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문학가 산책] 홀연히 눈, 오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유병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21 15:21 조회1,919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유병수 / 시인. 소설가
눈이 새 한 마리의 숨결 위로 내리고 있다
겨울의 숨가쁜 빙벽을 쌓으며
황구의 젖은 기침소리 몇 개가
나뭇가지 위로 떠나고
마른 가지를 쳐내며
홀연히 넘는 눈발 더미 위로 무너지고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른 정적 소리
한밤중 꺽이는 눈위로 내리고
잔설을 깨며 달리는 밤 열차의 무거운 발걸음
피곤한 겨울의 걸음걸이를 재촉하고 있다
소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잔 모래 앓는 소리
빈 나룻배 귓전에 귀를 세우고
어둠이 갈라 놓은 어둠 속으로
할머니 기침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있다
한 해의 긴 겨울을 낳으며
강물은 숙연해지기 시작한다
바다같은 마음으로
겨울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던
사투리 몇 말씀이
독감을 치룬 후
서걱서걱한 말씀이 된다
우울한 그림자를 태우던
농부의 성난 눈처럼
핏발이 서는 새 눈
나는 새 눈의 뿌리가 된다
뿌리처럼 깊은 잠을 이루고
뿌리 속에서
문득 내가 바다가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