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록밴드 21년 허클베리핀, 제주에서 음악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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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20 22:00 조회1,3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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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허클베리핀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밴드를 이끌고 있는 이기용(보컬·기타)은 “제주에서 보낸 시간이 음악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마음의 병이 심해졌어요.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점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주에서도 가장 한적한 김녕에서 4년을 머물렀어요. 약도 안 먹고 아플 거 다 아파가면서. 자연이 주는 위로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그걸 음악에 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이소영(보컬)도 방황하긴 마찬가지였다. 2집 ‘나를 닮은 사내’(2001)부터 허클베리핀에 합류해 십여년간 노래해 왔지만, 여전히 음악으로 먹고살 자신이 없었다. 안정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 2007년 홍대 앞에 문을 연 음악 바 ‘샤’까지 닫고 나니 더욱 막막했다. 7년을 버텼지만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긴 어려웠던 탓이다. “형은 제주로 내려갔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음악을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핀(FIN)’이란 약자에 꽂혀서 핀란드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오로라를 봤어요. 청춘을 다 바친 시간을 계속 곱씹으면서.”(이소영)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면서 작업실 한쪽 벽면은 다양한 풍광으로 채워져 갔다. 오로라나 북극·남극처럼 넓은 공간을 담은 사진이 주를 이뤘다.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빛의 제국’을 음악적 지향점으로 삼은 이들은 그림을 그리듯 작업했다. “도화지에 붓을 치는 순간 구조가 생기잖아요. 위아래가 구분되고. 음악도 저음, 중음, 고음을 쌓아 나가면서 그 공간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벌릴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오로라’를 들어 보면 바람 소리가 나거든요. ‘항해’에서는 첼로가 대기권을 통과하는 듯한 소리를 만들고. 작은 소리지만 공간감이 확 넓어지죠.”(이기용)
이번 앨범은 세상에 없는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지러진 저 달을 봐/ 성스러운 저 검은 숲/ 쏟아지는 빛에 싸여/ 밤이 너의 눈에서 자라고 있어”(‘오로라 피플’)라거나 “밤의 궁전으로 물에 비친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면 니가 그리웠어”(‘너의 아침은 어때’) 같은 노랫말은 우주여행 안내서처럼 시공간을 떠돌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록밴드 공연에 와서 가만히 서서 감상만 하는 관객들을 향해 “출렁이며 춤추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5집 ‘까만 타이거’(2011)와 비교하면 더욱 대조적이다.
언니네이발관·델리스파이스 등과 함께 1세대 인디밴드 부흥기를 연 선배로서 지금 인디 음악계를 바라보는 소회는 어떨까.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장미여관 같은 후배들이 팀을 결성하고 해체하는 동안 꿋꿋이 팀을 지켜온 비결을 묻자 “그냥 버티는 것”이라는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저희는 선배라는 인식도 없어요. 막 누굴 만나고 계보를 만들고 이런 스타일도 아니라서. 장르를 떠나서 자기 음악을 하는 것을 존중할 뿐이죠. 밴드를 한다는 건 연애랑 비슷해서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이기용)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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