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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조선 전기의 문학과 예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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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0-11 18:37 조회1,7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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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겨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어떻다 능연각 위에 뉘 얼굴을 그릴꼬.

능연각 중국 후한 때 공신 11명에 상이 걸림

                                          <김종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고

저렇게 사철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윤선도>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누가 굽다 하던고

굽을 절개이면 눈 속에서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원천석>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임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

 

김종서는 누가 충신인지 가려보자며 고급 관료로서 기개를 드러내고원천석은 대나무의 절개를 찬양하며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다윤선도는 양반 출신답게 자연을 벗 삼아 은둔 생활을 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반면이름난 기생인 황진이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꾸밈없이 노래하고 있다.

 

◉ 악장 가사

 

(1) 해동 6용이 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시니

불휘 기픈 남간 매 아니 뮐 곶됴코 여름하

 

해동 여섯용이 날으시어 일마다 모두 하늘이 도우시니 옛 성인과 꼭 같습니다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립니다.

 

(20) 사해를 넌글 주리여 매  업거늘 얼우시고 또 노기시니

삼한을  주리여 바래  업거늘 녀토시고 또 기피시니

 

천하를 어찌 다른 사람에게 주겠습니까강에 배가 없으니 얼리시고 녹였습니다삼한을 어찌 다른 사람에게 주겠습니까바다에 배가 없으니 얕게 하시고 깊게 하셨습니다. (후한 광무제가 호타하에서 곤경을 빠져나간 것처럼 익조도 하늘의 도움으로 곤경을 벗어났다.)

 

(110) 4조가 평안히 몯 겨샤 현 고 올마시뇨 명 간 지븨 사시리잇고

구중에 드르샤 태평을 누리실제 이 뜨들 닛디 마쇼셔

 

사조가 편안히 계시지 못하고 몇 번이나 옮기셨습니까구중궁궐에 들어가서 태평을 누릴 때도 이 뜻을 잊지 마소서.

                                                                                                                                                                 <용비어천가>

 

금강대 맨 윗층에 선학이 새끼 치니 춘충 옥적성에 첫 잠을 깨었던지 호의 현상이 반공에 솟아 뜨니 서호 옛 주인을 반겨서 넘노는 듯 소향로 대향오 눈 아래 굽어보고 정양사 진헐대 다시 올라앉은 머리 여산 진면목이 여기서 다 보인다 아아 조화옹이 요란코 요란하다 날거든 뛰지 말거나 섰거든 솟지 말거나 부용을 꽂았는 듯 백옥을 묶었는 듯 동영을 박차는 듯 북극을 괴었는 듯 높을시고 망고대 외롭구나 혈망봉이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아뢰려고 천마겁 지나도록 굽힐 줄 모르는가

                                                                                                                                                                    <관동별곡>

 

용비어천가는 모두 125장으로 되어 있다. 1장에서 8장은 목조에서 환조까지, 9장에서 89장은 주로 태조 이성계, 90장에서 109장까지는 태종에 대한 이야기이다. 110장에서 마지막까지는 뒤 임금들이 태만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관동별곡은 송강 정철(1536~1593)이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여정산수풍경고사풍속 등을 노래한 기행 가사이다.

 

◉ 민담 – 돼지가 삼킨 폭포

 

한 벼슬아치가 일찍이 진양(진주고을 수령이 되었다이 자가 얼마나 지독한지 산골 과일과 채소까지 남겨놓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절에 있는 중들도 빠져 나올 수 없었다하루는 어떤 중이 수령을 찾아갔다수령이 말하였다. “네가 있는 절 폭포가 좋더라.” 폭포가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중은 이것도 세금으로 거두려고 하는 가 두려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제 절에 있는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

<태평 한화 골계전>

 

서거정이 민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채록한 [태평 한화 골계전]에 수록 된 <돼지가 삼킨 폭포>라는 설화이다주로 부패 무능한 관리 이야기호색담 등 짧고 익살맞은 토막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 설화집은 패관문학(패관<임금이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를 살피기 위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기록시키던 벼슬아치>이 민간에서 수집한 이야기에 창의성과 윤색을 더한 산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

건축물

특 징

숭례문

1396(태조 5)에 만든 도성 정문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2층 건물을 올렸다기단 가운데 무지개 문틀에 철판을 씌운 나무문을 달았다기단 위에 벽돌로 여장을 둘렀다.

장경판고

해인사 팔만 대장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다남쪽은 수다라장북쪽은 법보전이라 한다장경을 보관하는 건물답게 단순하고 간결하게 지었다홍치원년(1488)이라고 새겨진 기와로 지은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

궁궐 후원은 쉼터이자 몸과 마음을 닦는 곳이다창덕궁 후원은 북악산 줄기인 매봉을 등지고 자연 지세에 따라 누정과 연못을 배치하였다나무를 따로 심거나 꽃밭을 만들지 않았고 가지치기도 하지 않았다건물 옆에는 단을 만들어 괴석을 두었다.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모시고 성리 철학을 연구하며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이었다일반적인 서원과 같이 도산서원도 마을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다건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배치하였고겸손한 선비 정신에 따라 복잡한 포나 장식을 피하였다.

 

◉ 건물 규모 – 경국대전 호전 

 

방 개수

()

마루

()

방 길이

()

방 너비()

앞 뒤 쪽 마루 포함

기둥 높이

()

대지면적

()

대군

60

10

11

18

 

30

공주

50

8

10

17

 

30

종친,

2품이상 관리

40

6

9

16

 

15

3품이하 관리

30

5

9

16

 

10

서인

10

3

8

7.5

10.5

2

 

 옛날 한옥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칸이라고 했다.

 : 30.3cm

 사방 10(가로 3.03m, 세로 3.03m)의 정사각형 면적

 

조선 시대 주택 정책은 앞 시대와 같이 신분에 따른 차별과 사치 방지를 근본으로 하였다건물 규모에 대한 제한은 때때로 공주를 비롯한 권력층이 무시하기도 하였다하지만 조선 시대 말기까지 대체로 충실히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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