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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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종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9-25 11:57 조회2,3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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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하 (사)한국문협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어느 겨울날 부모님께서는 땅끝 마을인 해남에서 서울까지 2주 동안 국토 종단 캠프에 참여시켰다.
나는 캠프에 입소하기 위해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전세 버스를 타고 해남에 도착하였다.
그때 캠프의 총책임자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라서 그런지 상냥하게 대하며 우리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것은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군대식 통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서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캠프에 보낸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겨울 캠프라 전체 참가자 중에 여성 대원은 단 1명이었다.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보니 어린 나이였는데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2주 동안 입을 옷과 속옷가지들을 한 가방에 다 넣고 다니는 것이 어려워서 1주일 분량의 짐만 메고 나머지 1주일 분량은 캠프 본부 트럭에 넣도록 하였다.
캠프가 진행될 때는 마치 군대를 연상시키는 듯 1개 소대를 마흔명씩 편성하고 각 소대마다 대학생 소대장을 두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구성된 소대의 분대장은 나이가 가장 많은 고등학생 중에서 선출하였다.
그 다음날 조금 커 보이는 침낭이 달린 가방을 메고 앞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졸졸 쫓아 다니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먹었다.
우리는 행군이 끝나고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게 되면 저녁을 먹을 때까지 축구 시합을 하곤 했다.
첫 시합 후 소대장은 나에게 ‘차범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다른 한 명에게는 ‘슛돌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때는 ‘차범근’ 보다는 ‘슛돌이’라는 별명이 더 좋아 보였다.
딱 1주가 지난 날 전라북도 정읍에서 새로운 가방을 받았다. 새로운 가방을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 어머니의 편지가 있었다.
국토종단은 해남에서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2주간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기상이 악화되어 계획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결국 논산까지밖에 걸어가지 못했다.
논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린 후 최종 도착지점인 여의도까지 걸어갔더니 그곳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나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7년이라는 인생의 행군 가운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유학과 이민의 나라에 살다 보니 이곳에서 공부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나는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동행자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이나 행복하게 해준 사람들도 모두가 훌륭한 동행자들이었다.
나는 삼십 년이 넘게 혼자 걷기를 하다가 좋은 짝꿍을 만나 행복을 가꾸고 있다. 궂은일이나 좋은일이나 함께 할 것을 생각하니 설렘이 가득해진다.
지금까지는 어떤 발자국을 남겨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모두에게 좋은 동행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리라 다짐해 본다.
앞으로도 좋은 동행이 되기 위해 짝꿍과 함께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꿈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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