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가야 역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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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22 19:17 조회2,0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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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조사는 1970년대부터 활발히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도 많은 발굴이 이루어졌지만, 발굴 보고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발굴이라기보다는 도굴에 가까웠다. 그나마 근래 발굴된 김해 대성동 유적 등은 문헌 자료가 얼마 남지 않은 가야사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금동관
대성동 고분 70호
1990년 김해 수로왕릉 옆 대성동에서 고분 136기(기 : 고분을 세는 단위)가 발견되었다. 이 고분들은 3세기부터 5세기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거다. 그동안 발견된 가야 고분과는 완전히 다른 대규모 고분이어서, 금관가야 왕들의 무덤이라고 보고 있다. 즉, 금관가야가 힘을 잃기 직전까지 금관가야의 왕들은 이 대성동 고분에 묻혔던 거다.
고분 안에서 총 1,899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가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유물 중에는 북방 민족이나 왜나라 등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도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서 가야가 다른 나라와 얼마나 활발한 교류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청동솥 : 대성동 고분에서 발견된 청동솥. 북방 민족이 사용하던 것이다
각종 토기들
바람개비 모양 청동 방패 꾸미개(파형 동기. 왼쪽)와 통 모양 꾸미개(통형 동기)
▶ 가야
굽다리접시 토기(고배)
철제 갑옷
파형 동기
▶ 일본
스에키 토기
철제 갑옷
파형동기
가야의 수준 높은 문화는 일본에 전해져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단단한 가야 토기는 일본의 스에키 토기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었다. 가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철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 철기 문화 발달에 기여하였다. 이 무렵 일본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철기는 가야 토기와 철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단순히 물품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활발한 문화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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