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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책 속으로] 요리는 정치 … 서태후가 샥스핀 즐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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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1-18 17:40 조회5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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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휘종(徽宗·재위 1100~1125) 시기 궁중생활과 미식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회도(文會圖)’의 일부. 왕과 귀족들의 연회 장면이다. [사진 교양인]

혁명의 맛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
352쪽, 1만6000원


잘 차려진 중국 요리를 코스로 먹는 기분이랄까, 책을 읽는 느낌이 그렇다. 초반엔 중국 요리와 중화 요리의 구분 등 식욕을 돋우는 전채(前菜)와 같은 가벼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책장이 넘어감에 따라 이내 시대와 요리의 상관 관계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번득이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 요리는 정치적인 파고와 운명을 같이 해왔다. 한족(漢族)의 맛이란 결국 역사상 대륙에서 명멸한 많은 이민족의 맛에 의해 해체됐다가 종합되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탄생한 것이다. ‘적대’와 ‘융합’이 중국 요리를 지탱하는 두 가지 힘이 됐다고 본다. 그 대표적인 요리가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만한전석은 지방에 부임한 만주족 관리를 접대하려고 한족 토박이가 고안한 연회 방식이다. 만주족 관리와 한족 토박이가 각기 고용한 요리사 간에 솜씨 경쟁이 벌어지며 요리의 질이 높아지고 가짓수도 늘어났다. 남쪽 요리(南菜) 54종, 북쪽 요리(北菜) 54종 등 크고 작은 요리가 108종, 거기에 만주족의 가벼운 간식 거리(點心) 44종을 내놓는 게 일반적이었다.

주목할 건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를 똑같은 숫자로 내놓아 균형을 취했다는 점이다. 만한전석이 제국 통치의 이념을 담은 정치적 요리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이유다. 청 말의 서태후(西太后)가 선대 황제들이 꺼렸던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즐겨 먹은 원인 역시 관습에 반기를 들며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정치적 요소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정치적 분위기가 일신한 중화인민공화국의 맛은 또 다르다. 1949년 10월 1일 중국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국연(國宴)에 등장한 요리는 베이징 궁중 요리가 아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직접 결정에 의해 장쑤(江蘇) 요리가 선택됐다. 공식적인 이유로는 장쑤 요리엔 북에서 남까지 중국 전체의 맛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거론됐다.

재미있는 건 이날 요리의 조리법에 후난(湖南) 스타일이 가미됐다는 것이다. 저우언라이가 장쑤에서 태어났고 마오쩌둥(毛澤東)이 후난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을 알면 신중국의 요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요리는 현재 갈수록 매워지고 있고 고급 요리는 날로 단 맛을 더해가고 있다고 한다. 후난의 매운맛과 장쑤의 단맛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오는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맛 본 ‘혁명의 맛’에 있다. 혁명은 문화혁명을 말한다. 저자는 미술품 감정사로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문화혁명 시기 베이징에 체류하며 베이징 서민의 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마을 자치회 식당인 거민(居民)위원회 식당에서의 맛 체험이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선전한 ‘평등의 맛’은 어떤 것이었을까. 몇 번이고 다시 데웠을 배추와 당면 볶음 몇 가락, 뜨거운 물이라고 해야 맞을 멀건 국, 그리고 찐빵 하나가 전부인 식단. 혀를 도려내는 것처럼 초라하고 빈곤한 그 맛에 저자는 남몰래 ‘문화혁명의 맛’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이 책의 한국어판 출판을 위해 특별히 쓴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에선 조선족과 여진족의 음식 문화가 융합돼 만들어진 둥베이(東北) 요리도 다뤘다. 메인 요리 뒤의 디저트 같은 달콤함이 있다. 중국 연구에 대한 일본의 내공(內功)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06:06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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