정비와 안주 목사 때의 농상(농사일과 누에치는 일진흥그리고 광해군 초반 대공수미법의 실시는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실례다.

 

또한 이원익은 신념과 원칙을 견지한 인물이었다임진왜란 기간 동안 그는 이순신을 변함없이 옹호한 거의 유일한 대신이었다유성룡마저 이순신을 비판할 때도 이원익은 경상도의 많은 장수들 중에서 이순신이 가장 뛰어나다면서 그를 교체하면 모든 일이 잘못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선조 29년 10월 5, 11월 7).

 

인조반정 뒤 광해군을 사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을 때도 이원익은 자신이 모셨던 주상을 사사한다면 자신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맞서 광해군의 목숨을 보호하기도 했다.

 

탁월한 실무적 식견과 강직한 원칙으로 일관한 그의 삶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원익은 사람됨이 강직하고 몸가짐이 깨끗했다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했는데 치적이 가장 훌륭하다고 일컬어졌다관서(평안도)에 두 번 부임했는데 그곳 백성들이 공경하고 애모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했다.…… 그는 늙어서 직무를 맡을 수 없게 되자 바로 치사하고 금천으로 돌아갔다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의 초가집에 살면서 떨어진 갓에 베옷을 입고 쓸쓸히 혼자 지냈으므로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

(인조 12년 1월 29)

 

이원익은 인조의 묘정(종묘)에 배향되었고 시흥의 충현서원에 제향되었다남인의 거두인 허목이 그의 손녀사위로 그 뒤 [오리집]을 간행하고 묘비명과 연보유사 등을 지어 업적을 기리는데 중요하게 공헌했다.

 

성품이 소박하고 단조로워 과장이나 과시할 줄을 모르고소임에 충실하고 정의감이 투철하였다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집은 두어 칸짜리 오막살이 초가였으며퇴관 후에는 조석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했다 한다인조로부터 궤장(지팡이)을 하사받았다.

 

저서로는 오리집속오리집오리일기』 등이 있으며가사로 고공답주인가가 있다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충현서원에 제향되었다[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충현서원 터가 남아 있음]. 시호는 문충이다.

 


인조가 은퇴하고 내려간 충신의 근황이 궁금하여 승지에게 명해 알아보니선생이 비가 새는 2칸 초가에 거주하는 것에 탄복했다이에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1630(인조 8)에 집을 하사했다공훈과 청백리로 임관한 자세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하여 "모든 신민들이 보고 느껴야 할 것"이란 의미에서 '관감'이란 이름이 붙은 관감당. 1658(효종 9)에 집터에 사당이 건립되어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으나후에 서원이 훼철되어 1916년에 관감당을 다시 지었다

한편부친인 함천군 이억재는 왕실 후손의 관직 진출 제한에 따라 역사와 운율에 재주를 지녔음에도 공직에 나갈 수 없었다하지만 아들이 공신이라 사후에 이등 공신으로 추대되었다충현박물관에 가면 함천군 내외작은아버지 등 인척의 묘를 접할 수 있는데오리 선생의 묘와 신도비는 오리서원 쪽에 있는데신도비의 글씨를 선생의 손녀사위이자 진서체의 1인자인 허목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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