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오 문희’ 이희준 “치매 노모 모시는 인생, 그게 영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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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9-07 10:30 조회1,0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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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내외 주요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한 가운데 ‘한국영화 흥행 1위’를 내세우며 뜀박질하는 영화가 있다. 지난 2일 개봉해 이틀간 4만명을 끌어들인 ‘오 문희’(감독 정세교)다. 전체 박스오피스 1위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니 대결이란 말이 무색하지만 영화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극중에서 딸을 친 뺑소니범을 찾아 무작정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황두원 역의 이희준(41)처럼.
2일 개봉 휴먼코미디 농촌 수사극 영화
연기인생 59년 나문희와 모자 호흡 빛나
"돌아가는 듯해도 이게 나…연기만 생각"
“출발하는 느낌이랄까요. 작은 영화이지만 사실상 첫 주연작이라서. 물론 ‘남산의 부장들’ ‘미쓰백’ ‘1987’ ‘최악의 하루’에서도 늘 주연이라고 혼자선 생각했어요, 하하. 그런데 ‘오 문희’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역할을 하니 어깨가 무겁고 외롭기도 해요. 선배님들이 이렇게 해오셨구나 새삼 느낍니다.”
코로나19로 인해 4일 화상인터뷰로 만난 이희준의 말이다. 올초 ‘남산의 부장들’에서 다혈질 경호실장 곽상천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가 이번엔 농촌마을의 ‘무대뽀’ 보험회사 직원 황두원으로 변신했다. 치매를 앓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여섯 살 외동딸을 친 뺑소니 사고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설픈 아버지 역할이다. 유일한 목격자인 어머니 문희(나문희)와 좌충우돌하는 수사극을 펼치는 동안 모자간의 지난했던 과거가 하나둘 껍질을 벗는다.
“원래 대본 공모 당선작인데, 작가가 실제 보험회사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상사를 모티브로 했대요. 딸 혼자 키우고 아내는 도망간 사연이 있는…. 실은 연기 전까진 두원이란 인물을 좀 얕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촬영 중에 문득 ‘이게 실제면 어떡하지’ 싶은 거예요. 치매 어머니에 여섯살 난 딸 키우면서 회사도 다니는 삶이라… 이런 사람이 3차 세계대전 막는 것만큼 영웅이겠다 싶어졌어요.”
연기자로선 ‘실제면 어떡하지’ 싶은 그 삶이 실제가 아니라서 연기할 수 있다. 이희준 역시 “내가 회사원으로 살았으면 평생 관심 갖지도 않았을 사람들”을 직접 맞부딪치고 연구하면서 캐릭터를 살려왔다. ‘미성년’(2019)에서 3분 등장하는 도박중독자를 표현하기 위해 카지노 인근 찜질방에서 ‘관찰 숙식’을 했던 것처럼, 이번 영화를 위해서도 치매 노모를 모시고 사는 시골 남자의 집을 찾아가 함께 부대꼈다.
극중 두원은 평소엔 어머니를 거칠게 막 대하다가도 치매로 천진해진 모습에 시큰해하며 꽃을 꽂아주는 ‘츤데레’ 중년이다. 평화로운 농촌 배경, 헌신적이되 죄책감이 큰 어머니, ‘츤데레’ 아들의 무뚝뚝한 진심 등 다소 뻔한 설정에다 반전마저 어설픈 수사극이지만 연기인생 59년의 나문희와 이희준의 찰진 호흡 덕에 영화에 따뜻한 생기가 돈다.
“첫 리딩 때 제 대사가 ‘엄니’였는데 그걸 좀 더 맛있게 해보라셔서 서른번쯤 해본 것 같아요. 일주일쯤 지나니 ‘연기 너무 잘한다, 마음대로 해봐’ 하셨는데 그때 호흡이 딱 맞는 게 느껴졌어요. 연세가 여든이시라 현장 모두가 선생님 컨디션을 배려했는데 ‘너무 애쓰지 마라’면서 편히 해주셔서 감사했죠.”
극중 두원은 눈물이 많다. 치매 노모에 대한 ‘최면 시도’를 포함해 곳곳의 웃음 포인트도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생활연기들. “상황 속에 다이빙하듯 들어가면 그만이었던” ‘남산의 부장들’에 비해 열려 있는 게 많았고 정세교 감독과 아이디어 회의도 많이 했단다. 그래선지 곽상천 실장 연기가 훨씬 쉬웠다고 돌아봤다.
“사실 머리를 크게 안 써도 되는 역할이었어요. 이병헌 형님 역할(김규평)을 보면서 ‘대통령이 뭘 원하는지 알텐데 답답하다’ 이러면서…. 내 것만 충실히 하면 선배들이 다 받아주니까 촬영장이 놀이터에 간 느낌이었죠. 전 살찌우는 것만 노력하면 됐어요.(웃음)” 당시 그가 25㎏을 찌웠던 건 유명한 일화다.
연극배우를 하다 KBS 단막극으로 방송에 입문한 게 2011년. 이듬해 시청률 45%를 넘긴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순정남 ‘천재용’ 역으로 시청자에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이후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다채로운 변신을 보였지만 ‘인생작’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난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다른 친구들이 더 빠르지? 난 왜 길을 돌아돌아 가지? 그런 생각 안한 건 아니다. 답답함도 느끼지만 이게 내 성향이고 인생”이라고 말했다.
“작품 선택 기준이 들쭉날쭉 하다고들 하는데, 전 대본 보고 심장이 뛰면 해요. ‘최악의 하루’(2016)에서 운철 역할도 소속사는 반대했는데 대본이 너무 재미나고 멜로계의 희대 악마를 재미있게 해낼 자신이 있었어요. 시사회 때 여자들이 바로 욕하던데, 그게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배우하는 거니까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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