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아시아 여성은 강하다, 할리우드가 늦게 알아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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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13 22:00 조회1,0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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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생각보다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유색인종에 인색한 평가를 보여온 골든글로브도 이 영화를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콘스탄스 우)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렸다. 시상식 사회는 한국계 캐나다 배우 샌드라 오가 맡는다. 12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난 제작자 존 페노티 아이반호 픽처스 대표는 “후보에 오를 지 상상도 못 했다”며 “이미 수상한 것만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쏙 들어 3편 모두 판권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콴은 소설을 출판하기 전부터 초고를 여러 영화 제작사에 보냈어요. 대형 영화사들은 전부 퇴짜를 놨지만 저는 소문을 듣고 얼른 달려갔죠. 초고를 각색해 완성본을 존 추에게 보여줬는데 그도 이미 이 작품을 알고 있더라고요. 여동생이 읽어보라고 했대요. 오빠가 감독을 맡으면 좋을 것 같다며.”
출간된 소설은 그 사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워너브러더스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하지만 캐스팅이 복병이었다. 아시아계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워낙 제한적이다 보니 남자주인공을 할 만한 배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TV 진행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지만 연기 경험은 일천한 말레이시아계 영국인 헨리 골딩을 남자주인공으로 낙점하면서 한숨 돌렸다. 극 중 싱가포르 백만장자의 아들로 나오는 골딩은 섹시하면서도 젠틀한 매력을, 그의 연인이자 뉴욕대 최연소 교수로 나오는 콘스탄스 우는 지적이면서도 강인한 매력을 선보인다.
페노티는 “실제로 아시아 여성이 강인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을 뿐인데 관객들이 그동안 주류 영화에서 보지 못한 다차원적인 아시안 캐릭터에 신선함을 느꼈다는 해석이다. “아시안을 비롯한 다양성 영화에 목말라 하는 관객들은 항상 있었어요.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대기업들의 섣부른 판단에 저평가됐을 뿐이죠. 25년 동안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영화가 제작되지 않았다는 건 제작자들이 그만큼 게으르고 용기가 부족했다고 봐요.”
그는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변곡점이 됐다고 고백했다. “당장 작은 영화는 영화 배급이 힘들어지고 DVD 시장까지 줄어드는 추세니 중소 배급사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라고요. 반면 아시아 시장은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걸 보면서 저기로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2년간 한국·일본·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에너지가 많이 채워졌어요.”
이후 아이반호 픽처스의 방점은 ‘로컬 랭귀지 필름’에 찍혔다.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등 인구는 많지만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는 재능있는 감독을 발굴해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인도 등 자국 영화시장이 충분히 발전한 국가에서는 직접 제작에 뛰어드는 식이다. 지난 8월에는 아랍 신화에 나오는 식인귀를 모티브로 한 인도 드라마 ‘구울’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구울’은 당초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2시간짜리로 만들었으나 시사회 당시 넷플릭스의 제안에 따라 3부작으로 늘어났다. 그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도 넷플릭스에서 먼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상징적인 영화인 만큼 전통적 채널에서 성공을 거두는 게 더 유의미했다”고 밝혔다. 정작 중국에서는 지난달 30일 개봉해 첫 주 수익이 120만 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10월 개봉했지만 15만 관객에 그쳤다. 그는 “개봉이 너무 늦어져 그런 것 같다”며 “대신 내년엔 한국과 협업 작품들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2016년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 공동투자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현재 CJ ENM과 합작한 ‘슈퍼팬’과 NEW와 공동제작하는 ‘히든 페이스’를 준비 중이다. ‘슈퍼팬’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열성팬 이성우씨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히든 페이스’는 콜롬비아 원작 스릴러를 리메이크한다. “세계 어딜 가나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은 있어요.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뿐이죠. 내년엔 한국에서 TV 쇼를 포함 3~4개 작품을 준비 중이니 더 좋은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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