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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높은 시험성적은 두뇌가 지식의 노예화가 되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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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2-21 13:46 조회3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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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높은 시험성적은 두뇌가 지식의 노예화가 되었다는 증거

   

◆ 예측 또는 예방하는 두뇌능력이 부족하면 사건 사고가 늘어난다는 것에 동의해요. 많은 지도자가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책임을 피해가는 능력은 있어 보이는데 이유가 뭘까요? 

   

- 교육의 결과죠. 지식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요. 

   

◆ 교육이 책임을 피해가는 능력을 키웠다는 뜻인가요? 

   

- 예. 맞아요. 

   

◆ 너무 억지 아닌가요? 물론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대부분 상위권 대학을 나왔다고 들었는데 학교에서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뜻은 아니죠? 

   

- 사실인데요. 대학에서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죠. 

   

◆ 설마요? 

   

- 학교 교육을 통해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히니까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익힌다는 것과 같다는 뜻이에요. 책임을 지라는 사회의 목소리도 곧 자신이 당면한 문제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통해 빠져 나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 듣고 보니까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요. 

   

- 그런가요?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을 배우잖아요. 그리고 그 방법 중에는 기술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포함해요. 그러니까 교육을 통해 기술적인 문제이든 사회적인 문제든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할 수 있는 두뇌능력을 키울 수 있죠. 

   

◆ 그래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빠져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군요. 

   

- 예. 한국 교육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어요. 한국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고 또 시험을 통해 사람을 줄 세우잖아요? 

   

◆ 그렇죠. 그런데 그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두뇌능력과 어떤 상관이 있나요? 

   

- 시험이 곧 주어지는 문제이고, 문제를 푼다는 것은 곧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우고 익힌다는 거죠. 

   

◆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예측하는 능력은 왜 어려운가요?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기는 해도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은 배울 수 없는 것인가요? 

   

- 핵심을 짚으셨네요. 맞아요. 학교 교육을 통해서는 문제 예측과 예방 능력을 배울 수 없어요. 

   

◆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죠? 

   

- 시험문제는 어디서 오나요? 

   

◆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학생은 아니죠? 

   

◆ 당연하죠. 

   

- 그러면 학생들이 문제를 출제하는 능력을 배울까요? 아니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울까요? 

   

◆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죠. 

   

- 예측과 예방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두뇌능력인데, 문제가 있어야 방법을 찾는 두뇌능력으로 예측이 가능할까요? 

   

◆ 어렵겠네요. 

   

- 바로 그것이 예측을 통한 예방과 문제 해결 능력이 다른 이유예요. 문제 해결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측과 예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어요.

   

◆ 그렇게 따지면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모두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난 것이지 예방하는 두뇌능력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뜻이네요? 

   

- 그렇죠. 높은 시험성적으로 갈 수 있는 상위권 대학은 말 그대로 주어진 문제를 잘 풀어내는 학생이 모이는 장소예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주인이 문제를 주면 잘 해결하는 종이나 머슴의 능력을 소유했다고 봐야죠. 

   

◆ 비유가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닌가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주어지는 일이나 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은 실제로 노예의 두뇌능력이지 지도자의 두뇌능력이 아니거든요. 지도자는 예측을 바탕으로 문제를 예방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편안해 지니까요. 

   

◆ 그러면 노예라고 할 때에는 주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경우 주인은 누구라고 봐야 하나요? 

   

- 우선은 지식이죠. 지식의 노예가 된 것이니까요. 

   

◆ 우선이라고 한다면 다음은요? 

   

- 지식을 가진 사람이요. 지식의 노예가 되었으니 지식을 가진 사람 앞에서 꼼짝 못하고 얼어버리는 거죠. 

   

◆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 앞에서 고개 숙이고 대학생들이 교수 앞에서 손 모으고 공손히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설명이네요.

   

- 그렇죠. 그런데 더 있어요. 이렇게 지식의 노예가 되면 지식으로 이룰 수 있는 재력, 권력과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의 노예가 된다는 점이요. 

   

◆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러면 예측하고 예방하는 두뇌능력은 어디서 배울 수 있나요? 

   

- 아인슈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똘똘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천재는 문제를 예방한다.’라고요. 

   

◆ 그러니까 예측하고 예방하는 두뇌능력은 천재의 두뇌능력이고, 천재적 두뇌능력은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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