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기대가 너무 컸나, 제작비 540억 드라마의 아쉬운 파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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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8 01:00 조회1,7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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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기대했는데 돌아온 건 기시감
‘대한민국 최초의 고대 인류사 판타지’라 불리는 ‘아스달 연대기’. 첫 방송 후 사람들은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부터 영화 ‘아포칼립토’ ‘아바타’ 등과 비슷하다 했다. 꽤 닮아 있긴 했지만 평가하기에는 이른 듯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컸는지 아쉬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을 향한 암투, 욕망을 향한 음모, 부와 권력의 세습, 출생의 비밀, 금지된 사랑, 심지어 종교의 타락과 노동 착취까지 그 시대의 삶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다는 강자의 논리까지 익숙한 것들은 ‘다름’이란 기대를 시작부터 흔들어 놓았다.
옷이나 장식품, 화장 방식 등은 시대를 광범위하게 넘나들며 시간적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아스달의 저잣거리는 중세의 어느 도시를 보는 듯했고, 대흑벽은 중국의 적벽을 연상시켰다. 지울 수 없는 기시감이 순간순간 그렇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 파트1이 끝났다. 정체가 모두 드러난 예언의 아이들은 하늘을 뒤집고 땅을 일으키겠다 한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욕망이 부딪히며 만들어낼 피의 이야기를 즐기기에는 의외의 인내심이 필요해 보인다.
공희정(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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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는 면죄부가 아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도입부의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구축된 상고시대의 신화는 너무 낯설고, 그 결과 RPG 게임에 익숙한 시청자가 아니라면 극적 상황에 몰입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언어와 생활 방식 모두 낯설어야 마땅한 극적 상황들은 기시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새롭고 낯선, 그래서 신비로워야 할 극적 상황들이 신기할 정도로 익숙하기까지 하다. 국가와 민족의 차원을 넘어 인류 문명의 기원으로 신화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 마이너스로 작용한 꼴이다. 초(超) 혹은 탈(脫) 국적의 방송 플랫폼 환경 변화를 염두에 둔 듯한 스토리텔링 전략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신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면, 신화의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원시 부족의 신화 시대에서 문명국가의 역사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다. ‘사람’으로 불리는 부족들의 연맹체 부대 수장 타곤은 와한족을 침략하여 전쟁 노예로 만들면서 아스달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사람과 뇌안탈의 혼혈로 태어나 와한족 손에 성장한 이방인 은섬은 폭력적인 문명 세력과 맞서면서 와한족의 영웅으로 성장한다.
타곤과 은섬의 대결은 문명의 야만성과 권력의 폭력성을 역설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이 기존의 정형화된 영웅 이미지를 답습하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그래서이다.
지금까지의 방송을 보면, ‘아스달 연대기’의 새로운 시도는 면죄부가 되기 어려울 것 같다. 작가들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극적 상상력을 입증한 바 있고, 감독 또한 그것을 영상으로 표현할 능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고시대로 상상의 지평을 넓혀 한국 드라마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려 한 의도는 알겠으나,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로 시청자가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세계의 생경함에서 비롯한 신비로움보다 ‘대흑벽’ 같은 진입장벽이 가로막는 당혹스러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라고 해서 만듦새의 허술함을 그냥 넘기기 힘든 것도 그래서이다. 방영 전부터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아스달 연대기’의 향방이 여전히 궁금한 까닭이다.
윤석진(충남대 국문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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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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