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 ‘내추럴 와인’이 뭐길래, 이 야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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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2-26 23:00 조회2,2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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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케이프 호텔 26층 '라망 시크레' 와인 바는 내추럴 와인만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이곳의 조현철 소믈리에는 ‘2018 아시아 베스트 소믈리에 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수상한(3위) 경력의 소유자다. 그에게 내추럴 와인을 짧게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약간의 산화방지제(아황산염) 외에는 인위적인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포도·효모 찌꺼기를 걸러주는 필터링 공정 또한 거치지 않은, 말하자면 인위적인 첨가물과 액션을 하지 않고 만든 와인”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내추럴 와인을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왜냐하면 포도 경작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흔히 시중에서 ‘내추럴 와인이 뭔가’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이 ‘유기농 와인’이라는 대답이다. 실제로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organic)) 또는 바이오디나믹(biodynamic) 방법으로 경작한 포도를 사용한다.
이중 생소한 바이오디나믹은 오스트리아의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1920년대 개발한 유기농 경작법의 한 형태로 달의 움직임, 즉 음력에 따라 재배 스케줄을 조정하고 비료 등 경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계·화학 산업이 발달하기 전인 재래식으로 포도를 경작하는 방법이다. 조 소믈리에는 “예를 들어 가축의 분뇨 또는 인분을 짚과 섞어 퇴비를 만들고, 이를 음력 정해진 날짜에 포도밭에 뿌리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브루고뉴 지역의 와인 생산자이자 와인 과학자인 쥘 쇼베는 여러 실험을 거쳐 80년대에 “토양이 식물을 지배하며, 토양의 건강을 해치는 현재 농업기술에서 벗어나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지속가능한 친환경·재래식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되 병입 시 소량의 항산화제 외에는 인위적인 첨가물을 넣지 않고, 필터링 등의 인위적인 행동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든 와인’이 내추럴 와인의 정의다.
뉴욕에서 공부하던 3년 전부터 내추럴 와인에 빠져 남편과 함께 현재는 내추럴 와인 수입사를 운영하는 허재인씨 역시 “필터링을 안 해서 포도 찌꺼기 등이 남아 있는 상태의 병에서는 2차, 3차 발효가 가능하기 때문에 처음엔 역한 냄새(환원취)가 나는데 그게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물론 종류에 따라 이 환원취의 세기는 천차만별이라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럼 이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내추럴 와인이 유행인 이유는 뭘까. 희소성과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인위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 양조할 수 있는 양은 한 와이너리에서 1년에 많아야 1만 병 정도. 이걸 전 세계에 나눠서 배분하면 국내에 수입되는 양은 몇 백병 또는 몇 십병에 불과하다. 그 희소성이 ‘지금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와인’이라는 점을 자극한다.
다행히 이 내추럴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은 아시안 음식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허재인씨는 “덴마크의 유명 레스토랑 ‘노마’에서는 일찍부터 내추럴 와인을 사용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를 재료로 한 음식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소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모던 한식당 ‘묘미’의 장진모 셰프 역시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젖산이 우리의 동치미·김치 발효향과 비슷해 한식과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모던 한식을 선보이는 밍글스, 정식당 그리고 오가닉 푸드를 컨셉트로 하는 제로 콤플렉스 등의 레스토랑에서 내추럴 와인을 선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장소 협찬=레스케이프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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