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수업] 30.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 교육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교육칼럼

[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수업] 30.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5-24 16:55 조회3,641회 댓글0건

본문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026_2851.jpg
초조대장경 인쇄본(호림 박물관 소장) - 고려 전기에 처음 간행하였으나 몽골 침입 때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을 인쇄한 판본이다.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034_8494.jpg
장경판전 건물

 

  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 체계가 정비되면서 불교에 관련된 서적을 모두 모아 체계화 하는 대장경이 편찬되었다. 경 ․ 율 ․ 논의 삼장(경은 부처의 말씀이고, 율은 가르침, 논은 고승들의 연구서)으로 구성된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교리 체계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적 의의가 높은 유산이다.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70여 년의 오랜 기간(1011~1087)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이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1232)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가 남아 고려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얼마 후, 의천은 고려는 물론이고 송과 요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교장을 편찬하였다. 이를 위하여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0여 년에 걸쳐 신라인의 저술을 포함한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다.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에는 대장경을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강화도에서 조판 사업을 시작한 지 16년 만(1236~1251)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글자 수는 5,200만 자이며, 총동원 인력은 150만 명이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양면에 14자 23행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잘못된 글자나 빠진 글자가 거의 없는 제작의 정밀성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꼽힌다. 고려대장경은 질문과 대답이다. 팔만사천가지 질문과 팔만사천가지 대답,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완전한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류의 마음을 흔들고 고뇌하게 했던 간절한 질문들이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임진왜란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장경판전 주위에서 7건의 화재가 있었는데도 무사했다. 또 이 건물에는 거미줄이 없으며, 지붕에는 새도 앉지 않는다고 하니 참 이상한 일이다.

  국보 제52호. 정면 15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건물이다. 고려대장경의 판전으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같은 양식과 규모의 두 건물이 남북으로 나란히 있어 건물 자체도 특수하다.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 북쪽 건물은 법보전이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인사 장경판전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는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불리고, 이 건물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배치하였다.

  해인사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절이지만 처음부터 고려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팔만대장경은 조선조 초기 이곳으로 옮겨졌다. 해인사에 옮겨진 뒤 6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손실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장경판전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 있는 것일까?

  해인사 장경판전은 길이 60.44m, 폭 8.73m인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앞쪽인 남쪽에 세워진 건물을 수다라장, 뒤쪽인 북쪽 건물을 법보전이라고 합니다. 나무와 하얀 회벽으로 이루어져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장경판전에는 과학적인 비밀이 많이 숨어 있다.  장경판전을 둘러보다 보면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나무 창살이 달린 여러 개의 창이다. 장경판전은 독특하게도 앞쪽과 뒤쪽의 창의 크기가 다르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남쪽에 있는 창은 아래쪽이 크고 위쪽이 작다. 반대편인 북쪽에는 아래쪽에 작은 창을, 위쪽에 커다란 창을 설치했다. 단순해 보이는 붙박이 창이지만 공기를 순환시키는 과학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다. 바람이 남쪽의 큰 창으로 들어와 경판 사이를 돌아 위로 올라가 북쪽의 큰 창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이것을 일명 굴뚝 효과라고 부른다.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온 공기가 경판과 실내를 돌아서 빠져나가도록 설계한 창 덕분에 팔만대장경은 상하지 않고 원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장경판전 바닥 깊숙한 곳에도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장경판전을 지으면서 바닥을 깊게 파고 숯과 소금, 횟가루를 모래와 찰흙에 섞어서 다져 놓았다. 숯, 소금, 횟가루, 찰흙, 모래가 섞인 바닥은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할 때는 흙 속에 있는 수분을 내보내 팔만대장경과 건물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도록 해 주었다. 또한 장경판전의 창살과 회벽은 햇살이 실내로 적절한 양만큼 들어가도록 해 주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완벽한 경전인 팔만대장경과 간결한 아름다움과 과학적인 설계를 자랑하는 장경판전은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가치 있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065_5139.jpg
해인사 대장경판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073_9974.jpg
해인사 장경판전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082_7496.jpg
해인사 장경판전 살창 - 공기가 잘 순환되도록 만든 장경판전 창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094_4319.jpg
아래쪽이 작고 위쪽이 큰 북쪽 창

 

f34a8f137ecd362cad1d2419f6d272f5_1495670105_613.jpg 

아래쪽이 크고 위쪽이 작은 남쪽 창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교육칼럼 목록

게시물 검색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