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고려 불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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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8-25 08:50 조회1,1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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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보살도’(보물, 호림박물관 소장)
섬세하게 표현된 무늬들도 중요한 미적 특징이다. 넝쿨무늬(당초문)를 비롯해 연꽃, 보상화, 모란, 국화 등 식물과 봉황, 거북등은 물론 구름, 파도 같은 자연물을 형상화한 무늬도 있다. 연화당초무늬(연꽃과 당초의 결합)처럼 무늬들의 융합도 눈에 띄는데, 원형의 당초무늬는 고려 불화에서만 나타나 중국, 일본 불화와의 차별점이다. 무늬들의 정교한 표현은 불화 속 주인공이 걸친 사라(비단으로 짠 직물)를 더욱 투명하고 신비롭게 느껴지게 만든다. 불화의 구도는 거의 정형화돼 안정적인데, 화면 속 주인공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화법, 완성도 등에서 고려 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불화는 재료 준비부터 완성까지 수행자적 예술행위의 결정체다. 선(禪) 수행에서 말하는 ‘쇠 나무에서 꽃을 피우고’(鐵樹開花·철수개화) ‘불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내는’(火中生蓮·화중생련) 수행력에 더해 예술가로서의 빼어난 자질까지 필요하다. 특징적인 채색효과를 내기 위해선 귀한 천연광물에서 안료를 채취해야 한다. 붉은색은 석회암 등에서 나오는 주사, 녹색은 공작석이라고도 불리는 석록, 군청색은 구리광산에서 얻어지는 석청에서 뽑아낸다. 흰색은 연단, 황색은 황토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들 안료가 비단에 잘 붙기 위해선 접착제가 필요하다. 단청 등에 사용되는 전통 천연접착제로 동물가죽 등에서 얻는 아교다. 곱게 간 안료 가루를 아교물에 개어 붓질하는 것이다.
불화의 독특한 채색효과를 위해선 기법도 중요한데, 배채법이다. 화면 뒷면에 안료를 칠해 앞으로 배어나도록 하고 앞면에서 보강하는 기법이다. 배채법은 색깔을 보다 선명하면서 은은하게 만들고, 변색이나 바탕에서 안료가 떨어지는 것을 예방한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도 이 배채법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른 채색화에도 활용된 배채법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요 기법이었으며, 극소수의 현대 화가들은 지금도 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 속 주인공은 여래(부처·불), 보살, 나한 등이다. 여래도는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약사불, 석가모니불 등이, 보살도는 관음보살(수월관음도), 지장보살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아미타불도도 아미타불이 홀로 있으면 아미타독존도지만 두 협시보살과 함께라면 아미타삼존도로 구분된다.
국내 고려 불화 중 유일한 국보가 바로 ‘아미타삼존도’(218호·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다.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협시하는 아미타불은 화면 아래 사람을 바라보며 빛을 비추는 모습인데 채색과 표현 기법 등에서 빼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고려 불화의 빼어난 수준을 드러내는 ‘아미타삼존도’(국보,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미타삼존도’(국보,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1426호인 ‘수월관음도’(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는 화사하면서도 품위 있는 색채와 세밀하고도 우아한 선의 인물표현 등 세련된 고려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호림박물관, 우학문화재단, 개인이 소장한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 지장시왕도 등 고려 불화도 ‘보물’로 지정돼 보존, 관리 중이다.
이들 불화의 상당수는 일본에 있던 것인데, 소장가들이 갖가지 어려움을 뚫고 국내로 들여온 사연은 감동적이다. 수장가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고려 불화가 그나마 일부라도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에 흩어져 있는 고려 불화는 일본에 가장 많은데 무려 120여점으로 파악된다.
‘수월관음도’(일본 센소지 소장)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대형도 있지만 세로 1m, 가로 50㎝ 내외의 소형도 많다. 크기로 볼 때 당시 이 불화들은 사찰보다는 왕족, 귀족 집안에 별도로 봉안돼 예배용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불화의 주인공이 다양한 것은 불화 조성의 후원자를 비롯한 민중들의 갖가지 바람 때문으로 해석된다.
불화에 남아 있는 발원문 등 기록을 보면, 여느 종교화처럼 불화도 왕실의 안녕, 부모의 무병장수, 자식의 출세, 가정의 화목과 평안함, 현세의 영화로운 부귀와 죽은 뒤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조성됐다. 실제 아미타불은 고통이 없는 이상세계인 극락정토를 주재하며,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인 불법을 형상화한 부처이고, 약사불은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다. 보살도도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며, 관세음(관음)보살은 중생의 온갖 괴로움을 구원해 왕생의 길로 인도하고,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리움 소장).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간곡한 기원과 헛헛한 마음을 종교에 기댄다. 고려 말 당시 왕족이든 귀족이든 하루를 팍팍하게 살아가던 민중이든 저마다의 그 간절하고 뜨거운 바람들이 불화 속에 녹아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작품으로서의 고려 불화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감동을 주는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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