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 서울 남산 아래 첫 동네, 시간도 비켜간 골목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11 23:00 조회1,62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하지만 이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자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의 낡은 시멘트 담벼락, 붉은 벽돌담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지막한 단독주택들 안쪽에는 어김없이 한두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봄이 되면 꽃망울이 터져 길을 걷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대문도 창문도 모양이 제각각이다.
삼광초등학교 앞에선 문방구 두 곳이 나란히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쪽 가게는 간판의 글자마저 떨어져 ‘광문구’라고만 쓰여 있지만, 좌판을 정리하는 주인 할머니도 책가방을 맨 꼬마 손님들도 개의치 않는다. 꼬마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 위로 그 옛날 추억의 사진 한 장이 슬쩍 얹혀 진다. 나도 저랬었지. 학교 앞 골목 모퉁이를 돌면 옛 친구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햇빛 따스한 봄날, 시간의 문을 통과하듯 여유 있게 산책할 만한 후암동 골목 풍경과 최근 오픈한 작은 숍들을 소개한다.
‘커보드(cupboard·찬장)’는 삼광초등학교 주변 대로에 문을 연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박리아 사장은 “엄마의 찬장처럼 음식과 관련된 따뜻한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상호명을 소개했다. 이곳의 천정은 삼각형이다. 1940년대 일본인 철도청 직원들의 숙소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다. 공사 중 발견한 오래된 서까래는 창가와 카운터에 선반으로 달았다. 박 사장은 “밖은 KTX 속도로 달려가는데 후암동만큼은 자신만의 속도로 느리게 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며 이곳에 레스토랑을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코도모’는 레트로 컨셉트의 소품 숍이다. 1년 전 삼광초등학교 주변에 ‘소백상회’라는 유럽 빈티지 소품가게를 열었던 박초롱씨가 3개월 전 일본의 오래된 캐릭터 소품들만 따로 파는 작은 숍을 또 열었다. 4평 규모의 실내에는 사토짱, 페코짱, 스누피, 큐피 등 어린 시절 일본 만화에서 보았던 캐릭터 인형과 소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실 코도모는 온라인 판매가 훨씬 활발하다. 그래서 일·월요일은 휴무고, 영업도 오후 2시~6시까지만 짧게 하지만 굳이 후암동에 매장을 낸 건 오래된 물건과 오래된 골목 풍경이 어울려서다.
박씨는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던 고객들이 숍을 찾을 때가 있다”며 “더 많은 물건이 나란히 진열된 걸 보고 싶어서인데 그렇게 찾아온 고객들이 코도모의 컨셉과 잘 어울리는 동네라고 느끼길 원해 후암동에 숍을 냈다”고 말했다.
‘모놀로그하우스’는 여행&라이프스타일 카페다. 복층 구조인데 2층에선 여행 서적과 비즈니스 여행에 필요한 수첩·가방·소품 등을 판다. 1층 카페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상호명(monologue·독백)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수제 원목가구와 독특한 소품들로 꾸몄다. 김민구 대표는 “지난해 일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 혼자 여행을 많이 하면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며 “이곳을 찾는 분들 역시 편안한 분위기에서 독백하듯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커피와 티 외에 간단한 브런치가 될 만한 가츠산도, 타마고 산도 등을 먹을 수 있다. 말차라떼 6000원, 크루아상 3800원, 마들렌 2000원, 플랫화이트 5500. 그 외 케이크류도 있다.
모놀로그 하우스 주변에는 스토리지북앤필름 출판사가 운영하는 ‘초판서점’과 일본 홍차협회 티 인스트럭터가 운영하는 티 하우스 ‘로제티’도 있다. 이곳에선 세계 각국의 티와 더불어 수제 케이크와 스콘 등의 디저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