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로키기행수필2020-3 로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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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01 14:48 조회1,9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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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mloops Photograph by KTW
로키기행수필 2020
3 로키로 가는 길
심현섭
휴게소에 왜 화장실만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된다. 캐나다에서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 것은 1885년이다. 당시 철도를 건설하면 어떤 경제적 산업적 이익이 있는가 검토한 후에 만든 것이 아니다.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동부와 서부가 전연 교통할 수 없었다. 내륙 5000키로를 육로로 횡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캐나다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횡단철도가 필수적이었다. 중앙에 있는 평원지대를 똑바로 가로지르면서 서부를 향해 철로를 건설하였다. 이때 서부와 동부 사이에는 원주민의 촌락이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무런 도시도 없는 상태였다. 철도가 건설된 이후에 철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철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지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키의 밴프나 자스퍼는 물론이고 그 밖에 대부분의 도시들은 모두 철도가 생기면서 생겨난 도시들이다. 그 뒤에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대체로 철도를 따라가며 만들어졌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도시가 있는 상태에서 고속도로가 생겼고, 캐나다는 철도나 고속도로가 생긴 이후에 도시가 생겨났다는 차이이다. 그러므로 캐나다에서는 도시와 철도 및 고속도로가 밀접해 있다. 도로를 벗어나서 한참 달려야 도시가 나오는 형태가 아니다. 따라서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도로 옆 도시에 다 있다. 따로 휴게소를 만들 이유가 없고, 만든다면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게 자명하다.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은 여행자에게는 화장실만 제공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식당, 숙소, 주유소가 필요한 여행자는 다음 도시에서 해결하면 된다.
캐나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한국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긴장도가 덜 하고 다른 운전자와 서로 경쟁하지 않아서 편안하다. 호프와 메릿 사이에는 동네가 없고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오르락 내리락 구릉을 따라 달리다 보면 장대 같던 수풀이 서서히 키 작은 나무들로 바뀌기 시작한다. 드믄드믄 회색빛 세이지브라쉬(Sagebrush)가 보이기 시작한다. 북미 서부가 원산인 이 풀같이 생긴 나무는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하는데 잎은 솔잎처럼 가늘고 만지면 끈적거린다. 이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건조한 사막지대라는 것을 뜻한다. 선인장과 함께 사막을 상징하는 식물인데 캐나다에서는 선인장은 없다. 멀리 왼쪽 계곡 너머 조그만 도시가 보이기 시작하면 칸추리 송의 고장 메릿(Merrit)이다. 인구 약 8천명의 아담한 도시로 목재공장이 여럿 들어서 있다. 도시 입구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카나간 밸리 켈로나로 가게 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사막지대는 미국 나파벨리를 통과해서 멀리 네바다와 아리조나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메릿 지역은 완전 사막지대는 아니고 사막지대로 이행해 가는 준사막지대로 풍부한 일조량을 이용하여 지하수를 끌어올려 건초생산을 대단위로 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에 원을 그리면서 풀밭에 물을 뿌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목축업이 발달한 캐나다에서는 자연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건초가 많이 필요하고 농사짓기에도 편해서 도로변에서는 건초밭을 자주 만나게 된다.
메릿에서 잠시 밑으로 내려갔던 코퀴할라 고속도로는 다시 능선을 따라 오르막 길을 오르게 된다. 메릿과 캠룹스 사이에 써리 서밋(Surrey Summit 1444m)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다시 내리막 길을 달리게 된다. 도로 양편으로는 철제 울타리가 끝없이 이어져 가고 있다. 야생동물들이 도로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낮에는 시야가 멀리 확보되기 때문에 덜 위험한데 주로 밤에 움직이는 야생동물들은 100키로 이상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과 충돌하기 쉽다. 다 자란 엘크 사슴과 충돌할 경우 차는 거의 반파되고 운전자는 중상을 입게 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만 도로 위에서 희생되는 야생동물들이 일 년에 1만 마리 이상 된다고 한다.
써리 서밋에서 계속 내려가다 보면 수풀은 사라지고 민둥산이 나타난다. 민둥산도 나름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여기 와서 처음 느끼게 된다. 나무는 없고 세이지 브라쉬로만 덮여 있는 산들이 나온다. 캠룹스라는 도시와 만난다. 인구 약 10만의 제법 큰 도시이다. 산비탈을 타고 강변까지 넓게 퍼져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캠룹스는 이곳에 사는 수스압(Shuswap) 원주민들의 말로 ‘물이 만나는 곳(where the rivers meet)‘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양수리, 두물머리와 동의어인 셈이다. 실제로 노스 탐슨 리버(North Thompson River)와 사우스 탐슨 리버(South Thompson River)가 여기서 합쳐서 프레이저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탐슨 유니버시티가 있어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도시 어귀에 있는 패트로 캐나다(Petro Canada) 주유소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다운타운에 있는 보스톤 피자에서 점심으로 대형 피자를 주문해서 먹었다. 로키로 가는 길에서는 ’주유소를 만나면 개스를 넣고, 화장실을 만나면 무조건 찾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거리를 달리기 때문에 지금은 괜찮은데 하는 것이 나중에 급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나비를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데 3시간 반이 걸렸다.
캠룹스 다운타운에서 나오자마자 오른 쪽으로 자스퍼로 가는 길과 만나게 된다. 직진하면 새먼암으로 해서 레벨스톡으로 가는 길이다. 노스 탐슨리버를 따라서 얼마 달리지 않아서 양쪽 산등성이가 모두 시커멓게 끄슬렸다. 나무들은 그대로 서 있는데 나뭇가지는 없고 줄기는 까맣게 탄 모습이다. 몇 년 전에 대형 산불이 난 흔적이다. 까만 막대기들을 촘촘하게 박아서 만들어 놓은 작품처럼 보인다. ’이것도 보기 괜찮은데‘하고 누군가 한마디 한다. 푸른 숲만 보다가 까만 숲을 보니 차라리 또 다른 풍경이다. 땅 위에서는 자연의 재생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증명하듯이 풀이 무성하고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전에 한국 동요에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라고 했다. 캐나다에서 기차 가는 것을 보아야 기차가 정말 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조금 시야가 트인 곳에서 기차 가는 것을 보았다. 보통 화물기차인데 화물칸이 100개가 넘는다. 기관차는 앞뒤로 하나씩 있고 중간에도 하나 있다. 내가 본 것 중에는 기관차가 앞뒤로 두 개씩 가운데 하나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 다섯 개다. 화물칸이 몇 개인지는 도저히 셀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모른다. 워낙 장거리를 가다 보니 될수록 많은 칸을 달고 가는 모양이다. 주로 석유, 밀, 석탄, 목재를 싣고 간다. 무엇을 실었는지는 화물칸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석유는 둥그런 저유탱크이고, 밀은 밑으로 쏟아낼 수 있는 장치가 보이고 석탄은 온통 시커머니 금방 알아본다. 서쪽 해안으로 가는 화물열차는 짐을 실었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두 빈 열차이다. 캐나다 중부 평원지대는 세계적인 밀 생산지대이다. 석유와 석탄은 주로 알버타주에서 생산된 것이고, 석탄은 밴쿠버 항에서 수출되는 품목 중에 가장 많은 량을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2위이다. 화물열차가 길고 긴 것은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의 국력을 은근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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